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관계론 - 우리는 하나

세상과 나의 관계

by 닥터 온실


저는 지금 사랑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얘기하다 보면 그 사람과 생각이 다를 때가 있습니다. 그러다 오늘 호수에 첫눈이 내리는 것을 보았을 때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사람과 나의 생각이 호수의 물과 눈처럼 보이는 모습은 다를지라도, 둘이 만나 하나가 되듯이 우리도 그렇게 동화될 것이라고요.


첫 연애를 할 때 쓴 글이다.

첫 연애여서 서툴러서 그랬던 것인지, 아니면 서로 전혀 접점이 없는 상태에서 살아오다가 만나서 그런 것인지 몰라도 우리는 서로 다른 생각을 했고, 마찰이 발생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호수에 눈이 내려 떨어지며 사르르 녹는 모습을 보고 이런 생각을 했더란다. 그때는 그 사람과 헤어질 줄 몰랐기에 이런 생각을 했겠지만, 결국 그 사람과 나는 서로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헤어졌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호수가 되지 못했기 때문인 것 같다.

하나 너무나도 오랜 시간이 지나 지금 이 생이 한 순간의 찰나처럼 느껴지게 될 쯤에는 그 사람과 나의 차이도 모호해져서 결국은 동화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하나의 몸을 가지고 구분되어 살아가지만 죽게 되면 결국 수없이 작은 원소들로 분해되어 또 다른 생명체의 양분이 되고 또 다른 개체가 되기도 한다. 이것이 수 없이 반복되다 보면 그 사람과 나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하나의 물방울과 같다. 추울 때면 눈송이가 되어 하늘을 어지러이 떠다닐 수도 있고 더울 때면 수증기가 되어 뿌옇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육신이 늙어 흙으로 돌아갈 때가 되면 한 방울의 물이 되어 다시 더 큰 물로 돌아가듯이 대지의, 그리고 우주의 일부가 된다. 그래서 지금 나는 생각한다.

지금은 다르게 보일지라도 결국 우리는 하나라고.



어느 날 아침, 아이 보여주는 ebs에서 아이가 좋아하는 타요가 나왔다. 이번 에피소드는 바퀴가 터져버린 타요의 이야기. 교육방송이라 그런지 바퀴가 터지면 지면에 닿는 면적이 넓어져서 바퀴가 잘 굴러가지 않는다고 친절하게 설명까지 해 주었다. 앞으로 아기에게 설명해 줄 때도 원리를 말해주면 더 쉽게 습득할 것이라는 생각을 다시 한번 했다.

여기서 생각은 더 나아간다. 바퀴는 세모에서 네모, 그리고 다각형으로 갈수록 더 잘 굴러간다. 지면과의 마찰, 그중에서도 정지 마찰력이 가해지는 시간이 현저히 줄어들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변과 각이 무수히 많아지다가 원이 되어 변과 각이 사라지면 가장 저항이 없는 상태, 잘 굴러가는 상태가 된다.


나는 여기서 세상과 나의 관계를 생각했다. 내가 바퀴라고 생각하고 세상과의 접점들을 꼭짓점, 변이라고 해보자. 세모나 네모처럼 관계가 적고 경직되어 있을 때는 바퀴가 잘 가지 않는다. 세상만사가 잘 굴러가지 않는 것이다. 그러다 관계가 늘어나고 다변화됨에 따라 내 인생의 바퀴는 더 잘 굴러가게 된다. 그렇게 관계가 늘어나고 세상과의 접점이 늘어나다 보면 원이 된다. 결국 세상과 나의 접점이 많아지다가 그것이 무한이 되면 꼭짓점과 변이 하나도 없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될 때 세상만사는 물 흐르듯 흘러간다. 내가 곧 세상이고 통합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라면서 나와 세상을 구분하고 자아를 형성하는 연습을 한다. 이것을 하나의 바퀴가 되어가는 과정으로 본다. 그렇게 세상과 맞닿아 구르고 구르다 보면 원이 되어간다. 이 과정이 정말 필수적인 것 같다. 도형의 각이 많아지다 보면 결국 각이 없어지게 된다. 가장 많은 것과 없는 것은 결국 통하게 되어 있다. 우리와 세상과의 관계도 결국 그와 같은 것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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