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금희 <경애의 마음>
*느슨한 빌리지에서는 "신"이라는 키워드에 이어 "외로움"이라는 키워드로 책을 읽고 있습니다.
*<경애의 마음>은 "외로움" 3부작 중 첫 번째 텍스트입니다.
외로운 사람들 투성이다. 그들은 저마다의 상처로 스스로 가둬놓고, 섬처럼 서로로부터 떨어져 있다.
김금희 작가가 <경애의 마음>으로 덤덤히 보여주는 ‘사랑’에는 뻔한 알콩달콩함도, 흔한 핑크빛 필터도 없다. 오히려 아픔이 있고, 이별이 있고, 상처가 있다. 서로에게 다가가지도, 그렇다고 혼자서 견디지도 못하는 외로운 사람들의 얘기로 가득하다.
그래서 <경애의 마음>은 아프고 슬펐다. 사랑과 아픔은 겹칠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그 무던함이 아팠고, 지독히도 맞는 얘기라서 슬펐다.
경애가 믿어 왔던 사랑은, 실은 착취와 닮아있다.
상처를 준 상대를 마음껏 미워하지 못하면서, 동시에 그 상처에서 벗어나지도 못한다. 자기 일상을 조금도 허락하지 않았던 남자에게 여전히 휘둘리고, 자기를 원망하고 좌절시켰던 수많은 파업 노동자들을 맘껏 미워하지 못한다. 그런 경애한테 상수는, 스스로를 뻔한 아픔으로 몰아가는 이런 마음을 폐기하라고 충고한다. 그 따위의 착각과 마음들은 ‘싹 폐기’하라고.
그런데 외로움과 상처로 뒤덮인 사람에게 필요한 건 상수(혹은 ‘언니’)의 따끔한 충고가 아니다. 그들은 앞으로 자신이 받을 상처가 두려운 게 아니며, 상처를 준 누군가를 미워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이미 생채기가 나버린 과거가 아팠던 것이며, 그 상처를 스스로 보듬을 기회를 잃은 자신을 미워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마음을 폐기해서는 안 된다.
아픔을 떨치지 못한 이들은 쉽게 행복과 불행을 말하지 못한다. 그래서 경애는 상수에게, 은총이가 죽어버린 1999년 이후의 삶에 대해 묻는다. 그 상처를 여전히 아파하고 있는지, 미안함과 슬픔을 어떻게 보듬었는지를 묻는다.
아픔을 떨치지 못한 이들은 쉽게 행복과 불행을 말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상처를 무책임하게 건드리지도 않는다. 그래서 상수는 경애에게 쉽게 답하지 않는다. 은총이는 널 무척이나 사랑했었다고, 자기가 실은 <언죄다>의 언니라고, 쉽게 말하지 못한다. 그렇게 과거의 어느 상처는 이들을 서로에게 닿지 못하게 한다.
그럼에도, 결국 이들이 서로에게 닿을 수 있는 건 위로가 아니라 오히려 그 ‘상처’ 때문이다. 그들은 서로의 아픔을 확인하며 같이 무너지고, 서로의 상처를 공유하며 가까워지고, 서로의 이별을 함부로 위로하지 않으며 사랑을 회복한다. 상처를 받아 망가졌을지라도, 계속해서 아파할 줄 아는 그 폐기되지 않은 마음이 그들을 이어주고 있는 것이다.
마냥 슬퍼해서도 안되고, 쉽게 상처를 허락해도 안된다.
그러니까, 우리는 누군가의 슬픔에 마냥 아파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은 그렇지가 않다는 것이다. ‘누군가’의 슬픔이 아니라, ‘내 눈 앞 당신’의 슬픔일 때 우리는 무너지고, 아파한다. 내 마음이 닿아있는 누군가의 슬픔이라야 겨우 우리가 같이 아파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SNS 상에서 ‘싹 다 폐기’하라고 따끔하게 말했던 상수는, 그 대상이 눈앞의 경애가 되자 무슨 일이 있어도 그 마음을 잊지 말라고 말을 바꿀 수밖에 없다. 섬처럼 존재했던 그들은 이렇게 서로에게 닿아간다.
바꿔 말하면, 그들은, 혹은 우리는, 적당히 냉정하게 살아가야만 한다. 우리 일상의 테두리가 무너지지 않기 위해선 적당히 누군가의 슬픔을 흘려들어야 하고, 누군가의 요구에 단호해야만 한다. 상대의 불행을 내 기회로 삼아서도 안 되지만, 나를 불행으로 몰아가는 상대에게 끌려가서도 안 되는 것이다. 그래서 경애는 자신을 다시 찾아온 과거의 남자(산주)를 끝내 거부하고, 덤덤하게 1인 시위를 시작한다. 자신이 더 이상 아프지 않기 위해서다. 스스로에게 아픔을 허락하지 않는 것이다.
결국 소설 마지막에야 슬쩍 드러나는 ‘경애의 마음’이란, 내 마음이 아프도록 내버려두지 않는 그런 마음이다. 그러니까, 아무리 외롭고 아파도, 마음을 폐기해서는 안 된다. 그래야 누군가에게 다시 닿을 수 있고, 어렴풋하게라도 사랑이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