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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슨한 빌리지 Feb 19. 2018

1.  젊음을 시기하다 - <포르노그라피아>

비톨트 곰브로비치

스포주의


0. 들어가며


  세계문학 매거진의 첫 연재는 폴란드 작가 곰브로비치의 <포르노그라피아>이다. 첫 시작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 자극적인 제목에 자극을 받아 읽어버렸다. 이쯤하고  간단하게 줄거리 3줄요약하고 시작!


줄거리 3줄 요약 : 2차세계대전 도중 폴란드의 어느 중년 아저씨들이 시골에 도착한다.

                            아저씨들은 그곳에서 만난 소년 소녀를 엮어주려한다.

                            둘의 연애가 그들도 young하게 느껴지게 만들기 때문~

 

라는 파렴치한 스토리이다.

  그렇다면 우선 책을 살펴보자. 책표지의 그림. 책을 보는 소녀의 모습. 시원한 옷차림이지만 난로를 떼고 있나 보다. 그러나 그녀의 눈을 보니 책만 보는 것 같진 않다. 어딘가 다른 곳을 향하는 시선. 우리는 이미 표지와 함께 이 작품의 게임에 참여했다. 뒷면을 보면 설명이 적혀 있다. ‘곰브로비치의 작품은 고약하고 음험하다. 그는 독자에게 끼어들 수도 없고 벗어나 있을 수도 없는 게임을 끊임없이 제안한다...’ 이 게임이 바로 독자가 참여한 게임이다. 게임은 타인을 향한 시선에 기반한다. 타인을 왜곡하고, 변형하는 시선, 그 시선은 결국에 자신을 향하고 자신까지도 왜곡한다. 그리고 그 왜곡의 괴리감을 극복하기 위한 게임이다. 그러나  표지처럼 어린 소녀에 종속되는 시선은 음험한 구석이 있다. 그의 고약하고 음험한 작품 속에서, 독자들은 젊음을 욕망하는 성숙한 인간들의 추악하고 파렴치한 음모에 가담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우리는 작가의 공모자다.




1. 성숙과 미성숙


  작품에는 여러 등장인물들이 등장하지만, 인물들은 정확히 두 분류로 나눠서 생각할 수 있다. 성숙한 인간과 미성숙한 인간. 성숙한 인간들은 2차 대전 도중 나치치하의 폴란드를 겪는 삶의 쓴맛을 맛 본 인물들인 반면, 미성숙한 인물들은 같은 시대를 살긴 하지만 아직은 경험도 없고 순진하고 순수한 부류이다.  성숙한 인간들은 어딘가 망가지고 자연스럽지 못한 인간들이다. 성숙이라는 하나의 권력을 가지면서 동시에 성숙해지기 위해 스스로를 포기한 인간들. 그것은 인간의 운명이지만 어쩔 수 없는 혐오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한 성숙한 인간이 다른 성숙한 인간에게 참을 수 있는 존재가 되려면, 포기라는 방법밖에는 없다. 즉 자기 자신을 포기하고 다른 것-명예, 미덕, 조국, 투쟁-을 구현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단지 하나의 인간일 뿐 다른 것을 구현하지 못한 성년이라면...... 얼마나 끔찍한가!" 235p


  소설에서 화자인 비톨트는 다른 성숙한 인간을 증오한다. 이 성숙한 인간을 근본적으로 혐오하는 이유는 단순히 젊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들이 노쇠해지면서 갖게 되는 무기력함, 의식적인 관습들이 서로를 혐오하게 만든다. 그런 혐오는 오로지 성숙한 인간들만 가질 수 있는 관습을 통해서만, 자신을 포기하고 얻은 사회적인 가치를 통해서만 견뎌질 수 있다. 의미를 충분히 실천하고 있다면 인간으로서의 혐오감을 눈 감아줄만 하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나잇값을 해야 봐줄 만하다는 것! 성숙한 인간들은 이미 그들의 시각 속에 사회적인 요구를 내재화시켰고, 타인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능력을 상실했다. 게다가 그들은 자기 자신 본래의 모습 그대로 존재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성숙함은 부여되고 규정된 의미를 통해서만 파악할 것을 요구한다.


  반면 젊은 인간은 다르다. 미성숙한 사람들에겐 아직 의미와 가치가 존재하지 않는다. 때문에 순수한 마음으로 이타적으로 행동할 수도 있고, 범죄를 저지를 수도 있다. 그들은 사회와 문화에 오염되지 않은 자기 자신으 존재한다. 때문에 누구도 미성숙한 사람들을 질책할 수 없다. 아직 그들은 미성숙하기 때문에, 다른 말로 사회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무책임할 수 있고, 가벼울 수도 있다. 일반적인 체벌도 그저 훈육의 과정이며 그들의 죄를 추궁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아직 불완전할 뿐이다. 작가는 그들이 보여주는 미성숙함, 서투름, 불완전함이 오히려 완성되지 못했기 때문에 가치가 있다고 한다. 말하자면 미성숙하다는 것은 서투름을 말하지만, 관습에 서투르다는 것이며 아직 자기 자신을 지키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들이 아무리 불완전하더라도 매혹적인 이유이다.

 



2. 젊음을 욕망하다


젊음은 욕망의 대상이며 동시에 시기의 대상이 된다

  따라서 소설의 심리학대로라면 성숙한 사람들은 미성숙한 사람들을 욕망할 수밖에 없다. 정확히는 자기 자신의 미성숙했던 시절, 자기 자신으로 존재했던 시절을 욕망한다. 성숙한 사람들은 사회적 압박과 요구에 지쳐버렸고, 망가졌다. 어른들은 젊은 사람들에게서 과거에 자신도 소유했던 쾌활함과 자유로움을 발견하게 된다.


 "바로 이런 나이에, 성적 타락의 대가로라도 새삼 자신을 꽃피울 기회, 젊음으로 돌아갈 기회가 온다면, 추함이 여전히 아름다움에 의해 이용되고 흡수될 가능성이 보인다면, 그렇다면....... 이건 모든 장애물들을 무용지물로 만드는, 저항할 수 없는 유혹이었다!" 188p


  젊음에 대한 욕망은 이제 두 중년 아저씨들을 공모하게 만든다. 그들이 꾸민 음모는 어떻게든 젊은 사람들과 자신을 연관시켜서 자신의 순진성을 되살리는 것이다. 둘의 음모는 초기에는 단순히 성적인 결합을 목표로 했지만, 알베르트의 어머니가 사망하면서 더 파격적인 계획을 세운다. 계획은 집에 거주하고 있는 독일 반군인 시에미안을 미성숙한 사람들의 손으로 살해하는 일이다. 성숙한 인간들은 어차피 그를 살해할 수 없다. 그들은 너무나 많은 의미(종교, 도덕, 철학, 윤리등과 같은)들에 의해 짓눌려 있다. 따라서 군인을 살해할 수 있는 사람은 그런 '의미들' 아직 오염되지 않은 미성숙한 존재들이다. 그러나 음모에 편집증적으로 몰입한 프레데릭은 한 가지 더 위험한 계획을 짜 넣게 된다. 결과적으로 계획은 모두 성공하고 그는 원하는 대로 다소 기만적인 젊음을 획득한다.


  주인공들은 나이가 많지만  작품 내에서 등장하는 장면들은 성인이라면 누구나 경험해볼 수 있는 일이다. 어린 시절을 회상하면서 ‘그 때가 좋았지.’하고 되 뇌이곤 하는 이유는 뭔가? 유년기에 주어진 그 절대적인 자유, 무책임함, 가벼움 때문이 아닌가. 바로 이런 이유들 때문에 나이가 들수록 젊음을 갈망하고, 시기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그 해결책은 없다. 두 아저씨들이 성공한 방법은 진정한 해결책이 아니다. 성숙한 인간들은 책임을 포기하는 순간 혐오감을 유발할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결말에 이르러 우리는 그들의 모습에서 혐오감을 느낀다. 그들이 얻은 젊음은 나이에 맞지 않는 어리광일 뿐이다. 타인의 치기어린 행동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언제나 성숙함을 강요받고, 성숙해지는 것 외에는 출구가 없는 인간의 운명 속에서 젊음에 대한 시기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3. 포르노그라피아


피할 수 없는 타인의 시선

  여기서 작가는 미성숙을 변형시키고 소비하는 성숙한 인간들의 또 다른 관습을 폭로한다. 그들은 미성숙함을 바라볼 때에도 성숙한 시각을 벗어날 수 없다. 그들이 계략한 사랑이 그 대표적인 예다.


"온순하게 말 잘 듣는, 그저 귀엽기만 한 젊음 따위가 무슨 재미가 있는가! 중요한 건 그런 젊음을 재료로 또 다른 젊음, 우리 어른들과 비극적으로 얽힌 젊음을 제조해 내는 일이었다." 187p


  문제는 바로 어른들이 바라보는 시각에 있다. 이 소설에서 진행되는 음모는 어른의 시각을 전제한다. 그렇지 않다면 젊음은 소년과 소녀의 사랑으로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젊음을 온전히 갖고 있으므로 아무런 관점도 필요하지 않다. 그러나 어른들의 경우는 다르다. 그들은 이미 젊음에 대한 개념을 갖고 있고, 그에 맞춰 시각과 욕망을 재단하고 표출한다. 어른들은 젊음에 대한 관음적인 시각, 젊음의 포르노그라피를 향유하는 것이다. 포르노로 소비되는 젊음의 모습, 바로 이 방법을 통해 두 음모자는 젊음을 회복한다. 이 성숙과 미성숙의 대결 속에서 젊음의 회복이란 자신을 왜곡하는 의미들로부터 탈출을 의미한다. 프레데릭이 의미, 가치들 때문에 할 수 없었던 살인을 하는 것이 그 이유이다. 그는 살인을 통해 50이 넘는 나이까지 쌓아온 모든 가치와 의미들을 부정한다. 그리고 화자인 비톨트는 그를 보면서 '순진해졌다'고 생각한다.   


  <포르노그라피아>라는 제목은 이와 같은 성숙한 인간들의 행태에서 기인한다. 그들이 타인을 보는 시선은 타인의 존재 그 자체를 배제한 채 오로지 자신의 욕망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타인을 왜곡되게 소비하는 방식은 마치 포르노그라피를 보는 태도와 같다. 포르노그라피도 선정적인 부분만 강조해서 보여주지 않나. 그렇기 때문에 작가는 제목을 <포르노그라피아>라고 지은 것이다. 성숙한 인간들의 세계는 전형적인 포르노그라피의 세계이다.




5. 뒷담화


  예상외로 번역은 잘 되어있었다. 작품 자체도 재미있게 읽었는데, 작품이 도식적이라 내용 자체는 따라가기는 쉬웠지만, 철학적인 주제는 이해하는데 오래 걸렸다. 작가는 아니라고 했지만, 현대소설에 비해 철학적인 주제에 집착한다는 느낌이 있다. 만약 곰브로비치의 소설을 이전에 읽어보았고 좋았다면 추천. 누구나 좋아할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곰브로비치의 출간된 세 소설들 중 처음 접하긴 무난한 선택일 것 같다.



아~주 간단한 작가소개


  작가인 비톨트 곰브로비치는 폴란드 태생의 작가이다. 그는 2차 세계대전 직전 아르헨티나에서 기사를 쓰다가 세계대전의 발발 소식을 듣곤 그대로 이주해버린다. 그에게 중요한 주제는 이 작품에서와 마찬가지로 미성숙함이다. 작가의 첫 소설 <페르디두르케>는 어느 신사가 타인의 요구에 의해 점차 어린이로 변해가는 내용이다. 그리고 이 작품 <포르노그라피아>는 그 주제를 발전시켜서 성숙과 미성숙을 대비시키는 한편, 그 괴리감 속에 발생한 미성숙함에 대한 욕구를 조망한 소설이었다.



다음화 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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