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두아르도 멘도사
92년 올림픽을 앞둔 바르셀로나에 불시착한 UFO. 그나마 한 명은 실종된 상태. 이름 모를 외계인인 주인공이 동료이자 연인이며, 부하인 구르브를 찾아 나선다. 외계인이라는 이방인의 시각에서 인간과 도시를 바라보며 느끼는 코-믹 어드벤처
이 외계인은 아무래도 지구 생활이 처음이라 그런지 모든 것이 낯설기만 하다. 가깝게는 다소 미개한 음성언어의 사용부터, 더러운 대기환경 하며, 이해할 수 없는 여러 관습까지. 외계인에겐 몹시 생소하기만 한 도시, 바르셀로나의 모든 것이 의문점이다.
아쉽게도 작가는 귀여운 주인공에 대한 정보를 자세하게 알려주진 않는다. 그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은 그들이 매우 코드화 된 언어를 사용하며 합리적인 시스템을 구축한 다소 피상적이고 전형적인 설정의 외계인이라는 것. 다만 설정과는 맞지 않게 허당들이다. 사실 여타 SF 소설처럼 외계 종족의 설정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인간이 아닌 다른 무언가의 눈을 통해 인간을 묘사하는 시도는 여러 번 있어왔다. 우리의 익숙한 반려 동물들인 고양이와 개의 시각을 비롯하여 여러 생물체들, 혹은 아이의 시점을 통하여 관습화 된 인간의 모순을 드러낸 작품들 말이다.
그러나 이 외계인의 시각은 그 어느 것보다도 새롭다. 외계인의 존재가 새롭고, 외계인의 방식이 새로우며, 시점의 대상들 또한 새롭게 반응한다. 단순히 주변부에 존재하는 순수한 생명이 아닌 우주 속 고도의 문명에서 찾아온 이방인이기에 그는 능동적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고 또 인간들과 교류한다.
얼핏 들으면, 외계인이나 이방인이 등장하는 여러 이야기들 또한 떠오를 텐데, (예컨대 아바타나 늑대와의 춤을 스타일의) 이 이야기만큼은 미지와 조우하는 상황 속에 나타나기 마련인 갈등들 때문에 지칠 필요가 없다. NASA가 인류를 대표하여 외계인들과 전쟁을 치르거나 회담을 하지도 않고, 외계인이 인간을 위협하거나 인간이 외계인을 위협하지도 않는다. 그저 카탈루냐의 평범한 사람들만이 등장한다. 주변 인물들도 그저 이 웃기는 외계인을 다소 이상하고, 문란하고, 이해가 안 되는 데다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인물로 생각할 뿐이다.
16:00 나는 부티크로 들어선다. 타이를 목에 걸어 보니 나한테 잘 어울리는 것 같다. 나는 똑같은 것으로 아흔네 점을 구입한다.
16:30 스포츠 용품 매장으로 들어선다. 나는 랜턴, 물통, 캠핑용 가스, 바르사 프로 농구 팀의 셔츠, 테니스 라켓, 서핑 장비(야광 장미색) 세트에다조깅용 신발 서른 켤레를 구입한다.
17:00 식품 매장에서 흑 오리 햄 칠백 개를 구입한다.
17:10 야채 매장에서 당근 0.5킬로그램을 구입한다.
17:20 자동차 매장에서 마세라티 한 대를 구입한다.
17:45 가전제품 매장에서 가전제품을 종류별로 모두 구입한다. 18:00 장난감 매장에서 인디오 모형과 팽이 하나, 바비 인형 속옷 백열두 점을 구입한다.
그러나 외계인은 그야말로 외계인이라는 것을 명심하자. 우리와는 매우 상이한 감각을 지닌 외계 생물체이다. 당근은 0.5kg씩 사면서 추로스는 한 번에 12kg을 먹어 치우는 인물이다. 그가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인간적 삶에 맞춰진 우리의 범주와 관습엔 적절하지 않다. 어처구니없는 쇼핑리스트를 보면 인간에겐 당연한 것들이 실상 당연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극과 극의 경험 속에서 타지에 적응하는 외계인의 힘겨운 생존기를 보자면 누구나 동정심이 들 것이다.
나는 어떤 레스토랑으로 들어간다. 검은 옷을 입은 신사가 뻣뻣한 자세로 나한테 예약을 했느냐고 묻는다. 나는 예약은 안 했지만 화장실이 스물두 개인 별장을 짓는 중이라고 대답하고, 꽃다발로 장식된 테이블을 잽싸게 차지한다. 그리고 결례가 될까 봐서 꽃송이를 냉큼 먹어 치운다. 신사가 차림표(코드화가 안 되어있다.)를 내놓으며 무엇을 먹을 거냐고 묻는다. 내가 차림표를 보면서 하몬, 멜론이 들어간 하몬, 멜론을 차례대로 주문하자, 신사가 이번에는 무엇을 마실 거냐고 묻는다. 나는 남의 이목을 끌지 않으려고 지구인들 사이에서 가장 일반적인 액체, 즉 오줌을 주문한다. 25p
이 와중에 주인공이 인간이라면 특이하다만 외계인치곤 평범하다. 그는 물론 꽃을 먹고, 멜론과 하몽과 하몽 멜론을 시키기는 한다만, 다른 외계인들이 일반적으로 그러듯이 가게를 부수거나 인간을 해부하기 위해 납치하거나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인간의 마음에 들려고 노력한다. 주정뱅이들과는 친구가 되고, 여성들에게는 인기 있고 싶어 한다. 옆집에 사는 여인에겐 연애감정마저 생겨서 밤새 편지를 썼다 버렸다 하며 고민한다. 이 인물의 모습은 어느새 인간 세계에 침투한 위험한 외계인이 아닌 얼간이 인간의 모습에 가까워졌다. 그에 더해 주인공은 틈만 나면 소설을 읽는 덕후의 기질까지 지니고 있다는 것. 생각해보니 외계인치곤 특이하고 인간치곤 평범하다.
지구인들은 여러 범주로, 특히 부자와 빈자로 나뉘는 모양이다. 그 이유는, 나는 잘 모르지만 그들이 무척 중요하게 여기는 문제들 중 하나다. 내가 보는 부자와 빈자의 기본적인 차이점은 이런 것 같다.부자ㅡㄹ은 그들이 가는 곳에서 그들이 원하는 것을 아무리 많이 손에 넣거나 아무리 많이 소비해도 돈을 내지 않는 반면, 빈자들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까지 돈을 낸다. 부자들이 향유하는 면세는이전부터 내려오거나 최근에 생겨날 수도 있는 것이고, 일시적인 것이거나 속임수일 수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다 똑같다. 27p
반면 주인공이 보는 인간의 모습은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모순으로 가득 차 있다. 그의 눈에 인간은 매일같이 일에만 치여 살고, 일에 관한 대화만 한다. 게으른 경찰들은 별다른 이유 없이 권력을 휘두르고, 유치장엔 구걸 전문가가 다 있다. 밤늦게까지 술을 진탕 마시는 한량들과, 돈이면 다 되는 인간들의 뻔뻔한 태도는 또 어떠한가. 나이에 따른 이상한 권위 또한 외계인 입장에선 이해할 수 없는 기묘한 관습일 뿐이다.
그러나 주인공은 인간들의 모순된 모습에서 혐오감을 느끼지 않는다. 아무런 평가도 없이 그저 그렇구나 하며 받아들인다. 개개인의 삶이란 애초에 평가할 필요도 없고 평가받을 이유도 없다. 그는 합리적인 종족이기에 오히려 섣불리 인간을 평가하려 하지 않는다.
이런 충격적인 인류 침공의 순간에 인간들의 모습은 너무 안일하여 걱정마저 자아낸다. 그의 모습이 시시각각 바뀐다는 것을 상기한다면, 인간들의 반응은 몹시 뻔뻔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그의 순진함에 화답하듯, 이웃들은 그의 모든 행동들을 그저 뻔뻔하고 방종한 인간의 보기 싫은 행태쯤으로 본다. 동시에 그가 속에 지니고 있는 순진함을 발견하기도 한다. 말하자면 같이 못 살 인간은 아닌 것. 어느새 외계인은 인간사회에도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동안 사라진 동료 구르브는? 그의 초기 목표는 사라진 동료 구르브를 찾는 일. 당연히 이야기 종반부에 구르브가 등장한다. 그동안 연락 한 번 주지 않아 상사이자 연인이며 친구인 주인공을 불안에 빠트린 구르브는 몹시 화려한 자태로 등장한다. 구르브는 이미 지구에서의 삶에 모든 적응을 마친 상태.
그렇기에 주인공은 다시 만난 구르브에 몹시 화가 난 상태다. 그들은 곧 떠나야 할 터. 반면 인간들의 삶 속에서 구르브는 너무 많이 바뀌었다. 그는 더 이상 상사의 억압을 받아들일 생각이 없었고, 지구에서 자유롭고 호화롭게 살 생각이다. 그들이 보아온 여러 모순과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모습은 너무 매력적이었다. 우주는 합리적이지만 지루한 세계였던 반면, 바르셀로나는 모순되지만, 활기찬 도시였다.
주인공은 그런 구르브를 설득하려 하지만, 이내 포기하고 혼자 지구를 떠나기로 한다. 그리고 그간 만나온 여러 사람들을 마지막으로 찾아가며 선물을 전한다. 그가 한 달도 안 되는 짧은 기간 동안 자연스레 키워 온 인간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면서.
16:40 나는 메시지를 재전송한다. 금방 답신이 온다. 안타레스 성좌의 AF 통신국은 첫 메시지 수신이 완벽했지만, 카탈루냐 지방의 억양이 섞인 내 목소리를 듣고 싶어서 재전송을 요구했단다. 167p - 고도로 발달된 유머를 보여주는 외계 종족
그리고 구르브도 우주선에 올라탄다. 물론 구르브는 돌아가는 것에 별 관심이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이 간다. 그리고 우주선은 추락하고… 마지막은 직접 확인하시길.
작가는 카탈루냐 태생으로 바르셀로나에 관련된 여러 작품들을 써냈다. 작품 속에서 바르셀로나의 모습은 다소 황당하지만 활기찬 인간들의 모습으로 드러난다. 비록 일에 치어 살고 온갖 인간적인 모순을 지녔지만, 외계인에 대한 편견만큼은 없는 카탈루냐 인들의 솔직한 태도는 작가가 사랑하는 도시 바르셀로나에 대한 찬사라고 생각한다.
내가 처음 읽는 멘도사의 작품이었는데, 동석 씨가 이전에 읽고 재밌다고 말했다. 서로 취향이 잘 맞는 편은 아니지만, 이 귀여운 소설의 유머만큼은 맘이 맞는 부분이 있었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