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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슨한 빌리지 Apr 06. 2019

나 아닌 다른 삶을 이해한다는 것

49. 교고쿠 나츠히코, 『우부메의 여름』

*한 달에 한 주제를 정해서 책 2권과 영화 2편을 봅니다.

*매주 수요일 발제 / 월요일 녹취가 업로드됩니다.

*4월의 주제는 [낯선 존재]입니다.


* 4월의 주제 [낯선 존재업로드 일정표

- 4월   5일(토) 책 『우부메의 여름』(2017), 교고쿠 나츠히코

- 4월 13일(토) 영화  미정 

- 4월 17일(수) 책     미정

- 4월 27일(토) 영화  미정


* 책 『우부메의 여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나와 다른 이를 대하는 방식



  얼마 전에 직장 근처로 이사를 갔다. 서울 근교이자 철새 도래지인 그 지역의, 그것도 시가지와는 떨어진 외딴 섬 같은 곳에 자리를 잡았다. 몇 달 전부터 이사이사 노래를 불렀기 때문일까 사람들은 내게 "이사 가니 어때요?"라고 물어봤고 나는 좋다고. 아침마다 두루미인지 백로인지 모를 새가 날아가는 걸 본다고 답한다. 대개는 자조적인 농담이라 생각하고 마는 것 같지만 내게는 중요한 변화다.

  줄어든 소음, 줄어든 속도(웬만한 거리는 걸어 다니기에), 줄어든 활동반경덕에 나는 이사한 곳에 짱박히는(?) 일이 많아졌고 몇몇 친구들은 거기에서 자연인 되는 것이 아니냐, DMZ로 넘어가는 것이 아니냐 하는 되도 않는 농을 던지기도 했다. 바깥에서 보는 나는 스스로 작아지려는 사람처럼 보이는 것일까? 아마 나는 굳이 해명하지 않고 여전히 새와 벗 삼아 봄꽃들과 더불어 청정한 이곳에서 살고 있고 앞으로도 살아갈 것이다.

  사람들에게는 저마다의 경험과 기억으로 만든 사고판단 능력이 있다. 그들은 자신이 보고 싶은 것을 보고, 자신이 믿고 싶은 것을 믿고 때로는 자신의 옳음을 남에게 강요하기도 한다. 살면서 나의 동기가 아닌 타인의 시선으로 말미암아 원치 않는 행동을 선택한 경험은 한두 번쯤은 있을 게다. 대개 농담이라는 포장으로 훅 들어오는 무례함 혹은 불편한 질문을 받고, '아 여기서 정색하면 분위기 이상해질 것 같아.'라는 보편적인(?) 이유로 그냥 웃거나 자조적인 농담을 더해 이야기를 종결시키는 이 상황은 서른 남짓 살아온 내 인생에도 퍽 비일비재했고, 나 역시도 때론 가해자로 때론 피해자로 위치를 바꿔가며 불쾌한 대화의 역사를 이어왔던 것 같다. 

  이는 비단 나를 잘 모르는 사람이나 아주 오랜만에 만난 사람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아주 가까운 가족, 친구사이에서도 왕왕 벌어진다. 문제는 내가 너를 얼마나 잘 아는데~라는 착각이나 상대를 전혀 파악하지 못한 무지에서 발생한다. 정보에 관한 착각과 무지는 상대의 변화를 촉구하고 그 요구에 다수의 지지가 더해진다면 지목당한 이는 '평균'이 되기 위해 행동을 수정해야 한다. 행동수정을 하지 않는 이는 '낯선 존재'가 되어 두려움을 주거나 배척되어야 하는 존재로 낙인이 찍힌다.

  나는 낯선 존재들에 관한 글을 쓰고 싶었고, 평소 장르 소설을 많이 읽는 W님께 의뢰하여 <우부메의 여름>이라는 책을 고르게 되었다. 우부메가 일본 전설 중 (여러 설이 있지만 종합한다면) '아이를 낳다가 죽은 여자의 집념으로 만들어져 남의 아기를 잡아다가 자신의 아이로 삼아 기르는, 새로 변신하는(?) 요괴'라는 책 초반의 설명도 아침마다 만나는 두루미인지 백로인지 모를 하얀 친구가 떠올라 좋은 느낌으로 골랐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저주받은 구온지家의 괴담(간단 줄거리)

  이야기는 에노키즈 탐정 사무소에 한 여자가 의뢰를 하면서 시작된다. 동생의 남편이 실종되었고, 그를 찾아달라는 것이 요지다. 나(세키구치)는 친구의 탐정 사무소에 들렀다가 대신 그 의뢰를 들었고, 사건 해결에 참여하게 된다. 하지만 이 사건에는 께름칙한 부분이 있는데, 그것은 의뢰인 집에 대한 괴소문 때문이다. 남편이 실종된 동생은 1년 반이 넘게 임신 중이었고 그것에 대해 남편을 잡아먹었다, 저주를 받았다더라는 식의 썰이 가득했다. 나(세키구치)는 고서점을 하는 또 다른 친구 교고쿠도와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고, 방구석 지식왕이자 논리 왕인 그와 함께 추리를 해 나간다.(교고쿠도와 이야기를 하게 된 것은 그의 여동생 추젠지양이 의뢰인 여자의 가문(구온지 가문)을 취재를 하던 중이었기에 고서점에서 이야기를 했다)

  와중에 나(세키구치)의 전쟁 중(작중 배경이 1950's 일본이기에 2차 대전으로 참작한다.) 부하이자 현재 경찰로 살아가는 기바 경감이 교고쿠도에게 찾아온다.(기바와 교고쿠도는 친구사이다) 기바는 연속 신생아 유괴사건을 조사하는 중이었고, 대대로 산부인과를 하던 구온지 가문에 대해 조사하는 중에 정보를 얻을 겸 찾아온 것이었다. 


  사건을 정리하면 크게 3가지다. 

  1. 구온지 교코(1년 넘게 임신한 여인)의 남편 마키오의 실종

  2. 구은지 교코의 비상식적인 임신기간

  3. 연속 신생아 유괴 사건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두 번 말했읍니다!


  에노키즈와 나(세키구치), 그리고 추젠지양은 구온지가에 조사를 간다. 탐정사무소에서 의뢰를 마치고 가려는 구온지 료코(언니)에게 에노키즈는 '세키구치와 구온지 료코는 초면이 아닌 것 같다.'는 말을 흘리고 두 사람은 부정하지만 그것이 왠지 마음에 남는다. 구온지 가에서 이야기하며 밝혀진 사실은 다음과 같다.

  마키오가 구온지 교코에게 청혼했으나 의사가 아니기에 대를 이을 수 없었다는 것, 그래서 독일 유학을 다녀와서 의사가 되어 500만 엔이라는 거한 지참금과 함께 청혼하여 결혼했다는 것. 마키오는 일기를 꾸준히 썼다는 것. 그 일기는 어머니가 쓰던 일기를 이어 18년이나 쓴 것이라는 것. 집에는 어릴 때부터 거두어들여 살던 의사견습생 나이토가 있었으나 몇 번이나 의사시험에 떨어졌고, 구온지 교코와 썸이 없지는 않았다는 것. 마키오가 사라진 곳은 밀실이었으며 핏자국은 남아있으나 밖으로 나갈 수 없는 구조라는 것.

  이 사실을 바탕으로 교고쿠도, 추젠지양, 나(세키구치), 기바 경감은 3. 연속 신생아 유괴 사건을 먼저 풀어간다. 연속 신생아 유괴 사건이 괴이한 이유는 비슷한 시기에 3건의 신고가 들어왔고, 마찬가지로 비슷한 시기에 3건의 신고가 취하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당시 신고자였던 세 곳 중 연락이 닿는 곳으로 그들은 찾아갔다. 신고자는 놀라운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부인은 아이를 낳고 우는 소리를 들었다고 신고자(남편)에게 말했기에 그는 아이의 행방을 찾았으나 병원에서는 사산이라며 뼈단지 하나를 돌려줄 뿐이었다. 며칠 후 부인은 새로 시작하면 되지 않느냐는 말을 남기고 집을 떠나버렸다. 아이의 사산과 부인의 행방불명으로 폐인이 된 신고자는 백방으로 조사를 하다가 우연히 당시 일하던 간호사의 행방을 알게 된다. 간호사는 신고자에게 말한다. 사모님은 돈을 받고 아이를 팔았고, 간호사들도 돈을 받고 시골로 내려갔다고. 그리고 그 병원이 구온지 가문의 산부인과였다고.

  추리를 하려던 세키구치 무리는 간호사를 찾아가려 했으나 그녀는 이미 죽었다는 소식까지 듣는다. 거액의 보상금과 신생아 유괴는 다시 '산부인과 구온지 가문'으로 초점을 이동하게 한다. 물증 없지만 심증으로 '왜 구온지 산부인과'에서 아이들이 실종되었는가. 그리고 당대에 주기 힘든 큰돈으로 막았을까. 생각한다. 그들은 사라진 마키오의 일기를 조사하다가 한 정보를 알게 된다. 마키오는 교고쿠도의 친구였고(마당-발), 나(세키구치) 역시 그를 알았다. 고교시절에 나(세키구치)는 마키오의 연애편지를 구온지 교코(임신 중인 동생)에게 전달해달라는 부탁을 받았고 그것을 전달했던 기억을 떠올린다.(편지를 전달하고 며칠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제부터는 알고 보니의 영역이다. 교고쿠도는 음양사를 자칭하여 추리로 구온지가의 비밀과 트릭을 타파해낸다. 알고 보니 구온지 료코(언니)는 산부인과에서 일하던 모 의사에 의해 흰독말풀이라는 마약을 먹고 성착취를 오랜 시간 당해왔고 약에 취한 시기에 또 다른 자아가 형성되었다. 알고 보니 약에 취한 상태의 구온지 료코에게 나(세키구치)는 자매가 얼굴이 닮았고, 필체가 헷갈려 마키오의 연애편지를 가져다주었고 그날 잠자리를 함께한다. 이후 마키오는 구온지 교코로 착각을 하며 료코와 사랑을 한다. 그러던 중에 전쟁이 발발하고 독일로 유학을 급히 떠난다. 마키오는 마마보이였는데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 깊어, 어머니 같은 여성을 찾다가 구온지 교코에게 사랑에 빠졌던 것이다. 독일로 간 그는 불의의 사고로 생식기를 잃게 된다. 하지만 일본으로 돌아와서 다시 구온지 교코에게 청혼을 하고(물론 그가 사랑했던 사람은 구온지 료코지만), 어머니의 뜻(아이를 잘 낳고 화목하게 사는 것)을 잇기 위해 자신의 아이를 갖기 위한 노력을 한다. 그래서 정자의 인공배양 연구에 매진한다. 그에게는 육체적인 사랑 없이도 유전적인 아이만 낳으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구온지 교코는 그런 전후 사정을 알리가 없기에 가끔 하는 편지 이야기나 자신과는 교감하지 않고 연구만 하는 남편이 원망스럽다. 그녀는 일부러 나이토(의사견습생)와 마키오가 보는 앞에서 사랑을 나누지만 마키오는 아무렇지도 않다. 구온지 교코는 점점 폭력적으로 변해갔다. 어느 날 연구는 완성되었고, 사랑 없이 아이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어필한 마키오와 다툼을 하다가 식칼로 그를 죽이고 만다. 

  알고 보니 구온지 료코(언니)는 마키오가 독일에 가기 전 사랑을 하다가 아이를 가졌고, 그 아이는 무두아(뇌가 없이 태어난 아이)였고 료코의 어머니는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돌로 내리쳐 아이를 죽인다. 무두아 유전자는 구온지 가에 내려오는 유전적인 요소였기에 대대로 구온지가는 여성만이 계승되어왔다고 한다.(남자아이가 없기에 데릴사위로 이어왔다.) 어머니는 료코가 단념할 수 있도록 죽은 아이를 포르말린에 담근 유리병을 기절한 료코 머리맡에 둔다. 아이를 돌로 치고 포르말린에 담그는 괴행동을 겪으며 료코에게는 제3자아인 구온지 어머니 자아가 형성된다. 또한 아이를 잃은 구온지 료코는 마키오와의 사랑, 즉 구온지 교코의 자아(두 번째 자아)일 때 아이를 가졌기에 임신에 대한 강박적인 면을 보이며 산부인과에서 아이를 훔치기 시작한다. 이것이 산부인과 유괴사건의 전말이다. 마키오와의 사랑을 기억하던 구온지 교코 자아의 료코는 가끔 동생 부부를 찾아갔는데, 교코가 식칼로 마키오를 살해한 날 그녀 역시 현장에 있었다. 현장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마키오는 자신의 어머니를 닮은 구온지 료코를 보고는 '어... 어머니...'라고 읊조리고 그 말로 인해 구온지 료코는 제3자아인 '구온지 어머니'자아로 바뀐다. 그녀는 돌로 마키오의 머리를 내려치고 포르말린을 부어 시체를 보존(?)해버린다.

  구온지 교코(동생)의 임신은 사랑을 갈구하다가 생긴 상상임신이었고, 아이를 낳는 것보다 임신을 계속하고 있는 것을 바라던 정신이 투여되어 그 상황을 유지해왔던 것이다. 음양사 행세를 하던 교고쿠도는 교코의 정신에 잠들어있는 '구온지 어머니'자아를 자극하여 상상임신임을 밝혀내고, 죽은 마키오의 시체도 발견해냈다. 구온지 료코와 교코 그리고 그들의 어머니는 저마다의 이유로 세상을 떠나며 살인사건과 유괴사건의 수사는 종결된다.


# 나 아닌 다른 삶들에 대하여


  꽤 두꺼운 분량에 복잡하게 플롯이 얽혀있기에 일부 내용은 건너뛰어 요약을 한 점은 양해를 구한다. 결국 비극의 원인은 두 가지다. 하나는 장애인에 대한 부족한 감수성, 다른 하나는 여성에 대한 부족한 감수성.

  무두아는 뇌가 없이 태어나기에 머리가 푹 들어가고 눈이 튀어나와 있어 '개구리 같다.'는 묘사가 나온다. 작중 배경인 1950년대, 더 나아가 오늘날에도 장애인에 대한 혐오는 지속해서 이뤄지고 있다. 하물며 18~19세기의 구온지 가문은 어땠겠는가. 요약을 하다가 건너뛴 부분이 있는데 구온지가는 빙의계(어린 동자의 영혼을 빙의한다는) 가문이었다는 설명이다. 어르신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정신병원이나 역술인(무당)을 비하하거나 혐오하는 경우를 이따금 겪을 수 있다. 과거의 그 시대에 '무당집 + 기형아 출산'은 지역 사람들의 따돌림과 배척을 받기에는 충분한 이유였으리라. 이를 극복하기 위해 구온지 가문은 '의사 가문'이라는 새로운 기믹을 만들었지만 예로부터 내려온 혐오에 대한 반응만은 남아있었던 것이다.

  무두아 살해의 역사는 유전자에 기록되어 '구온지 어머니 자아'로 전승되었다. 이는 공동체 내에서 '정상'으로 살기 위해, 다시 말해 타인들의 혐오와 배척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선택한 슬픈 선택이었던 것이다. 물론 영유아 살해가 정당화되어서는 안 되는 일이지만 아이를 죽게 한 건 혐오를 조장한 모든 이의 책임이다.

  두 번째로 여성에 대한 감수성이다. 작품 내내 여성은 소모된다. 마약을 먹여 성착취를 하고, 사랑이 아닌 오직 대를 잇기 위한 도구로 사용된다. 주인공 나(세키구치)마저도 어릴 적 구온지 료코가 유혹하여 '범하다'라는 표현이 나오니 말 다했다. 사건의 제삼자인 에노키즈(탐정), 교고쿠도(빅-추리 맨), 기바 경감을 제외하면 모든 남성 캐릭터가 젠더 감수성에 이상이 있다. 물론 시대가 그렇기 때문에~라고 참작하며 잠시 PC함을 내려놓고 읽을 수는 있지만 먼저 이야기한 장애인 혐오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살아보지 못한, 앞으로도 살아가지 못할 타인의 입장을 이해하는 건 쉽지 않을 것이다. 나 역시도 혐오와 배척으로 점철된 삶을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것 같다. 허나 스스로를 무지의 상태로 두고 지속적으로 (자신도 모르게 휘두르는) 폭력을 휘두르는 것을 정당화하긴 어려울 것 같다. 더 알고 공부하여 타인에게 상처를 주거나 피해는 끼치지 않으며 살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나 아닌 다른 삶들도 지금껏 살아왔고 앞으로도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그들을 이해할 수 없다고 이해하기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려고 서로 노력을 해야 세상은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위해서는 다수의 입장 혹은 힘을 가진 쪽에서 먼저 배척과 혐오를 거둬야 한다. 그들은 가볍게 생각하는 손가락질들은 구온지가가 신생아를 살해하는 전통(?)을 만들었듯이 또 다른 참극을 만들 수도 있다. 낯선 존재들, 나 아닌 다른 삶들은 어디에나 있다. 그게 나나 당신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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