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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슨한 빌리지 Jan 03. 2018

2. 나를 위해 선택하는 사람, <신경 끄기의 기술>

치-명적 올스타 2 :  죄책감과 희생은 이웃사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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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난 이야기



첫 치명적 올스타 '무시오'의 귤을 까는 태도를 살펴본 학곰


1.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
2. 좋아하는 것에 대해 깊게 생각하는 것.
3. 자신의 방법으로 예의를 갖추는 것.


글로 배운 <치-명 포인트>들을 실전에 적용해보려 한다.



좋아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해보자
날을 잡고 딱 30분만 시간을 내보자.
그리고 30분간 내가 좋아하는 그것만 생각하는 시간을 만들어보자.



과연 학곰은 빅-치명맨의 첫걸음을 내디뎠을까?




2. 죄책감을 적당히 견디는 일

* 이번 편은 소개하는 책의 내용의 아주 지엽적인 부분만 차용합니다. 또한 아래의 이야기는 책의 내용과는 큰 연관이 없을 수 있습니다.


신경 끄기의 기술(2017)



무시오의 치-명 포인트를 독파한 그 날. 나는 귤뽕에 취해 '좋아하는 것을 좋아한다.'라고 사람들 앞에서 당당히 선언!... 하려 했으나 용기가 나지 않아 어느 프랜차이즈 카페 한 구석에 앉아 노트를 펼쳤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러나 결국 생각만 하고 말았다. 20년 넘게 남 눈치나 보면서 살아온 빅-적당맨인 내가 귤 몇 번 깠다고 없던 좋아하는 일이 별안간에 생길 리가 없지 않은가. 무시오가 '좋아하는 일'을 당당히 말한 것은 무시오이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것일 게다. 그제야 연재 3주 만에 나는 깨달았다. '치명적인 인물'들을 백날 분석한다 해도 나에게 맞게 체화하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처음으로 돌아갔다.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서 처음으로 돌아가는 건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다만 시작부터 자빠져서 0화부터 재점검해야 한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그렇지만 어쩌겠는가. 연재를 하다가 짙은 현자 타임을 만나서 돌연 중단하는 것보다는 기초부터 다시 점검하는 게 낫지 않겠는가. 매도 빨리 맞는 것이 낫다고 나는 소크라테스 형의 산파법을 빌려와 자체적으로 나와의 면담을 진행했다.



Q&A


Q. 나는 왜 치-명적인 사람이 되고 싶은가?

라는 질문이 이 모든 일의 시작이었다. 0화에선 나는 이렇게 말했다. "남들과 비슷하지 않은 나만의 무언가를 갖고 싶다."라고. 


Q. 나는 그런 것을 갖고 있는가? 


아니다. 나는 그런 것이 없어서 적당히 남들에 맞춰 살아온 빅-적당맨이다.


Q. 그렇다면 바꾸고 싶은가?


나는 주저했다. 이 질문 앞에서 "예"라고 당당히 얘기해야 다음화로 넘어갈 수 있으련만 영 자신이 없었다. 겉으로는 바꾸고 싶다고 쉽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나는 나를 바꾸고 싶다는 생각만 하고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니 빅-적당맨을 넘어 적당킹을 향해 나아가고 있던 것 아니겠는가.


Q. 나는 왜 바꾸고 싶다고 말하면서 실제로 행동하지 않는가?


글쎄. 실은 바꿀 생각은 없는데 남들이 보기에 바꾼다고 말하는 게 모양새가 낫기 때문에 하는 척한 것은 아니었을까? 그럴 바엔 하지 않는 편이 낫지 않는가.(지금까지 치-명적 올스타를 사랑해주셔서..) 아니다. 내가 남들의 발걸음에 맞춰 살아왔다지만 모양새가 낫다는 이유로 시작했다면 이렇게까지 몇 주 동안 일을 벌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외려 말은 해놨지만 귀찮아서가 더 정확한 이유일 것이다. 바꾸고 싶긴 한데, 바꾸지 않아도 죽지 않을 만큼은 견딜만해서. 절실하게 바뀔생각까지는 없어서. 그러니까 안 바꿔도 나의 일상생활에 지장은 없는 것이다. 다만 조금의 죄책감을 평생 가져가면 된다.


그랬다. 나는 평생을 죄책감과 함께 살아온 것이다. 그 죄책감은 누가 쥐어준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 부여한 것이었다. 바꾸지 않으면 패배자인 것처럼 판단하고, 의견이나 기호를 밝혔으면 증명해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나를 계속 붙잡고 있던 것이다. 고통을 감내하면서 새로운 변화에 몸을 맡기기보다는 견딜만한 죄책감을 한 손에 쥐고 불편하게 쉬어왔다는 것이다.



3. 희생한다고 생각할 바엔 하지 말아라.


<신경 끄기의 기술>은 굳이 분류하자면 자기계발서다. 책을 읽은 후에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제목의 승리다."라는 것이었다. 제목만 보면 주변에 신경을 끄고 마이웨이를 가는 법을 알려줄 것 같았지만, 내가 느끼기엔 신경을 잘 쓰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이었다.


인간의 모든 행동에는 에너지가 소모된다. 그 일이 육체적인 일이든 정신적인 일이든 인간은 '일'에 에너지를 투입하고, 좋거나 혹은 나쁜 결과를 얻는다. 대부분의 인간들은 '긍정적인 결과'를 기대하며 에너지를 사용한다. 일을 그르치기 위해서 벌이는 사람은 아주 극소수 일 것이다. 하지만 사람 산다는 것이 자신의 뜻대로만 되지 않는다. 좋은 결과를 기대하며 일을 준비해도 실패하기 십상이고(2화 만에 장애물에 막힌 나처럼) 투자한 에너지만큼 결과가 나오는 것도 아니다.


사람은 혼자 사는 존재가 아니다. 사회라는 울타리 안에서 살아가는 이상 '나'는 수많은 '타인'들과 교류하며 일생을 보낸다. 때문에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살 수는 없다. 함께 살아가는 존재들과 공생할 수 있는 방향으로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공존'하기 위해서 '나'는 '나'의 일부를 포기해야 한다. 그렇게 자신을 '희생'해야 하는 타이밍이 일상에서 자주 찾아온다.


이것은 내가 위에서 말했던 '죄책감'과 연결된다. 결이 조금 다를지 모르지만 죄책감과 희생은 둘 다 '불편함'을 베이스로 깔고 있다. 이 불편함을 풀어서 이야기하면


원하는 것을 뜻대로 하지 못하는 상태


라고 말할 수 있겠다. 죄책감이 원하는 가치(혹은 내가 원한다고 말하는 가치)와 실제 행동이 어긋날 때 생기는 것이라면, 희생은 원하는 가치가 아니더라도 더 큰 가치를 위해 자신의 것을 양보하는 것이다.

보기에 희생이라는 말은 긍정적인 이미지와 위안을 준다. 그렇기에 죄책감이 있는 사람들은 위안을 찾기 위해 희생을 선택하기 쉽다. 내가 그랬다.


누군가 나에게 신이 당신에게 준 달란트(재능)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 않고 이렇게 답할 것 같다.

갈등을 회피하는 능력입니다.라고


살면서 이렇다 할 적 한 명 만들지 않고 살아왔다. 무난하고 유순하게 한가로이 풀이나 뜯어먹는 초식동물마냥 말이다. 매사에 적당히 거리를 두면서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었다. 나에게 몰입이나 올인이라는 단어는 적합하지 않았다. 무언가를 좋아하거나 미쳐본 적이 없던 것도 어쩌면 갈등 상황이나 새로운 일에 부닥치기도 전에 피해버려서 그런 것은 아니었을까.


스스로를 평화주의자에 포지셔닝하면 그 사람은 신성불가침의 존재가 된다. 선(善)한 가치를 수호하고, 옳은 말만 해야 하며, 타인의 불경스러움도 포용해야 한다. 자신의 '옳음'이 확고하기에 개인의 욕심이나 선호/기호를 드러내는 것보다 공공에 도움이 되고 더 옳은 선택을 하게 된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선택을 할 때 개인의 욕심보다는 '공공의 옳음'을 위해 자신의 욕망을 자제한다. 그리고 스스로를 희생자, 순교자의 자리에 위치시킨다.


하지만,


그런다고 누가 상을 주는가. 그리고 그 상을 준다고 한들 엿이라도 바꿔먹을 수 있는가. 

아니, 누가 당신에게 그렇게 해달라고 부탁을 했는가. 어느 누구도 당신에게 '그 선택'을 하라고 하지 않았다. 그 이유가 희생이든 주변 환경 때문이든 결국 선택은 내가 한 것이다. 인간의 에너지를 투입해 고른 모든 선택에는 '책임'이 따른다. 내가 선택해서 얻은 결과는 나의 책임이고, 그것에서 나오는 고통들도 온전히 나의 책임이다. 그렇기에 '누군가를 위해서 내가 희생 '해준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행동을 할 땐(에너지를 소비할 땐)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자기 자신'이다. 희생이라는 단어에 숨는 피해자가 되지 말자. 희생이라는 말을 숭고하게 포장하지도 말자. 그저 솔직하게 '내 마음이 가는 곳'에 온 신경을 쏟아야 한다. 이것은 이기적인 생각이 아니다. 이 세상에 '나'가 없다면 남도 없다. 그러니 나를 먼저 사랑하자.



★치-명포인트

희생하지 말자. 나를 위해 선택하자.



4. 실전 적용


좋아한다고 사람들 앞에서 당당히 얘기할만한 것은 바로는 찾지 못할 것 같다. 그보다 아주 기초적인 것부터 생활 태도를 바꾸려 한다. 어떻게 하면 남들처럼 혹은 남들만큼 따라갈 수 있을까라는 생각보다는 이 일이 나에게 행복을 주는가? 나를 편하게 만드는가?를 생각해보자.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최선을 다해 '나를 위한 선택'을 해보자. 나를 위해서라면 때론 평화나 옳은 가치를 내려놓고 불경하게 굴어보자. 갈등도 만들어보고 다른 사람과 부닥쳐도 보자. 


피하는 게 능사는 아니니까.


<미-션>

나는 이번 주에 있을 독서모임에서 절대! '옳은 가치에' 타협하려 하지 말고, 극단적으로 나의 주장을 펼쳐보자.(이러다가 치명은커녕 빅-부적응자가 되는 건 아닐지 모르겠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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