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물을 다리는 일

두 가지 시선

by 느슨한 빌리지


#1


부끄러운 일이지만, 나는 저번 주말에 처음 다림질을 했다. 이유는 엄마의 팔 수술 때문이었다. 인대가 파열되는 바람에 엄마는 집 근처 정형외과에 입원을 했고, 퇴원 후에는 오른손에 깁스를 하는 바람에 엄마가 할 수 있는 행동은 극히 제한적인 것 밖에 남지 않았다.


나는 평일에는 천안에 있는 기숙사에 살고있다. 티셔츠나 속옷 같은 빨래는 간단하게 하지만 셔츠는 달랐다. 다림질을 하지 못하는 탓에 셔츠를 입은 날에는 그것을 옷장에 고이 넣어두었다가 나는 빨래와 같이 상경을 하고 엄마가 옷을 다려주면 다시 그것을 가지고 내려가는 생활을 반복했다.


내가 왜 아직도 다림질을 하지 못할까, 처음에는 ‘군대를 갔다 오지 않아서’라는 것이 가장 먼저 생각났다. 공익을 가는 바람(?)에 나에게 있어 군대라는 공간은 한 달 동안 다녀온 훈련소의 경험이 전부였다. 훈련소에서는 매주(혹은 격주였던 것 같다.) 모든 훈련병의 옷을 모아서 빨았고 그 때문에 다림질을 할 일이 없었다.


또, 나는 태어나고 입사하기 전까지 한 번도 집 밖에서 생활했던 적이 없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교복을 입었는데, 나의 셔츠와 바지를 다리는 일은 늘 엄마의 몫이었다. 그렇게 중, 고등학교가 지나가고 대학생이 되었을 때에도 나는 다림질을 그저 당연한 ‘엄마의 일’이라고 생각했었던 거다.

그렇다고 내가 엄마에게 먼저 다림질을 하겠다고 말했던 적이 없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엄마는 그냥 당신이 하는 게 편하다고 했다. 그런 말을 들으면 나 역시 너무나 쉽게 그 마음을 접었다. 그렇게 엄마는 근 30년 동안 아침 일찍, 혹은 밤늦게 아들의 셔츠와 바지에 칼 주름을 잡았다.


하지만, 이는 그저 나의 변명에 불과하다. 나는 좀더 적극적이었어야 했다.


나의 첫 다림질. 엄마는 깁스를 한 채 소파에 앉아 나를 지도했다. 나는 엄마의 말에 따라 나의 셔츠를 다렸다. 다림질은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다림질의 장인이 되는 것이 아닌 이상) 구간을 나누어 분무기를 뿌리고, 필립스 다리미로 매끄럽게 그 위를 다졌다. 구겨진 주름이 펴지고 평탄한 면이 나타났다. 그렇게 첫 셔츠의 다림질을 끝내고 나는 뿌듯함을 느꼈다. 엄마는 내 다림질에 만족한 표정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뿌듯함 뒤에는 부끄러움이 뒤따랐다. 엄마가 오랫동안 해왔으니, 당연히 다림질을 엄마의 할 일로 생각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생각만 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엄마가 자신이 한다고 했을 때 내가 좀 더 엄마를 설득했더라면, 이 시점이 조금 더 당겨질 수 있었을 텐데.


올봄이 끝날 때쯤에는 셔츠를 서울 집에 가져오지 않고 기숙사 세탁실에서 능숙하게 다림질을 하는 나를 상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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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내가 작년 초에 관심을 가졌던 물건이 있다. LG전자에서 나온 ‘스타일러’였다. 얇은 냉장고처럼 생긴 이 전자제품은 옷을 걸어두면 살균과 탈취를 시켜주고 주름도 펴주는 기능이 있다. 매일 빨 수 없는 셔츠나 정장 바지 관리에 안성맞춤이고, 집에서도 간단하게 드라이클리닝을 할 수 있는 물건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값이 문제였다. 백 만원이 넘는 탓에 선뜻 구입이 망설여졌다. 그리고 그 망설임은 그대로 방치됐다.

내가 첫 다림질을 마쳤을 때, 공교롭게도 엄마도 ‘스타일러’를 말했다. 수입제품 중엔 싼 것도 있다더라, 라면서. 나와 동생은 인터넷을 검색했고, 20만 원대의 미국산 제품을 발견했다. 그 제품은 바닥만 고정돼 있었고, 옆면은 정장 커버처럼 옷을 걸어놓고 지퍼를 올리는 방식이었다. 어쨌든, 그 제품도 살균과 탈취 기능이 들어가 있었다. 엄마 역시 작년 초의 나처럼 그 제품에 매력을 느꼈다.



다운로드.png LG의 스타일러. 출처 : http://travelerstory.tistory.com/21


스타일러를 사용한다면, 사람 손이 많이 가는 다림질 시간을 줄일 수 있거나 아예 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셔츠 한 장을 다릴 때 걸리는 시간은 약 10분. 일주일에 집에서 나오는 빨래 중 다림질이 필요한 품목은 가족 것을 모두 합하면 1시간에서 1시간 반은 족히 걸릴 양이었다.


일주일에 다림질을 두 번 한다고 쳤을 때 3시간을 벌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1년이면 약 156시간에 해당하는 시간이다. 그리고 엄마처럼 손을 다쳤을 때도 일을 못할 걱정을 안해도 되는게 아닌가. 그래서 나는 스타일러를 구입하자는 엄마의 의견에 적극 동조했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봄이 가기 전에 (미국 것이든 LG 것이든)스타일러를 사기로 했다.

아마 내 월급이 나오면 진행되지 않을까...


올봄부터는 다림질을 기계에 맡기고 그 시간에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엄마의 모습을 상상한다.



* 참고 - TED : The Magic Washing Machine
(전체 맥락은 에너지 빈부격차지만, 세탁기의 마법으로 바뀐 자신의 삶을 마지막 부분에 알려준다.)

https://youtu.be/BZoKfap4g4w?t=7m49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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