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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슨한 빌리지 Dec 31. 2017

3-1.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는다> 뒷담화

* <느빌>의 오프라인 모임을 기록합니다. 느빌사람들의 열띤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하겠습니다.

* 발제문과 녹취록은 전담 에디터 없이 돌아가며 작성합니다.


1. 드디어 전쟁 속 여자들을 만나다


첫 텍스트인 <제 5도살장>을 읽으며, 에디터들의 논의는 '전쟁 속 여성'에 대해 의문으로 이어졌다. 흔히 알고 있던 전쟁 이야기는 남성을 중심으로 서사가 전개되었기 때문에, 전쟁 속 여성에 대해서는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았다.


이를 위해 전쟁 속의 여성을 다룬 <그을린 사랑>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영화를 통해 여성이 어떻게 그려지고 있는지와 함께 전쟁 이후의 용서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다. 하지만, 또 다른 여자들은 어떻게 전쟁을 겪었을까?


첫 발제에서부터 이어진 질문에 제대로 전부 대답하기는 역부족이었다. 이에 '전쟁' 키워드의 3번째 작품으로 노벨상 수상작이기도 하며, 실제 전쟁을 겪은 여성들의 인터뷰로 이루어진 목소리 소설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를 읽기로 했다.


 이번에는 과연 진짜 전쟁 속 여자들을 만날 수 있을까?



*이번 모임엔 학곰, 박루저, 다희, 이주, 오요밍 님이 참여했습니다.

*본 녹취록은 이전 게시글인 '발제문'을 읽고 오시면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습니다.

*참고 링크 :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파워 발제문

https://brunch.co.kr/@neuvilbooks/29



* 이 발제문과 함께 '전쟁'이라는 키워드를 다룬 <제5도살장>, <그을린 사랑>에 대한 발제문을 읽고 오면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습니다.

* 참고 링크 : <제5도살장> 파워 발제문

https://brunch.co.kr/@neuvilbooks/6

* 참고 링크 : <그을린 사랑> 파워 발제문

https://brunch.co.kr/@neuvilbooks/25



2. 녹취록 -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1. 시작 - 충격의 연속


*다희의 발제문을 읽고


이주 : 책을 읽으며 가장 놀랐던 것은 책에서 다루고 있는 여자들의 이야기가 전쟁 속에서 피해를 입은 여자들에 대한 이야기일 거라 생각했는데, 여성군인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이었어요. 전쟁에 직접 참여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는 것에 놀랐고 그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는 것에도 놀랐어요.


학곰 : 더 읽어야겠다. (학곰은 책을 다 읽지 못하고 발제에 참여했다.) 더 읽어야겠다는 마음과 자발적으로 군대를 간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이 충격이었어요. 전쟁이라고 하면 징집당하고 억지로 끌려가서 피해자로 소비되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제가 읽은 앞부분을 보면 거의 다 자기가 '나 가고 싶어요' 하면서 가지 말라고 하는데 억지로 지원하곤 했어요. 그런 부분에서 내가 생각하는 것과 다르구나 라고 생각을 했어요.


박루저 : 저는 이 책을 느끼면서 크게 느낀 부분은 우리가 과거 세대에게 지금 우리의 감각으로 쉽게 비난할 수 있는 것들이 과거 사람들에게는 당연한 것이었다는 것이에요. 지금의 감각으로는 국민국가나 민족주의 등 과거의 것들을 구시대적이라고 말하면서 해체해야한다고 말하기 쉽지만, 사실 기존의 체제를 직접 살아오고 통과한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당연한 것이라는 것이에요.


 예를 들면 후대의 사람들은 중세를 암흑기라고 하지만, 사실 그 때 사람들이 느끼는 행복감은 매우 높았다고 해요. 또 제가 최근에 베트남 여행을 갔을 때 느낀 점 중 하나가 '이 나라 사람들이 정말 행복하구나' 라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저는 이미 제가 살아온 삶과 겪은 것들이 기준이 되었기 때문에 이렇게 살 수 있느냐 하면 못 살겠더라고요.



2. 여성과 남성은 같은 전쟁을 겪고도 왜 다른 이야기를 할까?


학곰 : 본 것중에 기억나는 에피소드로 제비꽃을 발견하고 총구에 걸어놨다가 혼났던 에피소드가 있었는데, 그것은 오랫만에 풀을 봐서 기뻤던 정말로 순수한 감정으로 생각했어요. 그리고 그 장면에 '남자들은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일 것이다' 라는 뉘앙스의 그런 표현이 있었던 걸로 기억을 합니다.


규율이나 법칙, 효율적인 방법들 같은 전쟁의 승리에 필요한 프로파간다는 확실하게 서있는 군인들임에도, 남성들에 비해서 감성과 공감능력이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이러한 감각의 차이는 성별, 성의 차이로 달라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박루저 : 저는 조금 달라요. 성의 차이라기보다는 애초에 당시 전쟁이 남자들만의 이야기가 되어있던 상태에서 여자들이 전쟁에 참여한다고 하더라도 외부자의 입장으로 들어갔고, 남자들이 전쟁에 대해서 갖고 있는 책임감, 결심이랑은 다른 맥락에서 참여했기 때문에 그런 다른 감각들이 보이는 것 같아요. 아마 반대의 상황에서는 남자가 그런 이야기를 더 많이 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또는, 남녀가 처한 상황이 같은 상황이었다면 똑같은 감성을 느꼈을 거에요.


다희 : 저도 그런 차이는 성 차이가 아니라 이미 젠더화가 되어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생각해요. 남자들 중에서도 같은 걸 느끼는 사람이 있었겠지만 표현할 수 없었고 금기시되어 왔었던 거죠. 하지만 여자들은 상대적으로 그런 것에서 자유로웠기 때문에 다른 생각들을 표현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요. 그리고 그런 감정적 표현들에서 자유로운 대신 여성 병사들은 온전한 병사로 인정되지 않았죠. 남성과 여성의 젠더적 역할이 분명하게 나뉘어져 있는 상황에서 군인의 역할은 해야했던, 복잡한 상황이었던 거에요.


  커트 보니것의 <제5도살장>에서도 기억하려하고 사소한 걸 말하려고 하지만 결국 뭐 그런거지라며 끝나는 게 남자 병사들에게서 나올 수 밖에 없는 증상 같은 느낌이에요. 그들은 계속 감정을 숨기고 정리하려고 하는 거죠.



3. 소설이 전쟁 또는 개개인을 재현하는 것이 가능할까?     


박루저 : 이전 발제와 연결해서 이야기하자면 <제5도살장>이 전쟁 서사 중 기존이랑은 다르게 잘 쓴 소설이라고 생각하나, 결국엔 소설이라는 한계가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런 한계를 뛰어넘은 게 이런 목소리 소설이라고 생각합니다. ‘문학이 삶을 대신하면 안 된다’는 말이 상징하듯, 서사화를 거치면서 일어나는 왜곡은 있을 수 밖에없다고 봐요. 그럼 한계를 최소화하는 유일한 문학 형태가 이런 종류의 목소리 소설이 아닐까 합니다.


학곰 : 저는 문학이 삶을 대신할 수는 없지만 좀 더 확장시킬 순 있다고 생각해요. 사람이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은 공간적, 시간적 한계가 있어서 책을 통해 간접경험을 한다는 얘기를 쉽게 듣는데 이것이 문학의 효용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를테면 조선시대, 로마시대에 무슨 일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그렇게 과거 '사실'을 아는 것과,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고,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보고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를 아는 것은 다른 문제 같아요. 소설을 통해 서사와 맥락을 따라가는 과정 자체가 타자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최소한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생각할 여지를 만들어서, 현실에서 다른 사람을 대할때도 상대의 입장에서도 생각할 수 있게 된다면 세상이 좀 더 나아지지 않을까요.


박루저의 말에도 동의하지만 우리가 전쟁이라는 끔찍한 참상을 겪은 적도 없고 앞으로도 겪을 일이 거의 없는데 이런 책을 읽는 것 자체로 -커트보니것의 <제5도살장>을 읽는 것 자체로- 최소한 전세대에 대한 이해를 하는 장이 될 수 있어요. 물론 전쟁 영웅서사 같은 것들은 스스로 잘 걸러서 읽어야할 필요는 있고, 이를 잘 걸러내기위해선 한 쪽의 입장이 아닌 여러 입장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야 하겠지만요. 그게 우리가 소설을 읽으면서 나가야할 방향이 아닐까요.


박루저 : 소설의 형태를 취하면 소설 속 이야기로 각색이 되었을 때 어느 부분은 배제될 수밖에 없고 부작용이 발생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선택된 문학이 선택되지 않은 부분까지도 대표해버리게 된다는 의미였어요.


학곰 : 하지만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역시도 선택된 복원이라고 생각해요. 녹음기로 자료가 남아있지 않은 이상 100퍼센트 완벽한 것은 없어요. 게다가 전후 몇십 년이 지나서 취재한 것이기에 선택된 기억이 될 수 밖에 없어요.  


장 에슈노즈의 <달리기>라는 소설이 있는데, 에밀이라는 구소련 달리기 선수의 이야기로 공산주의를 홍보하는 영웅이던 주인공이 어느 순간 체제가 흔들리면서, '아! 내가 여태까지 했던 것이 내가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선전으로 비춰졌구나. 앞으로는 다른 방향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일련의 과정을 그린 소설이에요. 녹취록 형태로 르포를 만든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와 작가가 타인의 인생을 서술한 <달리기> 둘 중에 하나를 고르라고 하면 저는 문학을 선택할 거 같아요. 전자는 당사자가 선택한 이야기이고, 후자는 타자가 선택한 이야기이기에 외려 후자가 한 사람의 인생만 놓고 본다면 더 객관적일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박루저 : 이를테면 말씀하신 것처럼 대부분의 소설이 그런 자서전 형태를 띄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전쟁이라는 것이 서사의 형태로 기록되었을 때 문제가 되는 거죠. 이념과 이념, 또는 국가의 형태로 기록되면서 소외되는 개인이 발생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에요.


이주 : 이 책을 읽으면서 계속 생각나는 책이 있었어요. 예전 역사학 입문이라는 수업에서 <치즈와 구더기>라는 책을 다룬 적이 있었는데, 중세시대에 살고 있으면서 신의 존재를 거부하는 사람에 대한 책이에요. 역사는 쓰여진 것이고, 선택된 것만 쓰여지므로, 그런 개인의 존재는 역사에 기록되지 않아요. 최근에 역사학계에서 하려고 하는 것이 이런 개인을 다시 복원하는 것이라고 해요. 이념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외의 작은 부분들을 언급한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박루저 : 이 책이 80년대에 쓰여졌음에도 불구하고, 지금에 와서야 많이 읽히고 있고 2015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게 된 것도 그런 맥락에서인 것 같아요. 문학, 또는 역사의 부분에서 이런 개인들을 복원하려는 움직임이 계속 이어지고 있어요.


여성 개개인의 모습을 책 속에서 이렇게 생생하게 접한 경험은 처음이었어요. 이런 책들이 독자에게 남기는 감각들이 쌓이다보면 분명 유의미한 변화를 이끌어낼 거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약자에 대한 폭력이나 전체주의적인 시각을 드러내는 문학(혹은 문화)들을 지적하고 비판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중요하고요. 서사 자체로는 재미있을지 몰라도, 그 책들이 남기는 환기시키는 감각들이 중요하기 때문이죠.


다희 : <제5도살장>부터 <그을린 사랑> 그리고 지금 이 책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다루고 있는 텍스트들이 어떻게보면 공통적으로 개인의 이야기들에 집중하고 있어요.


이 책에서 인상 깊었던 부분이 전쟁이라는 상황인데도 정말 사소한 기억들을 하고 있다는 건데요. 앞머리를 솔방울로 말았다거나 속옷을 받고 기뻐서 보이게 입었다거나 하는 그런 기억들이요. 전쟁과 같은 상황에서도 정말 생생하게 살아있었구나, 그리고 그 기억들은 역사에 기록되지는 않았지만 개개인의 삶 속에 녹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개인의 기억들을 다양한 텍스트가 담아내는 작업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한 텍스트에서 완벽하게 모든 목소리를 담기는 어렵기 때문에 여러 방향에서 터져나와야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이 책의 경우 여러 실존 인물들의 목소리를 담았기 때문에 더 효과적으로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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