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이야기 들려주기로 현실 탐험가 만들기
명상을 하다가 얼마 전에 sns에서 본 라쿤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라쿤이 귀여워서 키우고 싶어 하는 이들이 많은데, 실상 라쿤은 똑똑하고 손도 어린아이처럼 자유자재로 사용해서 주인이 놀아주지 않으면 탈출까지 해버린다는 내용이었다. 그 이야기를 보고 처음에는 라쿤을 키우려면 책임감이 대단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번 명상에서는 그 생각이 어린아이 돌보기로 확대되었다. 지능은 다소 부족하고 손만 어린아이처럼 쓰는 라쿤도 돌보기 난이도가 헬 난이도라는데, 어린아이와 놀아주기는 어떨까?
그리하여 등장한 육아법이 매체를 통한 육아법이다. 어린아이는 습득력과 탐구력이 왕성해서 가만히 놔두면 주변을 이리저리 헤집고 다니지만, TV나 유튜브, 하다못해 스마트폰만 앞에 놔두어도 곧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간다. 1분을 가만히 있지 못하던 아이도 영상만 틀어주면 30분이고 1시간이고 가만히 있는다. 그래서 공공장소에 가면 유튜브를 보거나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는 유아를 쉽게 볼 수 있다. 모니터 안의 세상을 탐구하는 아이는 실제 세계에는 더 이상 관심이 없는 듯 보인다.
그런데, 앞으로 이러한 트렌드는 더욱 심화될 모양이다. AR과 VR의 등장 및 발전으로 어른들은 물론이거니와 유아의 이러한 매체의 접근성이 더욱 향상될 것으로 전망된다. 나도 AR과 VR의 발전을 기대하고 있긴 하지만, 어른들조차 혹하는 가상세계에서 어린아이들은 어떤 것을 배울까? 어쩌면 인간이 창조해낸 가상세계를 현실세계보다 더 중요시하는 풍조가 형성될지도 모른다.
철학적 관점에서 볼 때 이것은 더욱 문제가 된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 조차도 원형이 있고 우리는 물질계의 몸을 얻어서 여러 가지 자극을 통해 그것을 체험한다는 견해가 있는데, 그 안에서 다시 재창조된 가상세계는 현실세계보다 더 하위 체계에 불과하다. 이러한 하위 체계에서의 체험을 계속하다 보면 결국 현실세계 체험을 통한 상위 차원으로의 체험과는 거리가 더 멀어지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따라서 어느 정도 분별력이 생기는 성인기 전까지 스마트폰이나 게임 등의 저차원적 매체를 아이에게 쥐어주고 자유롭게 탐구하도록 방치하는 행위는 아이의 정신적 발달을 저해할 뿐 아니라, 향후 아이가 얻게 될 철학적 체험까지 위협하는 행위가 될 수 있다.
아이 돌보기는 힘들다. 하지만 아이는 내 몸에서 나온 나와 가장 가까운 또 다른 나이다. 그런 아이에게 저급한 차원의 경험을 시켜주는 것보다는, 조금만 노력해서 아이에게 하루 한 편이라도 옛날이야기를 들려줘보자. 옛날이야기라고 거창할 것도 없다. 예전 역사책에서 배운 선조들의 이야기 ; 가령 세계를 정복한 칭기즈칸이나 이집트 피라미드의 불가사의, 혹은 아픔으로 얼룩진 한국 근현대사 이야기까지 기억나는 대로 입맛에 맞게 들려주면 되는 것이다.
아직 아이가 어리지만 아이에게 역사를 옛날이야기라고 들려줄 날을 기대하고 기다리고 있다. 역사를 아는 아이는 조금 더 진리에 가까워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