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족하지만 온전한 육아를 위해
부모가 아이를 때려서 양육하는 것은 부모가 부족한 부분이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모든 부모가 완전할 수는 없다. 가령 부모가 재벌집 부모라면 부모가 직접 아이를 때리지 않아도 집안에서 풍기는 분위기와 집사를 통한 간접적인 교육만으로도 아이는 훈육이 가능한 경우가 많다. 또는 경제적인 측면이 아니라도 부모의 마음이 바다처럼 넓어서 예수님이나 부처님과 같은 마음을 가졌다면, 따귀를 두 번 맞고 중생을 가여워하는 마음으로 아이를 때리지 않고도 훈육이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이 두 경우 모두 쉽지만은 않다. 결국 대부분의 부모는 아이들을 때리는 훈육을 한다.
그러면 아이를 때리는 훈육은 잘못되었는가? 물론 완벽한 훈육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완벽하게 체벌에서 독립한 훈육법만을 좇는 것은 능사가 아니다. 부모는 부모 자신에게 맞는 훈육법을 선택해야 한다. 부모가 행복하지 않은 훈육법은 아이에게도 불행한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폭력에 가까운 과도한 체벌은 당연히 지양되어야 하겠지만, 체벌을 함으로써 부모가 아이들이 잘 양육되고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고, 그로 인해 만족한 가정생활을 꾸려나갈 수 있다면 다소간의 체벌은 유용하다. 체벌에 규칙성이 있고, 부모의 감정이 배제되어 있는 상태에서의 체벌이라면 말이다. (감정에 치우친 체벌은 폭력과 유사한 효과를 낳아서 오히려 악영향을 끼친다.)
정신과 진료에 있어서 정신과 의사가 우선 행복한 상태에 있어야 올바른 정신과 진료가 가능하다. 정신과 의사의 상태가 불안하다면 환자도 무의식 중에 진료 간에서 불안감을 느낀다. 가정 양육도 이와 마찬가지다. 자신에게 맞지 않는 양육법을 지향하기보다는 스펙트럼을 넓히더라도 자신에게 맞는 양육법을 찾는 것이 좋다. 이를 통해 부모는 행복을 얻을 수 있고, 양육 또한 온전해진다.
행복한 정신과 의사가 환자에게 행복을 찾아줄 수 있듯이 행복한 부모가 자녀를 행복하게 한다. 부모는 부족해도 괜찮다. 체벌을 하는 부모도, 하지 않는 부모도 모두 온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