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비효율도 필요하다.
나는 무척이나 효율을 중시하는 사람이다. 고등학교 때 플래너를 쓰면서부터 잡힌 효율성의 극대화는 삶의 많은 영역에서 영향을 미쳤다.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여 공부하였더니 의대에 합격할 수 있었고, 운동을 효율적으로 하여 1년간 10kg을 감량하기도 했다. 그뿐인가? 현재 시행하고 있는 재테크도 나의 자산을 가장 효율적으로 활용하려고 노력하면서 자산가치를 지키고 불리는데 쓰고 있다.
효율을 중요시하는 것은 비단 나뿐만이 아닌 것 같다. 세상 자체가 점점 더 효율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요즘 회사들은 빅데이터를 활용해서 의뢰 기업이 적은 인력과 비용으로 고객의 니즈를 충족시킬 수 있는 솔루션을 제공함으로써 효율성을 극대화시켜주는 일을 한다.
얼마 전 방문한 식당에서는 주문을 키오스크 화해서 인건비를 절감함으로써 비용 효율을 높여 마진을 남긴다. 유튜브만 봐도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통해 내가 가장 관심 있는 콘텐츠를 파악하고, 그에 따른 연관 광고를 노출함으로써 광고 효과를 극대화한다.
이른바 효율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이러한 효율의 극대화 앞에서 많은 시간을 잡아먹거나 인력을 잡아먹는 것들은 주목을 받지 못하고 소외받기 십상이다. 하지만 오늘 아이를 돌보면서 효율을 극대화하는 것만이 항상 능사는 아니라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아이 돌보기는 효율과는 거리가 멀다. 아이와 놀아주면서 남는 시간 동안 다른 무언가를 할 수 있을까? 그렇게 다른 일을 하며 아이를 돌본다면 그 시간을 온전하게 보낸 것일까? 아이에게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정신과적 면담 또한 이와 궤를 같이한다. 정신과는 모든 병원의 과를 통틀어서 1명의 외래 방문환자를 보는데 가장 많은 시간이 걸린다. 그렇다고 환자들이 하는 이야기들이 100퍼센트 효율적인 이야기는 더더욱 아니다. 어떤 이는 그저 울면서 슬픔을 표출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침묵으로 진료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하지만 이 모든 시간들이 다 정신과적 진료의 일환임을 나는 안다.
이런 예뿐만 아니라 명상, 친구와의 대화, 사색, 그리고 멍 때리기 같은 것들도 효율과는 정말 거리가 먼 것들이지만 그것을 효율의 척도로 평가하면 안 되는 것들이기도 하다.
효율, 중요하다. 하지만 모든 영역에서 효율이 1순위를 점거하게 되었을 때 그에 따른 그림자를 생각해본다면... 수많은 일자리를 잃은 사람과 고통, 그들의 희로애락을 어떻게 할 것인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진짜 효율적인 세상은 로봇이 모든 일을 다 해주고 인간은 그저 오감을 만족시키며 사는 세상일 것이다. 허나 그런 세상이 행복할까? 어떤 가치이던지 간에 극으로 향하다 보면 항상 반대로 돌아오게 되어있다.
인공지능을 통한 인간 세상의 효율화는 현재 진행형이지만 그 미래가 어떨지 살포시 그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