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1.『말이 칼이 될 때』를 읽고 나눈 혐오 표현에 대한 이야기
* 느빌의 책장의 발제-녹취를 개편했습니다!
* 한 달에 한 주제를 정해서 책 2권과 영화 2편을 봅니다.
* 매주 수요일 발제 / 월요일 녹취가 업로드됩니다.
* 이 뒷담화는 혐오와 연대 키워드의 세 번째 텍스트 <말이 칼이 될 때>에 대해 나눈 이야기를 기록한 글입니다.
* 이번 모임엔 연연, 박루저, 다희, 학곰, 일벌레님이 참여했습니다.
* 본 녹취록은 <'한남'은 혐오표현이 아니다>를 읽고 오시면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습니다.
https://brunch.co.kr/@neuvilbooks/267
연연 : '혐오와 연대'란 주제를 들었을 때 떠오른 책이었어요. 그간 했던 문학보다는 비문학 텍스트를 다루고 싶었고, 혐오 관련 책 중 다양한 범주를 아우르는 대중 교양서를 찾고 싶었어요. 총평을 하자면 법리학자가 쓴 책의 느낌이 많이 났구요. 차별 금지법이 화제인 지금 시기에 적절했다-고 나름 자화자찬(웃음)했는데 여러분들은 어떻게 읽으셨는지 궁금합니다.
박루저 :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혐오 표현에 대한 많은 논의들을 꾸준히 해온 흔적이 보인다는 점과 논리 구조나 설득력이 우수하다는 점이에요. 그에 반해 발제문은 책의 요약에 가까워서 아쉬웠어요. 발제문의 분량으로 이 책만큼이나 설득력 있기는 어려울 것 같거든요. 더불어, 애초에 이 책을 볼 사람들은 '혐오 표현'이란 문제 의식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로 좁혀져 있다는 점은 조금 아쉽네요.
학곰 : 표도 많고, 책 자체는 읽기 너무 힘들었습니다.(진-지) 하지만 의문을 해소할 수 있었어요. 이런 주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 "그럼 이건 어떻게 설명할 건데?"하고 반례를 가지고 오는 사람에게 논리적으로 반박하는 가이드를 준 것 같아요. 그래서 공부를 위해서 이 책을 읽은 것도 있었지만, 설명이 정말 친절하다고 느꼈어요.
다희 : 책의 초반부를 신선하게 느끼며 읽었어요. 세계의 사례를 알려주며 시작하잖아요? 나중에는 예시가 자꾸 반복돼서 집중력이 떨어지긴 했지만요. 개봉했던 영화의 사례, 여성혐오뿐만 아니라 이주민, 소수자 혐오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일벌레 : 다들 읽기 힘들었다고 평하는데, 저는 오히려 논리가 탄탄하니 막힘 없이 쉽게 읽은 편이에요. (물론 이번에도 다 읽지는 못했다) 발제문에 대해서는 논의를 더 발전시켰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어요. 예를 들어, 책에서 흔히 혐오의 대상이 되는 동남아시아 출신에 대한 이주민 혐오를 이야기하는데, 선진국 출신과 비교해서 논의를 더 넓힐 수 있지 않을까? 하고요. 누군가에게 친절한 게 겉으로 나쁘지 않지만, 결국 기저에 차별이 있어서 선진국 출신에게 친절한 것이니까요.
연연 : 정리해보자면, 책이 자신의 역할을 '표현'에 대한 논의까지로 한정 지었다고 생각했어요. 이 정도(260페이지)가 교양서로 적절한 길이기도 하고요. 그렇기 때문에 『아픔이 길이 되려면』과 같이 읽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그러한 혐오 표현, 사회적인 학대가 어떻게 물리적 고통으로 나타나는지 보여주며 정서적으로 호소하니까요. (『아픔이 길이 되려면』이 어떤 책인지 궁금하시다면, https://brunch.co.kr/@kafkayeon/23 여기로!)
연연 : 발제문에 대해서는 스스로도 아쉬웠지만, 책의 기조에 맞추려니 더 나아가서 쓰기가 어려웠어요. 책에서 중점적으로 제시한 혐오 표현을 제재하는 모델들(유럽형/미국형/이상주의 모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어요. 차별 금지법이 있는 나라에서도 실생활에서 모든 언어를 규율할 수 없어서 혐오 발언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럼에도 법을 제정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요?
다희 : 차별금지법에 대한 사전 지식 없이 읽었는데, 우리나라가 너무 늦다고 느껴져 속상했어요. 한편으로 우리나라 사정을 봐선 당연하기도 하다고 느꼈고요. 우리도 얼른 했으면 좋겠는데, 그냥 덮어놓고 싸우지 말자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걸 들으면 힘이 빠지죠.
연연 : 차별금지법 제정의 장단점은 확실하다고 생각해요. 차별이 왜 나쁜지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차별이 나쁘며 범죄이고 처벌 받는다는 것을 알려주는 법의 기본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이 장점이에요. 하지만 어디까지 규제할 것인가를 정할 수 없으면 존재하는 데로만 머물게 되겠죠. 단점이란 지금과 같은 분위기에서 차별금지법을 제정한다면 발생할 부작용이에요. 법에 명시되지 않은 혐오나 차별은 괜찮다는 식의 흐름으로 가는 것이죠.
일벌레 : 지금으로서는 우리나라에 차별금지법을 제정하자는 데에 반대해요. 어떤 사건에 있어서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되는데도 소수자인 피해자보다는 가해자의 말을 기사화하는 지금 분위기에선 오히려, 언제나 혐오 표현의 화살이 향하는 약자가 더 상처를 받을 것 같아요. 올바른 행동을 해도 조롱 받으니까요.
박루저 : 차별금지법이 목표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책의 저자가 말하는 것처럼 현재는 여론의 온도차가 너무 심하죠. 일부 사람들이 밀어붙여서 차별금지법이 제정된다면 그 자체로서 의미가 있겠지만, 입법 자체가 목표가 아니라 하나의 단계인 것이죠. 시스템에서 차별이 없어지는 것으로 가야 하지 않을까요.
학곰 : 펜스룰 같은 사항이 나올까봐 되려 걱정되죠.
연연 : 음, 우리나라는 판례에 근거에서 판단을 내리는 편이라 새로운 법 없이는 다른 판단이 나오기 어려워요. 그래서 차별금지법이 그러한 판례를 저지하고 다른 판단을 내리도록 하는 역할을 했으면 좋겠어요. 지금은 심각한 혐오 표현이어도 민사 사건이 아닌 형사 사건으로 끌고 올 수 없어요.
학곰 : 실은... 이 책은 한 가지 답으로 흐르고 있는데, 이런 주제에 대해선 정치적 올바름처럼 아니라고 생각하더라도 아니라고 말할 수 없어요. 법을 제정하는 사람들에 대한 신뢰도 걱정되는 부분이구요. 다만 '금연 구역처럼 단 시간에 바꾸는게 가능하지 않을까?'하는 가정도 해 봐요.
박루저 : 저는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다르더라도 내 생각을 말하는 게 (펜스룰 같은 걸 지키는 것보다) 나은 일이라 생각했어요. 그러나 언젠가부터 내 앞에 있는 사람이 하는 치열한 고민을 막고 맨스플레인이 되는 상황이 싫어서, 차라리 말하지 않는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예를 들어 내가 말하는 페미니즘이 내 앞에 있는 구체적 여성이 생각하는 페미니즘의 범위와 맞지 않을 때, '너도 결국 한남이네' 로 귀결되는 피로가 너무 컸어요. 그래서 발제문처럼 "한남은 혐오표현이 아니고 김치녀는 혐오표현이다"같은 대화 자체를 하고 싶은 의지가 사라질 때가 많아요.
일벌레 : 저 역시 반대 종류의 상황에서 맞닥뜨리는 피로가 커요. 사람은 다 다르고 다르게 느끼고 생각하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상대의 감정을 인정하고 존중해요. 그럼에도 상대는 제가 자신과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예를 들어 '한남'이란 단어에 상처 받지 않는다고) 저를 공격하는 사람 취급하죠. 논의 자체가 진행되지 않고 무조건 답을 정해놓고 반례를 계속 찾아내는 상대에게 친절하게 답하고 예시를 찾아야하는 일종의 배틀이 돼버려요.
연연 : 한남이란 단어가 여혐을 환기시키는 점은 있지만, 이젠 이 단어마저 논의를 진행시키기 어렵게 만드는 기호에 그쳐 미러링의 효력이 떨어진 것 같아요.
학곰 : 언어들이 양쪽으로 더 멀어지면서 그냥 서로 앵무새처럼 말만 하고 논의가 진행되지 않아요. 결국 맥락이 없어져요. 맥락을 설명하려면 들어줄 수 있는 사람에게 해야 하는데, 현재로선 온도차를 줄이는데는 효과가 없어 보여요.
다희 : 이젠 농어촌, 장애우, 지역균형선발까지 다 혐오와 조롱의 표현이 된 것 같아요.
일동 : 이쯤 되면 대체 뭐가 문제지?
앉아있던 카페가 마감 시간이 다 되면서, 발제가 어떻게 끝났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쫓긴 듯 일어나 다들 각자가 갈 곳으로 향했다. 끝나지 않은 이야기를 담고,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혐오 표현으로부터 감정 노동으로부터 자유롭길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