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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슨한 빌리지 Jul 17. 2018

타인을 통해 얻는 희망 같은 것들

24-1. <피프티피플> 뒷담화

* <느빌>의 오프라인 모임을 기록합니다.
* 발제문과 뒷담화는 전담 에디터 없이 돌아가며 작성합니다.
* 이 뒷담화는 타인 키워드의 세 번째 텍스트 <피프티피플>에 대해 나눈 이야기를 기록한 글입니다.


*이번 모임엔 다희, 박루저, 이주, 연연님이 참여했습니다.
*본 녹취록은 ' <피프티피플> 발제문 : 우리는 함께 버틸 타인들'을 읽고 오시면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습니다.



오십명의 사람과 오십가지의 삶


다희 :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발제는 읽으며 느꼈던 점들 위주로 썼고, 특히 공감됐던 부분을 나눠보고 싶었습니다. 발제에도 언급했지만 책을 읽으면서 약간은 판타지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거든요. 나오는 등장인물들이 전부 착해서 기분 좋게 읽으면서도 이렇게 낙관적으로 봐도 되는건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어요. 다들 어떻게 읽으셨나요?

          

이주 : 저도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어요. 중간중간 울컥하는 부분들도 많아서 몇 번은 울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아무래도 발제일에 쫓겨서 빠르게 읽다보니 등장인물이 30명을 넘어가자 좀 지치더라고요. 마지막 결말 부분은 약간 판타지 같다는 느낌에 동의해요. 하지만 이 소설의 앞의 분위기를 생각하면 이런 결말일 수 밖에 없었을 것 같아요.

     

연연 : 원래 정세랑 작가를 좋아해서 다른 작품도 다 읽었어요. 대부분의 소설이 이런 판타지스러운 느낌이 있어요. 이 소설은 현실 기반의 작품이지만 실제로 SF 작가로 작품활동을 시작하기도 했고요. 다정한 사람들이 많이 나오는 것 같고 소프트한 SF 위주로 쓰는 것 같아요. 세계를 다루는 방식이 다정한 사람들끼리 갈등이나 난관이 생겼을 때 재밋게 풀어나가는 느낌이랄까요. 다른 작품에 비하면 이 작품은 유머가 없는 편이에요.

     

박루저 : 앞부분에서는 판타지스럽다고 생각 안 하고, 현실을 잘 포착했다고 생각했어요. <상냥한 폭력의 시대>에서 정이현 작가도 삶의 단면을 잘 포착해 보여주었지만 읽으면서는 불편함을 느꼈었는데(이것이 ‘폭력’이라고 명시하면서 불편할거야 라고 말해주는 느낌으로) <피프티피플>에서는 편견을 겪는 사람들이 일상에서 이겨나가는 것이 잘 포착되어 있다고 느꼈어요. 처음에는 별로라고 생각했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한 명 한 명이 편견을 가득 만날 수 밖에 없고 편견이나 폭력임을 알면서도 자기 생존을 위해 상대방을 그렇게 대하는 것이 당연하게 그려지더라고요. 이런 점이 플랫하면서도 현실적으로 그려냈다고 느꼈어요.

     

연연 : 인사이트나 통찰을 주는 소설이 있고 그리기에 충실한 소설이 있다면 <피프티피플>은 후자쪽인 것 같아요. 여러명의 등장인물이 등장하다보니 짧게 그려야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인물들을 그리기 + 연결을 하려고 한 것 같아요.



새로운 감각, 젊은 감각


박루저 : 오랜만에 젊은 감각의 작품이었어요. 저는 우리 세대가 치열하게 살다보면 수많은 폭력들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간의 작품에서는 그런 폭력을 지적하면서 불쾌함을 들춰내고 느끼게하는 식의 작품이 많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전 그런 문학에 대해서 늘 불만이 많았었거든요. 굳이 작가의식으로 날카롭게 포착하지 않아도 그런 폭력이 우리에게는 당연한 것이고, 우리는 누구보다 잘 느끼고 있으니까요. 말하자면 그간의 소설들은 대부분 이미 내가 온몸으로 체감하는 불편한 현실을 날카롭게 그려내는 것 + 어떠한 의식이나 나아가야하는 지점을 보여주는 식이었는데, 이 소설은 그런 것 없어서 더 괜찮았던 것 같아요.

     

다희 : 판단의 시선이 없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소설에 굉장히 다양한 세대의 사람들이 다 나오잖아요. 할아버지에서부터 청소년까지. 성별도 계속 바뀌는데 정말 잘 그려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타인에 대해 함부로 판단하는 않는 것이 새로운 감각이 아닐까요.

     

연연 : 저는 이 소설을 출간 전 연재할 때부터 읽었어요. 2015년 겨울부터 2016년 봄까지 연재했는데 그때는 '모두가 춤을 춘다'는 제목이었어요. 작가의 말에 따르면 소설을 구상하던 중 세월호 사건이 생기면서 사회적인 이야기를 넣고 싶었다고 해요. 각 화에 한 인물의 이야기를 담다보니 짧게 끊어가며 말해야해서 어려웠지만 그래도 그런 내용을 넣어야겠다고 생각했대요. 사건을 다루는 태도에 대한 부분이 젊은 감각이라고 느꼈어요.

     

이주 : 소설의 구성이나 전개 부분에서도 굉장히 새롭다고 느꼈어요. 처음에는 병원을 배경으로 인물이 나와서 병원 이야기인줄 알았는데 또 갑자기 다른이야기가 나오고. 전혀 다른 인물들의 이야기인줄 알았는데 읽다보면 그 사람들이 또 연결되어 있어서 다시 끄집어내지고 하는게 좋았어요. 연재 소설로 쓰기 좋은 기획, 형식이었던 것 같아요.

     

박루저, 다희 : 맞아요, 형식이 좋았어요!

     

연연 : 퍼즐에 비유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인물들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맞아들어가는 지점이 있어요. 그리고 일단 재미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어요. 추천을 할 수 있는 책에 기준이 있는데 이를테면 진입장벽 낮고 재미가 있고 좋은 책이어야 하고 텐션을 평균 이상으로 끌어올려주는 책이랄까요. 그런 의미에서 강추할 수 있는 책입니다!!



결말, 그리고 선한 '타인'에 대해

     

다희 : 그런데 소설을 읽으며 한편으로는 이렇게 낙관적이어도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피프티피플> 속의 인물들만 보면 악한 타인이 없을 것 같고 어느 사람이든 다정한 면이 있을 것 같잖아요. 그런데 현실의 뉴스를 보면 인류애가 사라지는 사건들 뿐이라...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현실을 살아가고 타인을 봐야하는지 얘기해보고 싶어요.

     

연연 : 그런데 타인의 끔찍한 부분이 저에게도 있잖아요. 타인을 통해 싫어하는 부분도 보고 닮고 싶은 부분도 보면서 타자를 거울 삶아 내 안에 있는 것을 발견하는 것 아닐까요. 물론 저도 현실이 그렇게 낙관적이진 않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어떻게 살아야되나 했을 때, 현자 같은 할아버지가 하는 말 중에 '우리가 하는 일이 돌을 멀리 던지는 일이라고 생각합시다. 내가 생각하는 시작선에서 던지는 것이지만 긴 시간으로 봤을 때는 릴레이처럼 던지는 것.'이라는 말이 있었어요.) 절망적인 상황에서는 이런 희망, 일종의 정신승리가 필요한 것 같아요. 그래야 버틸 수 있으니까요.

     

박루저 : 작가가 어떤 톤으로 사람들을 묶었는지는 알겠지만, 진짜 현실이랑은 다를 수 밖에 없는 것 같아요. 수많은 편견들이 존재하는데 그저 상냥한 사람이 많다고 해서 세상이 바뀐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저항하는 문제의식이 공유가 되어야하고 일상에서 그 문제의식이 계속 표출될 때 현실이 조금씩 바뀐다고 생각해요. 근데 소설에서는 사람들끼리 서로 간에 불편한 상황에 대해서 터놓고 얘기를 나눈다던지, 문제의식을 공유한다든지 하는 부분이 적다고 느꼈어요. 뭔가 힘들어도 으쌰으쌰하면서 살아가자는 느낌?

     

연연 : 저는 조금 다르게 생각하는 게, 등장인물 중 '이설아'라는 여자 의사가 있는데 빻은(?) 소리를 하는 선배 의사가 나왔을 때 다 지적하는 인물이에요. 그런 부분을 보면 문제의식이 공유되는 부분이 분명히 있는 것 같아요. 알고보니 병원 간부의 딸이기 때문에 가능한 건가 싶기도 하지만요.

     

다희 : 맞아요. 저도 그 부분이 인상 깊었는데 그 챕터 마지막에 하는 말이 '누군가가 바보 같은 소리를 하면 끊임없이 대답하면서 살거다'는 부분이 있어요. 그런 사람들이 세상을 바꾸는 것 같아요. 그리고 등장인물들 중에서는 '진선미'가 인상 깊었어요. 하하하하 웃으며 성공하는 타입의 여자. 이런 사람이 현실에 어디있을까 싶긴한데 막연한 정신 승리는 아닌 것 같아요.

     

이주 : 아마도 작가가 소설을 쓰면서 사회나 사건, 그리고 그것에 대항하는 것도 중요한 부분이었겠지만 그 이상으로 '사람'에 대해 집중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지 뭔가 소설을 읽다보면 아 나도 이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자기계발서 같은 감상이 들기도 하더라고요.(저도 진선미가 좋아습니다) 어쨌거나 밑줄을 그은 문구들을 보면 다 따뜻했던 문구였다는 점을 보면 이런 착한 타인도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박루저 : 동의해요. <피프티피플>을 읽으며 그래도 '문학의 가능성은 여전히 유효하다' 라고 느꼈어요. 최근에 짜증나는 사람들을 많이 겪으면서 타인이 미워지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럼에도 한 사람에 대해 공감하거나 관찰하는 시선을 잃게 되면 사람들에게 공감할 수 없고 삶이 더 삭막해지는 것 같아요. 그런 시도를 접어 버리지 않는게 중요하지 않을까요. 소설로 마음을 다잡는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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