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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슨한 빌리지 Dec 20. 2017

0. 그렇게 나는 치-명적인 사람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치-명적 올스타 본격 프롤로그

Photo by Chris Barbalis on Unsplash



파워 프롤로그



살다 보면 이상한 날이 있다.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2010)


김영하의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의 첫 문장으로 글을 시작해보려 한다. 그렇다. 살다 보면 별의별이 다 생긴다. 신년 계획부터 오늘의 할 일까지 분단위로 계획을 세워도 예상치 못한 일에 쫄딱 망할 수도 있고, 뜻밖의 일들이 우리를 계획보다 더 재밌는 곳으로 인도하기도 한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느슨한 빌리지(이하 느빌)>라는 플랫폼도 말하자면 '살다가 마주한 어느 이상한 날'에 생겨났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런 이상한 날들은 자주 찾아오지 않는다. 어쩌다 한 번 우연히 찾아오기에 그런 날이 이상하게 느껴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도 이런 이상함이 익숙하지는 않다. 나의 인생은 지극히 아니, 지독히도 적당했으니까. 적당히 선량하고, 적당히 말 잘 듣고, 적당히 남들 하는 만큼 살다 보니 이상함과는 거리가 먼 적당한 삶을 살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지금 나를 이루는 이 적당함은 무난함, 튀지 않는, 있는 듯 없는듯한 등의 형용사와 맞물려서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는 '적당한 나'를 만들어왔다.




<느빌>에서 개인 에디팅 콘텐츠를 만들자는 이야기를 나눴을 때, 나는 고민했다. 무엇을 해야 더 많은 사람들이 <느빌>로 찾아올까. 어떤 콘텐츠를 만들어야 내가 정기적으로 연재를 할 수 있을까. 따위의 정말 당연하면서도 적당한 생각을 했다. 그러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라.



"나도 남들과는 다른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라고



물론 이 역시도 참 적당하게 반항적인 생각이었다. 그래서 워딩을 조금 다듬었다.



"나도 적당하지 않은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뭐. 비슷하지만 조금 나았다. 그럼 적당하지 않은 이야기는 무엇일까? 적당함이 몸에 배여 무엇을 하든지 적당하게 행동하는 내가 '적당하지 않은 이야기'를 쓸 수 있을까.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정리가 되었다. 나는 적당한 삶을 살아왔기에 '적당한 이야기'를 쓸 수 있다. 그렇지만 '적당하지 않은 이야기'는 쓸 수 없다.



다시 말하면, 적당하게 행동하지 않는 사람은 '적당하지 않은 이야기'를 쓸 수 있는 셈이다.(나도 사실 내가 뭔 말을 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희희힇) 그러니까 내가 '적당하지 않게 행동하는 사람'이 되면 틀에 박힌 빤한 이야기를 쓰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이었다. 그렇다면 '적당하지 않게 행동하는 것'은 무엇인가. 오히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간단했다. 내가 살아온 방법과 다르게 행동하면 되는 것이다.


빅-적당맨의 가면에서 벗어나자!



이러한 기적의 논리(?)로 나는 '적당하게 행동하지 않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 그렇지만 글의 제목으로 삼기엔 너무 길다. 그리고 '적당'이라는 단어 자체가 애매하다. 나는 다시 생각에 빠졌다.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은 무엇인가. 무엇이 적당했고, 무엇을 적당하지 않게 만들고 싶은가.



나의 적당함은 또 나를 둘러싸고 내가 적당한 답을 말하도록 회로를 돌리고 있었다. '남들이 보기에 적당한 답', '모나지 않은 중간은 가는 답', '누구에게도 밉보이지 않는 답.' 그렇다. 나는 스스로 남들과 비슷해지기를 바랐던 것이다. 나의 생각을 표현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 사이에 숨고 싶었던 것이다. 왜 그랬을까. 하긴 왜 그랬는지 알면 이런 걸 시작하지도 않았겠지. 그래서 '적당'을 물에 술탄 듯, 술에 물탄 듯 '자신의 것'이 없이 살아가는 것으로 내 맘대로 정의를 했다.



그럼 '자신의 것'을 찾는 콘텐츠는 어떻게 만드는가.(여기까지 쓰다 보니 내가 드럽게 생각 많고 피곤한 스타일이라는 걸 새삼 알게 되었다.) 누구보다 '자신만의 것을 잘 표현하는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런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행동하는가. 아마도 '자신을 제외한 모든 사람이 옳다고 하는 길도, 내가 옳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단호하게 거절할 수 있는 용기'가 있을 수도 있고, '다른 사람들을 외려 내가 가는 길로 끌어들일 수도 있고.', '선택을 하지 않고 자살을 선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평범한 다수가 아닌 독보적인 하나가 되는 것. 내가 살면서 하지 못했던, 그러나 한 편으로 동경해왔던 모습이었다.



나는 그런 사람 혹은 인물(소설이나 영화 등)에 매력을 느꼈다. 그들이 하는 행동은 매번 선량하거나 가치가 있는 행동은 아니었다. 외려 남에게 상처를 주거나, 스스로 고통을 자처하는 '이상한' 것에 가까웠다. 그 '이상한' 행동들은 대개 강한 인상을 남겼고, 내 안에 치명적인 상흔을 남겼다. 나는 될 수 없지만 막연히 동경하는 별 같은 것이었다.



'나는 될 수 없지만...'
'나는 될 수 없지만...?'


나는 여태 적당하지 않은 내가 되고 싶다고 말해놓고, 이제 와서 또 적당히 '나는 될 수 없지만'이라고 도망치고 있었다. 그럴 수 있다. 그렇지만 이번엔 그러고 싶지가 않다. 그래 뭐 나라고 그런 사람이 못 되려나. 실패할 때 하더라도 한 번 해봐야 덜 후회하지 않겠나. 하는 또 한 번의 적당한 생각으로



그렇게 나는 '치-명적인 사람'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평생을 치-명적으로 살아봤어야 해보지. 그래서 이번 콘텐츠를 통해 사리사욕을 채워볼 생각이다.  다른 에디터들의 양질의 글이 충분히 준비되어있으니, 나 하나 망해도 큰 타격을 없을 것이라고 믿는다.



결론은,  <치-명적 올스타>. 책, 영화, 음악, 만화, 미술 등 치명적인 매력을 뿜뿜빰빰 쏟아내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아볼 생각이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 속의 "치명 포인트"를 찾고 그것을 실제로 실천해볼 생각이다. 한 주에 하나씩 "치명 포인트"를 쌓는다면 한 달에 4개, 1년에 52개니까 2년만 채워도 대충 100개의 "치명 포인트"를 가진 사람이 되지 않을까.(어쩌면 끔찍한 혼종이 나올지도)



일주일에 한 번, 이상한 날을 만들어보자. 요상하게 치-명적인 그런 사람이 되자. 뭐 그렇다고.



 서명도 치-명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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