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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슨한 빌리지 Dec 11. 2018

에이즈에 걸렸어.

38. 장 마크 발레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

*한 달에 한 주제를 정해서 책 2권과 영화 2편을 봅니다.

*매주 수요일 발제 / 월요일 녹취가 업로드됩니다.

* 12월의 주제는 [혐오와 연대]입니다!


*12월 주제 [혐오와 연대] 업로드 일정표

- 12월 5일(수)    『민트의 세계』, 듀나(2018)

- 12월 12일(수)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 장 마크 발레(2013)

- 12월 19일(수)  『말이 칼이 될 때』, 홍성수(2018)

- 12월 27일(수)   「런던 프라이드」, 매튜 워처스(2014)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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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한 남자가 있다. 이름은 우드루프이고 전기기술자로 일한다. 그는 로데오를 사랑한다. 카우보이 모자를 항상 쓰고 다니며 남성적인 것을 좋아한다. 로데오판에서 돈을 걸고, 그날 번 돈으로 여자들을 불러 놀고, 관계를 맺고 언젠가 자신도 소 위에서 8초를 버티는 꿈을 꾼다. 신문에 나온, 유명한 배우가 호모 짓을 하다가 에이즈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고는 경멸에 가까운 말들을 내뱉는다. 1985년, 텍사스에서 로데오를 좋아하는 마초에겐 동성애와 관련된 것을 혐오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깨질 듯한 두통을 느낀다. 별 것 아니라 생각했던 그에게 찾아온 것은 에이즈 판정. 의사는 그의 건강상태를 미루어 30일 정도가 남았다고 알려준다. 하지만 그는 의사에게 자신이 호모들이나 걸리는 병에 걸리 리가 없다며 욕을 퍼붓고 병원을 나온다.


하지만 악화되는 자신의 상태와 콘돔을 사용하지 않았을 때도 에이즈가 걸릴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절망에 빠진다. 자신이 그토록 혐오했던 대상과 자신이 동일한 상황에 놓였기 때문이다.  




#
이후 그는 살기 위한 방법을 열정적으로 찾는다. AZT라는 신약의 정보를 입수하지만 병원에서는 이중맹검 법을 사용하기 때문에 자신이 진짜 약을 받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래서 병원 직원에게 뒷돈을 주고 약을 구한다. 의사가 말한 30일 중 28일이 지나갔을 때, 그는 AZT가 효능이 없음을 느끼고 멕시코 의사를 찾아가 다른 약을 받고 몇 개월의 생명을 더 보장받는다.


 그가 AZT대신 먹은 약은 펩타이드 T나 비타민 같은 약이었고, 그는 곧 사업 아이디어를 낸다. 멕시코에서 허가되지 않은 약을 들여와 미국에 파는 것이다. 하지만 그가 약을 팔아야 할 대상은 그가 혐오했던 동성애자들이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그래서 그는, 그가 잠시 병원에 있을 무렵 옆 침대에 있었던 레이언과 손을 잡는다.


그가 그토록 에이즈에서 빠져나오고 싶었던 것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지만 자신이 ‘호모 취급’을 받는 것도 컸다. 그는 동성애자가 아니었지만, 그 당시 에이즈는 동성애자여야만 걸린다는 속설이 퍼졌고, 그도 그것을 믿고 있었다. 자신과 같이 술을 먹던 친구들에게 한 순간 멸시를 당했을 때, 그는 비참한 심경을 느꼈을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에이즈에서 벗어날 방법으로 택한 건 자신이 혐오했던 대상들과 연대하는 것이었다.



#

그는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을 열어 400달러의 회원비를 받고, 대신 자신이 먹었던 에이즈 치료제를 사람들에게 주었다. 회원들을 모으는 역할을 레이언에게 맞긴 것이다. 동성애자였던 레이언은 자신과 비슷한 처지 (에이즈 환자)들을 모아 왔고, 곧 사업은 번성한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우드루프(주인공)가 변하기 시작한다. 예전과 같았다면 동성애자를 모는 것조차 혐오했던 그가 레이언과 친해지고 나선 조금씩 마음을 연다. 물론, 기본적으로 ‘남자가 여자 행세를 하는 것’을 싫어하긴 하지만.


그는 점점 사업을 확장시키지만, 미국 정부와 FDA는 그것을 그저 지켜보지 않는다. 약물과 관련된 법을 동원하여 그의 사업을 방해한다. 우드루프는 환자의 입장에서 FDA의 이러한 행보를 비판한다. 검증되지 않았지만 효과가 나타나는 약을 늦기 전에라도 쓰는 것이 옮은 것인가? 아니면 확실한 효과가 나타나는 인증된 약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옳은 것인가. 두 가지 모두 정답은 아니지만, 에이즈 치료제의 뒤편엔 제약회사와 FDA 간의 유착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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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가는 이야기지만, 우리는 제약회사가 이익을 위해 약의 물량을 늦게 풀거나 희생자가 나올 때까지 방관한다는 도서 전설들을 수없이 들어왔다. 회사가 이익을 창출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 대상이 환자들이라면 이러한 모습은 반도덕적이다. 그리하여 우드루프는 내적으로는 동성애에 대한 혐오와 연대하며, 외적으로는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가진 의사와 연대하며 거대 제약회사와 FDA에 맞선다.


그리고 싸움이 계속되던 나날 속, 레이언의 죽음을 마주한다. 깊은 슬픔을 느낀 채 그는 병원으로 달려가 그에게 에이즈 판정을 내렸던 의사의 멱살을 잡고 외친다. “네가 죽인 거야. 너는 살인자와 다름없다.”라고. 


하지만 그의 투쟁은 결국 패배로 끝난다. 법원이 FDA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다행히도 법원은 우드루프가 개인적 목적으로는 펩타이드 T를 복용할 수 있게 허가했다.
그리하여, 1985년 6월에 에이즈 판정을 받았던 우드루프는 7년 동안이나 더 살았고, 1992년 눈을 감았다. 그가 죽음의 병에서 이토록 버티고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어쩌면 자신이 혐오했던 것과 연대를 하며 달라졌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그의 이런 부단한 노력 덕분에, 이후 에이즈 치료에서는 저용량의 AZT를 투여하기 시작했고,
복합적인 약물 처방으로 수십, 아니 수만에 해당하는 환자들이 더 긴 생명을 얻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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