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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슨한 빌리지 Jan 10. 2018

3. 가슴에 치-명이라는 두 글자를 새긴 이유

치-명적 올스타 3: 술 안 먹고 쓰는 본-격 주정 어드벤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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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난 이야기


시작부터 '치-명' 실전 적용에서 실패를 맛본 학곰. 그는 자신과의 면담(QnA)을 통해 다시 한번 다짐을 하게 된다.


희생하지 말자.
나를 위해 선택하자.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나만 생각하며' 선택을 하기로 마음먹은 그는 자기 자신에게 미-션을 하나 준다.


<미-션>
나는 이번 주에 있을 독서모임에서 절대! '옳은 가치에' 타협하려 하지 말고, 극단적으로 나의 주장을 펼쳐보자.(이러다가 치명은커녕 빅-부적응자가 되는 건 아닐지 모르겠다.)


과연 학곰은 미-션을 수행하고 빅-치명맨의 길에 한 발자국 내딛을 수 있었을까?



2. 지난 이야기는 개뿔, 내 얘기나 들어봐라.


파-워 망-함



*술이 안 받는 체질이라 유자차 마시고 취해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치-명적 올스타>로 한 발자국 내딛기는 개뿔. 또 정체다. 미-션은 성공했느냐고? 그렇지도 않다. 아마 2월에 올라갈 <버드맨> 발제에 대해서 나는 그날의 녹취를 맡았고 가열차게 노트에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를 받아 적었을 뿐이다.(줄없는 노트 6~7장 정도 받아 적었으니 정말 열심히 적었다.) 혹 미-션에다가 적어놓은 대로 무언가를 했다 해도 그것이 치-명과 하등 상관없다는 걸 나도 모르고 있지는 않았다. 


당초의 기획이 무엇이었는지 당최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저 치-명이라는 단어에 꽂혀 있었고 솔직히 말하면 그 단어가 나와 거리가 멀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다만 치-명적이지 않은 사람이 헛된 희망을 품고 무작정 부닥치면서 생기는 불협화음, 그 어긋남이 퍽 재밌을 것 같아 시작했다. 그렇다. 애초에 출발점부터 나는 나를 변화시킬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그저 나를 우습게 포장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평가하는 나는 전혀 상반된 두 가지 이미지를 갖고 있다. 하나는 과소평가의 아이콘, 다른 하나는 오만함이다. 나는 나 자신을 낮춘다. 이를테면 <느슨한 빌리지> 모임을 할 때나 뒤풀이에 갈 때 의식적으로 가장자리에 앉는다. 사람들의 시선이 나에게 쏠리는 것이 부담스럽기도 하거니와, 중앙에 앉아서 사람들을 콘츄롤할 정도의 깜냥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구석으로, 또 구석으로 스스로를 몰아간다.


나 자신이 인생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거의 없다. 다만 빛나는 사람 옆에서 그를 흠모하고, 질투하면서도 표면적으로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동종업계 종사자 정도의 조력자 포지션이 내 몫이려니 하고 살았다. 그래서 주도적으로 사람들을 끌어갈 수는 없어도 적당히 주인공을 위해 혹은 집단 내의 다른 구성원들을 위해 나의 자리를 지워 그들의 편함을 보장하는 것이 나의 역할이라고 생각했고, 그렇게 행동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이 모든 것이 기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017년 자존감을 운운하며 많은 일들을 했다. 대학의 마지막 학기를 다니면서 나는 고민했다. 끝없이 나에 대해 고민했다. 인간관계가 짧은 덕에 <느빌>녀석들을 보지 않는 날엔 혼자의 시간을 마련할 수 있었다. 거의 매일 혼자 카-페에 앉아서 에이 컵 오브 코-피를 한잔 하고 있노라면 나는 우울했다. 애석하게도 울고 싶었고, 도망가고 싶었고, 누구도 날 찾지 않았으면 했다. 그러면서도 누군가 나를 찾아주길 바랐다.


그래도 여전히 혼자 카페에 있는 시간은 소중하다.


사람들을 만나면 혼자가 되고 싶었고, 혼자 있으면 외로워 궁상을 떠는 나날이 반복되었다. <느빌>의 사람들은 그런 면에서 참 정량적이었다. 개인적으로 연락을 주고받지 않았다. 다만 모임이 있는 날엔 반갑게 서로를 맞이 했다. 반가움의 농도는 늘 일정했다. 서로가 서로의 거리를 지켜주고, 함부로 넘으려 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편했고, 슬펐다.


나는 나에게 말했다. 넌 정말 이상한 것 같다고. 괜찮지 않은데도 괜찮은 척을 하느냐고. 좋지 않은 데도 왜 좋지 않다고 말을 하지 않느냐고. 연락하고 싶으면 먼저 연락을 하지 왜 짱박혀서 주접을 떠느냐고 말이다. 카페에 가만히 앉아서 홀로 그림을 그렸다. 나와는 연락이 닿을 일 없는, 멀리서 지켜볼 수밖에 없는 배구선수들 얼굴을 그렸다. 그림 실력은 마디게 자라는 것 같았지만 공책을 덮고 카페 문을 열고 나오는 순간의 씁쓸함이 커터칼에 베인 상처처럼 화끈거렸다.


그래서 약속을 잡았다. 전에 없던 용기를 내어 글을 쓰는 모임을 하자. 그림을 그리는 모임을 하자. 독서 모임을 하자. 취업 스터디를 하자. 말도 안 되는 스케줄들을 잡아갔다. 취업 준비생이 이것저것 취미를 하나씩 끊어가도 모자랄 판에 나는 외려 가지 수를 늘리는 선택을 했다. 왜냐고? 왜긴 무슨 놈의 왜야. 우울했다니깐.


참 고마운 것은 친구들은 나를 기존의 모임에 참여하게 하고, 내가 제안한 이런저런 모임들도 흔쾌히 받아들여줬다는 사실이다. 항상 적당히 반갑게, 서로의 거리를 지키면서 말하자면 <느슨하게-> 말이다. 나는 기뻤다. 아니, 그것이 기쁨이라는 감정이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쾌한 감정이었다. 혼자서 커피숍에 앉아 청승을 떨 때보다는 마음이 덜 불안했다. 그렇게 나는 그저 사람들이 나를 받아주었다는 사실 자체에 감사했다. 아니, 이것이 기만의 시작이다.


나도 나 자신을 잘 몰랐다.


나는 나 자신에 대해서 잘 몰랐다. 나의 취향이나 취미, 특기, 장단점 같은 남에게 보이는 영역은 물론이고 내가 짓고 있는 표정, 하고 있는 생각, 상대에 대한 평가와 그에 따른 반응 같은 감정의 영역이 서툴렀다. 평화주의자라는 포장 아래 갈등이나 분쟁을 피하거나 중재하는 것은 잘할 수 있었지만, 내가 의견을 내고 나의 성향을 밝히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내가 나를 인식하는 수준은 '무색무취'나 '개성 없음' 혹은 '뚱뚱함' 정도의 과소평가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늦된 나는 깨달았다. 나의 평가는 전혀 객관적이지 않다는 것을. 그리고 나는 주관적인 과소평가를 대외적으로 내세우면서 속으로는 나에 대해 다른 평가를 내리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때 알게 된 것은 나는 오만하고, 포텐셜이 넘친다고 생각하며, 엄청난 능력을 갖고 있지만 겸손하게 발휘하지 않고 있다는 다소 만화 같은 설정을 디폴트 값으로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는 부분이지만 이렇게 글을 쓰는 이유는 두 가지다. 두 잔 째 마시는 유자차의 달달함에 취했기 때문에, 그리고 세일러문마냥 솔직하지 못해서 미안했기 때문이다. 나에게 그리고 나를 만들어준 귀인들에게 둘 다 해당하는 말이다.


자기 암시는 굉장히 무서운 힘을 갖는다. 가슴속에 흑염룡이 날뛰는 사람일지어도 스스로를 점잖은 선비라고 끊임없이 암시를 주면 그 사람은 선비가 된다. 물론 어처구니없는 곳에서 그 본성이 튀어나와 본인과 주변 사람을 당혹시키게 만드는 것은 자기 암시의 부작용 일지어다. 사람이 모든 것은 다 오픈할 필요는 없다. 그러면 외려 관계가 피곤해질 게다. 내가 솔직해지고자 하는 것은 감정에 관한 것이고, 나도 몰랐던 본심에 대한 것이다.


뜬금없이 튀어나온 오만이나 고포텐 가능성, 겸손충이라는 중2병 컨셉의 디폴트 값은 그간 내가 행동 해온 것의 반대급부에 자리 잡고 있던 가치들이다. 조력자의 입장에서 한 발을 빼고, 집단을 위해 나를 지우는 과정 속에서 나는 알고 보면 괴로웠던 것이다. 마치 혼자 있고 싶어서 간 커피숍에서 외로워 미칠 것 같던 기억처럼.


그래서 2018년에는 나의 자아의 한 부분인 그 흑염룡 친구들을 해. 방. 시켜보려 했다. 나의 지인들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던 키워드. 치-명, 세-련, 임-팩트. 이것들 역시 나의 한 부분이고 여태 살아온 방식과 어긋날지어도 겸허히 받아들이겠다는 그런 취지에서 기획했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관성에 부딪혔다. 수십 년간 나에게 걸어온 나를 과소평가하는 자기암시, 그리고 그 암시 속에 숨어었던 자기혐오들이 나를 압박해왔다. 나는 나를 통제할 수가 없었고 애석하게도 잘못된 방법을 선택한다.


<느빌>이 근 3주째 매일 이렇다 할 펑크 없이 콘텐츠를 업로드하는 것은 가열차게 내용을 만들어내는 에디터들과 독서모임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의 덕이다. 물론 내부에서는 개버릇 남 못준다고 마감일 당일까지 미루다가 시간에 쫓겨 꾸역꾸역 글을 쓰는 나 같은 사람들도 있다. 여하튼 나는 <느빌>에 매달렸다. 매달렸다는 표현이 맞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이 모임의 사람들과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간다는 것이 즐거웠고, 재밌고, 앞으로 나한테 쾌를 가져올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더 잘하고 싶었다. 더 열심히 하고 싶었다. 재미있으니까. 그런데 그것이 나만의 착각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훅- 올 때가 있었다.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남을 통제하려고 하고 있었다. 성탄절에 불미스러운 일이 있어서 에디터들에게 개인적으로 연락할 일들이 있었다. 안부를 물을 겸, 마감 독촉도 할 겸 겸사겸사 연락을 던졌다. 바쁘니? 혹은 잘 지내니? 같은 메시지를 던지자 내게 돌아온 것은 빨리 마감할게.라는 말이었다. 나는 500페이지 정도 되는 자기계발서 모서리로 뒤통수를 정통으로 맞은 기분이 들었다.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사실을 깨달았던 것이다. 나는 평소에 개개인에 대해 궁금해 하거나 이야기를 나누기보다는 '마감'과 '느빌'에 대해서만 이야기했던 것이다. 느빌이 잘 돌아가기 위해서라는 이유로 마감을 채근하는 통제관이 되려 하는 내 모습을 그제야 볼 수 있었다.


그래서 관두기로 했다. 내가 뭐라고 남을 통제하는가. 나 자신도 제어하지 못하면서 말이다. 시간이 조금 흐르고 생각해보니 내 안의 나는 어려도 너무 어렸다. 관심을 받고 싶고, 사랑을 받고 싶고, 투정을 부리고 싶지만 자기암시로 다져진 나의 자아상은 그와는 너무 거리가 멀었다. 그 갭이 커지면서 같은 상황에서도 다른 감정을 동시에 느끼는 충돌이 생기는 것은 아니었을까. 그간은 그러한 양쪽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는 바-란스 맞추기 혹은 양비론이라고 부를 수 있는 중립성을 유지할 수 있던 것은 결국 내가 나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해서였다는 이야기로 다시 회귀할 수 있겠다.


여전히 나는 어렵다. 나는 숨는다. 그리고 나는 원하고 또 거절한다. 누군가 나에게 말을 거는데 혹은 내가 누군가에게 말을 거는 데는 큰 진입장벽이 있다는 생각을 왕왕한다. 그리고 이제야 그 모든 원인이 나에게 있었음을 새삼 깨닫는다.


그렇기에 나는 2018년에는 꼭 치-명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 내가 여태껏 둘러온 척들을 내려놓고 내 안에 숨어있는 어린 나에게 늦었지만 기회를 주고 싶다. 어거지도 부리고, 땡깡도 부리고, 행패를 부려도 그냥 냅두고 싶다. 물론 남에게 피해가 가지 않게 하는 것은 여태 살아온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가 있기에 걱정되지는 않는다. 나에게 치-명은 아득한 이야기다. 하지만 어쩌면 내가 보지 못했다 뿐이지 아주 가까운 곳에 널려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내가 닿을 수 없는 영역의 천재나 기인들의 삶을 쫓기보다는 나와 비슷한 성향의 것들에서 치-명 포인트를 발견해 나가보려고 한다. 내가 바라는 것은 내 안의 어린 나가 자신의 기질을 온전히 발현하도록 냅두는 것이기 때문이다. 남들을 따라 하는 건 집어치우겠다. 나는 나를 믿어보기로 했다.


재미도 없는 주정 읽어줘서 고맙다. 그리고 뻐큐나 먹어라 아니;; 


미안했다. 앞으로 다시 잘 해보자.




한겨울에 치-명적 반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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