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2. 『경애의 마음』 뒷담화
* 외로움에 관한 첫 번째 텍스트, 책 『경애의 마음』에 대해 '느슨한 빌리지' 에디터가 나눈 이야기를 기록합니다.
* 발제문과 뒷담화는 전담 에디터 없이 돌아가며 씁니다.
*이번 모임엔 박루저, 다희, 이주, 연연, 해정, 학곰 이 참여했습니다.
*본 녹취록은 <경애의 마음> 발제문 '마음이 아프도록 내버려두지 않는 그런 마음'을 읽고 오시면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습니다.
박루저: 『경애의 마음』은 처음부터 끝까지 사랑을 말하지만, 이제껏 이야기되지 않은 모습을 띠고 있어요. 경애와 상수는 은총의 죽음으로, 조 선생과 경애는 파업 실패로 엮여 있지만 서로 직접적으로 상처를 이야기하지 않아요. 상처 받음으로써 비로소 남에게 상처주지 않는 사람이 되어가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경애의 마음』이 감각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도 상처를 건드리지 않기 위한 긴장감 때문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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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희: 저는 읽을 때마다 눈물이 나올 정도로 좋았어요. 그런데 다른 분들은 안 그러셨더라고요. 그냥 제가 요즘 힘들었나 싶기도 하네요(웃음).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던 이유는, 너무나 슬픈 상황에서도 울지 않고 일상을 유지하려고 애쓰는 상황이 계속해서 제시되기 때문이에요. 사랑이라고 얘기했지만 그보단 상실감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마음을 쏟던 사람을 잃은 후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한 이야기 말이죠. 특히 경애가 경험한 인천 화재 사건이 세월호 사건과 겹치더라고요. 불이 났는데도 돈을 내지 않을까봐 호프집에서 못 나가게 한 점과 호프집 주인이 학생들을 버리고 혼자 도망친 점 등등. 그런데 인천 화재 사건 또한 실화라고 해서 놀랐어요. 그리고 유사한 사건(인재)이 반복된다는 점이 속상하고 슬펐습니다.
박루저: 김금희 작가의 전작이자 단편집 『너무 한낮의 연애』에서는 느끼지 못한 긴장감이 느껴졌어요. 『너무 한낮의 연애』는 긴장감이 탈색되어 무색무취였거든요. 『너무 한낮의 연애』의 인물들이 상처를 받고 마음을 폐기하지 말자는 의지도 없이 마음을 폐기해버린 사람이라면, 『경애의 마음』에서는 적어도 내 마음만은 폐기하지 말자는 태도를 갖고 있어요. 그 지점에서 긴장감이 생기고요.
해정: 『너무 한낮의 연애』와 비교했을 때, 『경애의 마음』 속 관계들이 더 역동적이라는 데에는 동의하지만 장편으로서는 느슨한 듯해요. 주제적으로는 『너무 한낮의 연애』와 비슷해요. 마음을 살피는 이야기, 특히 상처 받은 사람들에게 무엇이 필요할지 고민하는 이야기이죠. 그런 면에서 은총이 죽고 나서 경애가 은총의 전화기에 남긴 부재중 메시지를 상수가 듣는 장면이 정말 좋았어요. 물론 은총의 죽음이라는 사건도 중요하지만, 사건 이후 상실을 쉽게 잊지 못하는 사람들의 남아버린 마음이 허공에 흩어지지 않고 누군가에게 전해졌음이 중요하다고 느꼈거든요. 그로써 (마음을 전해받은) 상수가 남은 시간을 버틸 수 있었다는 점도 좋았어요.
학곰: 「조중균 씨의 세계」(『너무 한낮의 연애』에 수록)의 조중균 씨처럼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면서 득도 받지 않는 사람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요즘 감성과 맞다고 느꼈어요. 제가 선의를 받을 때 너무 부담스러워하니 어떤 분이 그러시더라고요. 그냥 이번 한번 받고 다음에 해주면 되는 것 아니냐고. 그러니 가볍게 받아들여달라고. 그런데 그때 저는 '아, 받아야겠다' 보다는 '아, 이 사람한테 절대 폐 끼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이처럼 해도 끼치지 않고 득도 받지 않으려는 사람이 지금과 같은 사회에서 살아가면 어떤 사건이 벌어질까에 대한 이야기로 읽혀요. 「조중균 씨의 세계」가 오프라인에서의 사건만 다루었다면, 『경애의 마음』은 온라인으로 확장된 셈이에요. 설정으로서 SNS 페이지라는 장치는 어땠나요?
다희: 리얼하게 잘 표현한 것 같아요. 상수가 운영하는 익명 연애 상담 페이지 〈언니는 죄가 없다〉(이후 〈언.죄.다〉)가 실제로 있을 법한 페이지잖아요? 게다가 운영진이 커뮤니티를 팔고 달아난 경우가 많아서 사전조사가 잘 됐다고 느꼈어요.
해정: 상처 받은 사람을 위로하는 페이지라는 설정이 좋았어요. 어릴 적 어머니를 잃은 사건을 포함해, 상수가 상처를 받으면서 상처주는 사람처럼 살지 않겠다고 다짐하잖아요. 그런 점에서 타인의 마음을 생각하는 페이지를 만들 수 있었겠죠. 또한 옛 연인을 잊지 못해 끌려다니는 사연에 '잊으세요!'라고 단호하게 이야기하다가 그 사연의 주인공이 경애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점점 물러나게 되는 과정이 좋았어요. 이러한 변화가 소설의 메시지 아닐까요? 익명의 누군가에게는 쉬운 이야기도 내 주변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어려워지죠. 속사정을 생각하면 어느 누구에게도 어떤 말도 쉽게 말할 수 없어요.
다희: 맞아요. 〈언.죄.다〉는 경애와 상수를 연결하는 중요한 설정이기도 해요. 친해서 힘든 얘기하기 어려운 경우가 더러 있잖아요. 경애도 친한 친구인 미유에게는 말 못하고 〈언.죄.다〉에 사연을 보내죠. 미유가 이해하지 못한 어려움을 운영자 상수가 이해(한다고 생각)하고요.
박루저: 말뿐만 아니라 행동이 변화하는 시점도 흥미로워요. 산주와의 관계에 얽매이던 경애가 그로부터 풀려나올 때쯤 1인 시위를 시작하죠. 이때에 상수를 대하는 태도가 변화하기도 하고요. 비슷한 아픔을 공유하는 누군가를 통해 자신의 상처로부터 자유로워지면서 비로소 변화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박루저: 『너무 한낮의 연애』를 읽을 때는, 비현실적이지만 동시대적인 무색무취 캐릭터가 참신하다고 느꼈는데 지금은 그러한 경애를 보니 신선하지 않았어요. 2-3년 사이에 여러 젊은 작가의 작품을 읽으며 이런 캐릭터가 조금 피로해진 듯해요. 누군가 이제는 붕 떠 있는 여성 캐릭터가 거의 모든 소설에 나온다고 말했던 기억도 나네요.
해정: 이러한 여성 캐릭터를 접하고 충격 받았던 작품은 황정은 작가의 『계속해보겠습니다』였어요. 상처 받고 남에게 상처주는 일에 굉장히 예민한 사람이죠. 그 후로 특히 젊은 여성 작가가 쓰는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유형인 듯해요. 그래서 『경애의 마음』을 읽고 깜짝 놀라기보다는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했어요.
박루저: 동의해요. 정말 좋은 소설을 읽으면 실용서나 사회과학서와 같은 자극이 하찮게끔 느껴지는데, 『경애의 마음』은 그 정도는 아니었어요. 상수가 상처에 예민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윤리적인 면에서는 태도가 애매해서 더 정 주기 어려웠던 것 같아요.
다희: 저는 상수가 어릴 적 가정에서 겪은 사건과 어머니를 대하는 주변 사람들의 태도에서 받은 상처를 안 후에 상수가 애틋해졌어요. 그런 일련의 사건을 통해 상수가 여성에 대한 폭력과 착취에 보다 더 민감해지지 않았을까요? 베트남에서 근무할 때 접대문화에 질색했던 것처럼요.
연연: 상수나 경애가 상처에 예민한 인간이자 식물적인 인간이라고 생각해요. 상수 자리가 밀려나면서 식물을 직장 동료인 유정에게 줄 때, 신경써야 산다고 설명하잖아요. 그 장면에서 살아 있는지 없는지 모르지만 애정을 주지 않으면 죽는다는 면이 사람과 비슷하다고 느꼈어요.
학곰: 저도 많이 보아온 캐릭터라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그만큼 내성적인 사람도 '있음'의 영역으로 들어온 듯해서 좋아요.
다희: 최은영 작가와 김금희 작가를 비롯해 이러한 캐릭터가 등장하는 이야기가 꾸준히 읽히는 만큼 사람들이 많이 아픈 거 아닐까요? 그런 면에서 휴가 때 뭐 읽을까 하면 추천할 만한, 마음의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는 좋은 소설이었습니다.
언니, 폐기 안해도 돼요. 마음을 폐기하지 마세요. 마음은 그렇게 어느 부분을 버릴 수 있는 게 아니더라고요. 우리는 조금 부스러지기는 했지만 파괴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언제든 강변북로를 혼자 달려 돌아올 수 있잖습니까. 건강하세요, 잘 먹고요, 고기도 좋지만 가끔은 채소를, 아니 그냥 잘 지내요. 그것이 우리의 최종 매뉴얼이에요. (『경애의 마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