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물어지는 생물과 비생물의 경계
얼마 전 나는 일본에서 로봇개들의 장례식이 열렸다는 뉴스를 접했다. 고장만 나지 않으면 영원의 삶을 살 수 있는 로봇개가 왜?라는 질문을 가지며 뉴스를 읽어 내려갔다. 그리고 뉴스에 답이 있었다. 나는 그저 로봇을 ‘로봇’이라는 개념 자체로만 바라봤던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로봇을 불변이나 영원에 비유하곤 한다. 생물은 시간이 지날수록 모습도 변하고 노화가 찾아오지만, 금속이나 플라스틱과 같은 물성을 가진 로봇은 단단하거나 오래 쓸 수 있는 속성을 가지기 때문이다.
단순한 물성만을 따졌을 때 ‘영원’의 속성에 좀 더 가까운 쪽은 로봇 쪽이다. 생물은 끊임없이 영양분을 공급받아야 하고 관리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금속이나 플라스틱은 어떨까? 금속은 녹이 슬지만 수십 년은 거뜬히 버티고 플라스틱은 몇 백 년 간 썩지 않는다. 영생의 육체를 원한다면 금속이나 플라스틱으로 만드는 것이 합당해 보인다.
그러나, 내가 간과한 것은 물성 외적인 것이었다. 800마리의 전자 댕댕이의 장례가 치러진 이유는 ‘단종’이었다. 장례식의 주인공인 ‘아이보’는 일본 소니社에서 1999년에 출시한 제품이었다. 뉴스에 따르면, 이 전자 댕댕이는 25만 엔이라는 비싼 가격에도 15만 대 이상이 팔렸다고 한다. 그러나, 2006년 수익성이 악화되어 더 이상 생산이 되지 않았고 AS센터마저 2014년에 문을 닫았다. 그래서 아이보의 보유자들은 AS가 불가해지자 전자 애완견의 장례식을 치르기로 한 것이다.
사람이 아프면 병원에 가는 것처럼, 로봇도 망가지면 수리를 받는다. 로봇도 하나의 제품이다. 제품은 그것을 만든 회사의 생산품이다. 핸드폰도 어떤 회사의 제품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소프트웨어가 ios와 안드로이드로 나뉘고, 제조사마다 부품이 다르다. 로봇 댕댕이 ‘아이보’도 그랬다. 로봇도 영생의 삶을 사려면 고장 날 때마다 수리를 해주는 부품 혹은 시스템이 필요하다. 출시한 지 오래된 자동차와 핸드폰이 부품이 없으면 고장 날 때까지 쓰고 버려야 하는 것처럼, 인간이 만든 생산품인 로봇도 비슷한 생애 주기를 갖는다.
그래서 나도 문득 생각했다. 먼 미래에, 인류의 육체가 로봇으로 대체될 때도 어떠한 회사의 제품을 사용할 것인지가 매우 중요하지 않을까. 육체가 ‘고장’이 나고 수리할 수 없게 된다면 그것 역시 죽음에 이르는 길이다. 그리고 그것은 ‘나’ 혼자만의 일이 아니라 나와 같은 육체를 구입한 사람들 모두가 놓이는 처지다. 그리고 이런 ‘단종’에 의한 죽음이 생물계의 ‘멸종’과 비슷한 것 같아 흥미롭다.
그래도, 미래에 육체를 기계로 대체된다면 단종이 되어도 계속 삶을 이어갈 수 있는 부수적 장치들을 미리 생각하고 개발을 하겠지. 가전제품처럼 몸도 몇 년에 한 번 씩 갈아주는 세상이 올지도. ‘영원성’은 나의 육체를 이루는 ‘성분’에 달린 것이 아닌 육체를 계속해서 이어간다는 ‘개념’에 달려있는 것일지도.
재밌게도, 전자 댕댕이의 장례식의 추도사는 후지 소프트 사의 대화형 로봇 ‘팔로’와 스님의 경전 암송으로 진행됐다. 그리고 일부 보유자들은 장례식 이후 다른 아이보에게 필요한 ‘장기(부품)’을 기증했다. 이런 것을 보면 점점 생물과 비생물의 경계가 점점 허물어지고 있음을 느낀다. ENDE
*아이보의 사진을 검색하다가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올해 미국에서 열린 CES2018(가전제품 박람회)에서 소니가 새로운 아이보를 출시했다는 소식이었다. 예전보다 훨씬 행동이 자연스러워진 아이보, 만약 구버전의 아이보의 감정을 새로운 버전으로 옮길 수 있다면, 아이보를 구입한 사람들이 매우 좋아하지 않을까.
[읽어볼 만한 책]
뉴스를 읽고, 내가 읽었던 로봇-인간에 관한 소설이 몇 개 떠올랐다.
-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주기, 테드 창
- 아빠의 우주여행, 양원영 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