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섭, 『아픔이 길이 되려면』
최근에 건강검진을 하다가 충치가 발견되어 치료를 했다. 나오면서 치료비를 결제하는데 인생 첫 할부를 그었다. 지갑뿐만 아니라 시간과 마음 모두에 큰 타격이었다. 이래서 '아프면 죽어야지', '아프면 나만 손해다.', '자기 몸은 스스로 챙겨야 한다.' 같은 말을 흔히 주고받나 보다.
그런데 사회역학자 김승섭 보건학 교수는 『아픔이 길이 되려면』을 통해 이러한 통념에 문제를 제기한다. 『아픔이 길이 되려면』은 김승섭 교수가 재소자, 성소수자,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세월호 생존학생, 소방공무원 등을 만나 그들의 건강 상태를 사회역학적으로 연구한 책이다.
사회역학이란 질병의 원인을 개인이 아닌 학교, 직장과 같은 공동체에서의 사회적 경험에서 찾고 부조리한 사회구조를 바꿔 구성원 모두가 더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길을 찾는 학문이다. 차별, 사회적 고립, 고용불안 등이 인간의 몸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분석하여 사회 구성원 모두가 보다 건강하게 살 수 있도록 힘쓰는 셈. 김승섭 교수는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사회도 개인의 건강을 챙길 책임이 있다고 믿는다. "공동체와 완전히 분리되어 독자적으로 살아가는 개인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책 곳곳에 이러한 신념이 드러나는 데다 책 자체가 김승섭 교수가 자신의 신념을 따라 직접 행동한 기록이다. 감동 점수가 높을 수밖에.
공동체의 수준은 한 사회에서
모든 혜택의 사각지대에 놓인
취약한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
책 초반에 사회와 질병의 관계를 살펴볼 수 있는 예로, 루마니아 낙태금지법 이후의 여성 사망 추이를 든다. 루마니아에서 여성의 낙태를 금지하자 가장 빠르고 직접적으로 피해를 입은 건 저소득층 여성이었다. 낙태가 합법인 나라로 건너가 수술을 받을 수 없었던 가난한 여성들. 그들은 유산하고자 자해를 하거나 비위생적인 곳에서 자격없는 이들에게 수술을 받았다. 그 결과, 낙태금지법 시행 전에 비해 저소득층 여성의 사망률이 급격히 높아졌다. 요즘 한국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많다. (관련 기사: "24주 내에 강간을 '입증'해야 한다고?... 이유있는 낙태죄 '폐지' 목소리, 아시아경제, 2018.08.30 )
후에 이어지는 세월호참사나 쌍용자동차 해고 피해자를 직접 만나 나눈 이야기와 연구 결과를 읽으면 마음이 미어진다. 쌍용자동차 사태 후 해고노동자가 당뇨합병증과 뇌출혈로 사망하는 등 자살을 비롯해 질병으로 숨진 노동자가 서른 명 가까이 된다고 한다. '해고는 살인이다'라는 구호 그 자체다. 세월호 참사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인터뷰 내내 '구조'란 단어를 쓰지 않았다. 그들에게 배에서 나오는 과정은 '탈출'이었다. 이렇듯 『아픔이 길이 되려면』은 지금 가장 뜨거운 정치적 이슈를 다룬다.
김승섭 교수가 강조하는 한 가지를 덧붙이며 이야기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차별을 경험하는 것과 그것이 차별이라고 인지하는 것은 다르다는 점. 구직 과정에서의 차별 경험을 조사하기 위한 조사에서 '귀하는 새로운 일자리에 취업할 때 차별을 겪은 적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예, 아니오, 해당사항 없음' 세 가지 선택지를 주었다. 심층 인터뷰를 하자 '해당사항 없음'이라 답한 사람들 중에서도 남성 노동자는 '아니오', 여성 노동자는 '예'라는 뜻으로 골랐움이 드러났다. 차별당한 사람은 자신의 경험을 차별이라고 말하기 어려워한다. 그리고 '해당사항 없음'이라고 답한, 차별경험을 언어화하지 못하는 여성들이 가장 많이 아팠다. 그 연장선에서 김승섭 교수는 성소수자, 외국인 노동자 등의 사례를 통해 이렇게 말한다.
제도가 존재를 부정할 때, 몸은 아프다
그리고 하나 더 나아가길 제시한다. 인지한 차별을 보고하는 일. 책은 연관관계와 상관관계를 보여줄 뿐 해결법을 내놓지는 못한다. 김승섭 교수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닐 터. 하지만 정의로운 건강을 위한 태도는 충분히 보여준다. ‘세월호 참사 생존 학생 실태 조사’ ,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건강 연구’, ‘삼성반도체 직업병 소송과 IBM 직업병 소송’, ‘소방공무원 인권상황 실태조사’, ‘동성결혼 불인정과 성소수자 건강의 관계’ 등 사건 현장에서 직접 약자와 대면하고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방법으로 말하는 태도. 아, 또 이렇게 애정하는 교수님이 늘어납니다...☆★
혐오의 비가 쏟아지는데, 이 비를 멈추게 할 길이 지금은 보이지 않아요. 기득권의 한 사람으로서 미안합니다. 제가 공부를 하면서 또 신영복 선생님의 책을 읽으면서 작게라도 배운 게 있다면, 쏟아지는 비를 멈추게 할 수 없을 때는 함께 비를 맞아야 한다는 거였어요. 피하지 않고 함께 있을게요.
김승섭 보건학자는 『아픔이 길이 되려면』의 소주제 중 하나, 퀴어의 질병과 건강을 보다 깊이 연구하여 퀴어 운동가와 함께 『오롯한 당신』을 엮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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