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팅 재도전기

인연은 존재한다.

by 닥터 온실

안녕? 나는 이제 곧 서른을 바라보고 있는 대한민국 흔녀야. 사건의 발단은 오랜만에 만난 친한 오빠가 나에게 소개팅을 제안하면서부터 시작되었어.

사실 이 오빠는 워낙 친해서 내가 학생일 때부터 남소도 몇 번 받은 적 있는 오빠거든. 그때는 그렇게 남자 소개해줄 거면 왜 자기가 안 데려가나 싶은 마음이기도 했는데 지금은 오빠가 유부남이 되어서 그런 마음은 접은 지 오래지. 나도 뭐 오빠가 굳이 들이대지 않는데 먼저 대시하기도 그렇고 소개팅을 빌미로 같이 대화하면서 더 가까워지는 마음이기도 해서 그렇게 몇 번인가 소개팅을 했던 것 같아.

같이 대학교 다닐 때는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가 오빠가 어느새 유부가 되고 나도 취직하고 각자 정신없이 살았는데, 오랜만에 내가 다니던 직장 그만두고 새 직장 들어가기 전에 어떻게 시간이 맞아서 같이 친한 선후배 몇 명이서 만나는 자리가 있었어. 유부라서 바빴던 그 오빠도 오랜만에 온다니까 옛날 생각도 나고 재미있을 것 같아서 즐거운 마음으로 자리에 참석했지.

한참 얘기를 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집에 오는 길에 오빠가 소개팅 제안을 하는 거야. 마침 직장 그만두고 새 직장 들어가기 전인지라 시간도 많고, 또 얼마 전에 시간이 많은 김에 라섹도 하고 외모에 자신감이 많이 붙은지라 흔쾌히 수락했지.

그런데 받은 카톡 프로필을 보니까 묘하게 낯이 익은 이름이야. 그때는 뭐 살면서 여러 이름들을 봐 왔으니까 그런 거겠지 하고 그 남자한테 연락 오기를 기다렸지. 그렇게 연락을 하고 나서 약속을 잡았어. 혹시 아는 사람인가 해서 프로필 사진을 봤는데 얼굴이 나온 프로필이 아니었지. 뭐 내 프로필 사진 있으니까 아는 사람이면 그쪽에서 먼저 반응이 오겠지 했는데 그런 건 아닌 것 같더라고? 그렇게 약속 날이 되었어.

약속 장소에 나갔는데 이게 웬걸? 예~전에 오빠한테 소개받았던 남자인 거야! 근데 그 남자는 나를 잘 못 알아보는 것 같더라고. 하긴 학생 때에 비하면 안경도 벗고 많이 달라지긴 했어도! 그래서 조심스럽게 아는 척을 했어. 혹시 xx 년도 여름에 강남역에서 소개팅하지 않았냐. 그 남자도 당황해하는 눈치더라고. 그제야 나를 알아보는 거야. 황당했지. 나중에 소개해 준 오빠한테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그 오빠도 우리 둘이 소개팅했던 것을 까맣게 잊고 다시 해 준 거더라고.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듯이 둘이 잘 맞을 것 같다면서! 그래 뭐 5년도 더 되었으니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

근데 처음 만났을 때 나나 그 남자 쪽이나 둘 다 수줍수줍 하고 노잼인 스타일이라서 두 번인가 만나다가 흐지부지 되었던 걸로 기억하거든. 나는 그래서 이걸 어떻게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그 남자 쪽에서 이렇게 두 번 만난 것도 인연인데 식사나 하고 가자는 거야. 나도 뭐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서 식사하면서 가볍게 얘기를 주고받는데 5년이나 지났고, 또 그동안 다른 남자들이랑도 소개팅을 꽤 했기 때문에 이 남자 이야기가 정말 새로운 거야. 어렴풋이 기억나는 걸로는 평범한 학생이었는데 열심히 노력해서 나름 이름만 대면 알아주는 기업도 들어갔고 성실하게 살고 있더라고. 무엇보다 그간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몰라도 언변이나 센스? 유머 같은 게 훨씬 나아진 느낌이었어.

그리고 내가 안경을 벗고 외모에 신경을 좀 더 써서 그런가 그 남자도 내가 마음에 안 들지는 않은 눈치더라고? 하긴 내 프로필 사진을 보고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였으니까... 그렇게 식사를 하고 카페에 가고 에프터도 하고... 세 번 만나다 보니 어느새 우리는 사귀게 되었어.

그리고 어느새... 다음 달이면 결혼을 앞두고 있어. 소개해준 오빠의 무신경함 탓도 있지만 이런 걸 보면 정말 인연이란 건 존재하는 것 같아. 한 번 만날 때는 서로 알아보지 못 한 인연도 연결될 운명이면 다시 만나게 되는 거라고 생각해.

이 글을 읽는 친구들도 혹시 인연이 생기지 않아서 걱정하고 있더라도 너무 조바심 내지 않았으면 좋겠어. 올 인연은 언젠가 오게 되어있거든. 긴 글 읽어줘서 고마워 안녕!


<이 글은 실화가 아니며 실감 나는 연출을 위해 1인칭으로 기술되었음을 알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