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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생각하나

저작권의 철학적 의미

분리와 통합의 과정에서 생기는 필연적 장치

by 닥터 온실


어린 시절 지불 능력이 없던 나는 저작권에 의해 돈을 내야만 볼 수 있는 콘텐츠들을 보며 안타까워했던 기억이 난다. ‘저작권이 없다면 오히려 콘텐츠들이 널리 퍼져서 작가의 의도도 더 많은 이들이 느낄 수 있을 텐데.’라고 그때의 나는 생각했었다. 그리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저작권은 해적판으로부터 작가를 보호하다가 생겨버린 작가와 구독자 간의 장벽일 뿐일까?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이 세상에서 우리를 분리하기 시작한다. 의식적 분리를 통한 ‘나’라는 자기(self)의 인식은 기쁨이자 축복이다. 하나일 때는 존재하지 않았던 각종 희로애락이 분리를 통해 경험되기 시작한다.

그렇게 성인 즈음이 되어 개인화(individualization)를 마친 우리는 아이러니하게도 다시금 세상과 연결되고 싶어 한다. 그렇기에 이 세상을 향해 여러 형태로 메시지를 낸다. 우리가 세상으로 표출하는 콘텐츠들은 우리 본연의 모습을 담고 있다. 우리는 그러한 콘텐츠들을 통해 세상에 목소리를 내며, 세상 또한 우리에게 응답하는 과정에서 우리의 자기 존재감을 확인한다.


이렇게 건강한 자기 존재감이 형성된 개인은 일단 낮은 수준의 통합을 진행하기 시작한다. 이 시점에의 통합은 개인은 자신과 관심사가 같거나 자신과 비슷한 부류의 사람들과의 통합이다.

개인에게서 표출된 콘텐츠는 그 사람들과의 교류의 핵심 재료다. 이때 저작권은 개인과 개인이 연결될 수 있는 티켓과 같은 역할을 한다. 티켓이 있어야 내가 원하는 종류의 공연을 볼 수 있듯이 어느 정도의 진입 장벽이 교류의 관심사 일치도를 높여준다. 우리는 저작권을 통해 관심사의 정도가 어느 정도 일치하는 대상으로 교류 대상을 제한할 수 있다. 우리는 아무런 대가도 없이 콘텐츠를 이용할 때보다 일정 수준의 대가를 지불할 때 좀 더 관심 있는 대상으로 콘텐츠를 선택한다.

재미나 웃음과 같은 콘텐츠는 그 공유 범위가 넓기에 그만큼 널리 퍼지겠지만, 우리는 우리가 관심도 없는 범위에 저작권료를 지불하면서까지 서로를 연결하지는 않는다.

그러다가 개인의 통합 정도가 커지고 커져서 더 이상 연결의 제한이 필요하지 않는다면 개인은 저작권이 없는 콘텐츠를 발행하거나 저작권을 포기할 수 있다. 더 널리 통합되는 것이다.


그럼 애초에 처음부터 저작권을 포기해서 널리 통합되면 되지 않는가 하는 물음에 인생은 답한다. 그것이 인생이라고.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기쁨에는 분리된 자아로써 누릴 수 있는 기쁨 또한 포함된다. 통합의 기쁨도 큰 것이지만, 자아 정체성 확립과 개별화를 통한 기쁨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그러한 통합의 기쁨은 존재하지 못한다. 저작권은 ‘나’라는 존재가 내는 자기 자신만의 고유한 목소리를 구분해 주는 보호 장치다.

우리는 저작권을 통해 우리의 통합 정도를 조절하고 한 단계씩 점차 합일의 단계로 나아간다. 인생이란 짧은 기간 동안 합일되지 않아도 죽음은 우리를 어김없이 통합으로 이끈다. 그래서 개인의 사후 일정기간 지나면 저작권 또한 사라진다.


그리하여 저작권은 인생이라는 개인의 분리와 통합 과정에서 개인에게 물리적 이득과 기쁨을 가져다주는 수단임과 동시에 개인이 더 큰 통합으로 나아가는 것을 확인하게끔 해준다. 돈이 있기에 돈을 기부하는 즐거움이 있듯 저작권 또한 존재하기에 저작권을 세상에 나눌 때에 존재하는 기쁨 또한 있다.


오늘도 저작권이 있어 나만의 표현으로 오롯이 분리될 수 있고, 또 통합할 수 있음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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