전화위복의 순간들
고2 때 평탄대로를 달려왔던 것과 달리, 고3은 위태로운 순간이 많았다. 하지만 위기의 순간들 또한 나에게 교훈을 주기도 하고, 가장 적합한 길로 인도하는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고3 첫 단추부터 꼬이기 시작한다. 반 배치를 받았는데, 지구과학반에 배치받은 것이다. 우리 학교는 이과 선택과목이 두 가지 있었는데 화 2와 지 2였다. 보통 화 2를 선택하는 것이 정석이었기에, 이과생 대부분은 화 2를 선택했고 나 또한 화 2를 선택했다. 그렇기에 화 2반이 6개고 지구과학반이 1반 인원이 채 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데 학교 측에서는 반 인원을 달리할 수 없다며 화 2 인원 중 몇 명을 지구과학반에 같이 편성했는데, 그게 하필 내가 된 것이다. 학교 측에서는 과학 시간만 이동수업을 하면 된다고 했지만, 실상 문제는 따로 있었다.
문제는 지구과학반이 성적에는 전혀 관심 없는 아이들이 선택한 이과계의 직업반 같은 곳이라는 점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대부분의 선택인 어려운 화학 2를 버리고 지구과학 2로 온 것이다. 그런데 그런 곳에 내가 있었다. 전체적 학급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아이들도 이전처럼 공부 잘하는 애한테 호의적이지 않았다.
처음에는 이전처럼 내가 나서서 반장도 하고 반 분위기를 면학 분위기로 잡아보려고 했다. 하지만 정도가 심하다 보니 나 또한 선을 넘게 되고, 자유를 추구하는 반 친구들과 갈등을 빚게 된다. 학교 아이들이 순수한 편이어서 폭력까지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이러한 갈등은 학업에 쏟아야 할 정신적 에너지를 다른 곳에 쏟게 함으로써 공부에 지장을 주게 된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고3 때 나는 반에 거의 있지를 않았다. 시끄러운 교실을 최대한 벗어나서 야자실에 처박히곤 했다. 고3 정도 되니 자율학습 시간도 많아서, 나에겐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렇게 2학기가 되고 나의 앞길을 결정하는 중요한 사건이 하나 또 발생하게 된다. 공부를 잘하는 동네가 아니었던 덕분에 내신이 모의고사에 비해 좋았던 나는, 당연히 내신 관련 대입 전형에도 관심이 있었다. 그중 가장 큰 관심사는 집 근처 대학교인 서울대에서 시행하는 지역균형선발전형이었다. 이 전형은 흔히 지균이라 불리는데, 내신을 80퍼센트 이상 보기 때문에 정말 매력적인 전형이었다. 여기 해당하는 내신은 1학년부터 3학년 2학기 중간고사까지의 내신이 들어간다. 그래서 3학년 2학기 중간고사까지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3학년 2학기에는 무려 8 단위를 차지하는 가장 중요한 과목이 있었다. 바로 수학 2가 그 녀석인데, 내신 차지비율이 높아서 여기서 2등급이 나오면 합산 내신에 치명타를 주는 과목이었다. 그 과목에서 중간고사를 치렀는데, 한 문제차이로 2등급이 나왔다. 점수가 1점만 올라가도 1등급이 될 수 있는 상황. 다행히 배점이 큰 서술형 문항이기 때문에, 나는 풀이과정에서 맞는 부분이 있어 부분점수라도 받을 수 있나 싶어서 교무실을 찾아갔다. 그런데 선생님이 난감해하셨다. 왜냐하면 내가 1 등수 차이로 2등급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 말인즉슨 그 문제에 부분점수를 주면 내 등수가 올라가지만 그만큼 등수가 밀린 한 친구는 등급이 떨어지기 때문이었다. 결국 나는 그 문제의 부분점수를 받을 수 없었고, 결국 이 사건은 지역균형 선발전형의 최종 합격을 낙방시키는 나비효과가 되어 돌아온다.
하지만 그 덕분에 나는 의대에 들어올 수 있었기에, 나는 정말 운명이 그 사건을 인도했다고 믿는다. 내가 선생님의 결정에 항의하지 않고 고분고분 받아들인 것 또한 물 흐르듯 가는 것이 더 큰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교훈을 얻게 해 주었다.
마지막 위기는 좀 싱겁긴 한데, 그간 언수외에 너무 치중한 나머지, 탐구 과목이 좀 약해서 모의고사에서 3등급도 심심찮게 나올 정도로 약했다. 그래서 고3 때 부랴부랴 대학생 과외를 구해서 매진한 결과, 수능 때는 1과목 빼고 모두 1등급을 맞을 수 있었다. 한 과목은 생물 1 이 3등급 나오긴 했지만, 대학 지원 시 탐구는 3과목만 반영되어서 결과적으로 의미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