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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슨한 빌리지 Mar 31. 2019

어쩌면 '지금'에 대한 이야기

48-1. 영화 <업Up>을 보고 나눈 이야기

* 한 달에 한 주제를 정해서 책 2권과 영화 2편을 봅니다.

* 매주 수요일 발제 / 월요일 녹취가 업로드됩니다.

* 이 뒷담화는 노년 키워드의 네 번째 텍스트 영화 <업 Up>에 대해 나눈 이야기를 기록한 글입니다.

* 이번 모임엔 일벌레, 학곰, 연연이 참여했습니다.

* 영화 「업(Up)」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본 녹취록은 '과거를 마주한 당신' 읽으면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습니다.



이렇게 발랄한 노년이라니


일벌레: 노년을 주제로 다루었던 그간의 텍스트(책 『딸에 대하여』, 영화 <네브라스카>, 책 『아버지와 아들』) 모두 부모자식 간의 이야기였기 때문에 노년끼리의 이야기를 찾고 싶었는데 쉽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그동안 다룬 텍스트와 톤이 다르고 대중적인 영화 <업Up>을 골랐어요. 대부분의 노년에 관한 영화나 책이 죽음, 과거, 가족 등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같았어요. <업Up>을 보고는 그 중에서도 과거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구요.


학곰: 저는 <업>을 보고 미니멀리즘이 떠올랐어요.


연연, 일벌레 : 이 영화에서요..?


학곰: 네. 사람과 기억 같은 과거를 놓고 나아간다는 의미에서 ‘공수래공수거’로 읽었는데, 결말까지 보니 주인공 프레드릭슨의 삶에서 미니멀리즘이 보여요. 노인이 물건을 버리는 행위는 보통 인생을 정리한다는 의미인데, 이 영화에서는 비움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에 집중한 것 같아요.


연연: 저는 노인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체력 저하나 가난 같은 리얼리즘적인 재현이 아닌 동화적인 이야기를 통해 세대 간의 우정을 표현해서 좋았어요. 역시 픽사다, 하는 느낌? 특히 노인 몸의 일부라고 할 수 있는 지팡이나 틀니 같은 다소 서글픈(?) 소재를 결정적인 장면에서 유머러스하게 무기로 전환시킴으로써 노인 이미지를 뒤엎었다고 생각해요.


일벌레: 재개발이라는 사회적이고 현실적인 이슈를 환상적인 방법으로 극복해서 색다른 느낌을 받았어요.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풍선에 헬륨가스를 채워 띄우는 집이나 말하는 개라는 설정이 매우 허술하잖아요? 그런데 애니메이션 영화니까 환상적인 방법으로 과거에서 탈피하고 현실의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이 오히려 좋더라고요.


과거의 자리를 현재로 채우다


학곰: <업>에 악역으로 나오는 탐험가 찰스가 과거에 매인 전형적인 사람이에요.


일벌레: 그런 점에서 주인공 프레드릭슨과 차별점이 나타나네요. 프레드릭슨은 과거에서 벗어난 데 비해 찰스는 끝까지 과거에 얽매여 놓지 못하니까요.


학곰: 많은 책들이 과거가 있으니까 내가 여기 있다고 생각하라고 말하잖아요. 하지만 막상 내가 그 시간을 지나왔기에 지금의 내가 되었음을 인정하기는 어려운 것 같아요. 과거를 지우고 싶은 마음은 아닌데 말이죠.


일벌레: 부정이든 긍정이든 과거와 현재의 자신을 분리하는 과정은 필요한 것 같아요. 프레드릭슨과 찰스가 과거에 매인 자신에서 깨고 나오는 방법은 서로 달라요. 찰스는 과거의 영화를 증명하고자 하고, 프레드릭슨은 과거의 영웅 찰스가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살인도 서슴지 않는 사람이라는 점을 알게 되어 과거의 환상이 깨요. 주인공이 과거부터 꿈꿔온 일이 현실에서는 잔인하거나 더 가혹하단 점이 좋았어요.


학곰: 맞아요. 과거는 대부분 미화되잖아요. 사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은데 말이죠. <업>은 그걸 깨요.


일벌레: 네. 내가 원했던 건 환상 속의 나인데, 환상이 깨지면서 어쩌면 현실적으로 더 가치 있는 무언가를 얻었단 점이 좋았어요. 이를 테면 러셀 같은 친구요.


학곰: 지금의 나는 과거를 거쳐 여기에 와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근과거에 대해 고평가하는 거 같아요. 대학생 때에는 더 잘 썼는데, 더 팔팔했는데 같은 말처럼요.

 그런데 지금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건 모두 환상이라는 생각이 들고 지금은 지금에 집중해야 된다는 생각이 드네요.


연연: 맞아요. 저는 그런 의미에서 집을 떠나보내는 장면이 좋더라고요. 프레드릭슨이 물건으로 얽혀 있다고 생각했던 아내와의 관계가 실은 초반 5분 시퀀스에서 나타나는 시간, 즉 추억에 있다는 점을 깨달은 것 같아서요. 과거를 비우면서 현재로 오게 된 거죠. 거기엔 러셀이 큰 역할을 했고요.



거대 서사에서 매일매일의 작은 성취로


학곰: 주인공이 파라다이스 폭포에 갔던 것처럼 언젠가는 이루고 싶은 꿈, 깨질 줄 알고 있지만 꾸고 마는 꿈이 있나요?


일벌레: 소설책을 내고 싶어요. 초등학생 때부터 생각했는데, 생각한 시간만 길어지니까 현재 제 글에 더욱 불만족하게 되는 것 같아요.


학곰: 양로원에 끌려가게 생긴 극한의 상황에서 밤새 급하게 풍선을 구해서 헬륨을 넣을 수 있었던 데에는 그동안 풍선 장수일을 하면서 숙련된 기술이 있기 때문이에요. 이처럼 꿈을 꿈으로만 두지 않고 평소에 숙련도를 쌓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무언가 하고 싶다고 생각한 지는 오래 되었는데 계속 회사나 개인적인 상황 때문에 못하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막상 회사 일이 해결되어도 안하더라고요. 그래서 평소에 조금씩 걸쳐놓지 않으면 내가 생각하는 선에 닿을 수 없다는 걸 느꼈어요.


일벌레: 맞아요. 각 잡고 (글을) 쓰고 싶어서 휴학한 적도 있는데 (제 성향이) 쉰다고 글을 쓰는 게 아니더라고요. 또한, 회사 생활하면서 개인 시간을 챙길 수 있을 때에는 언젠가 꿈을 이룰 거라고 낙관적으로 생각만 했는데, 워라밸이 사라지고 극한 상황이 오니까 오히려 더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체력 때문에 결국 쓰지는 못했지만요. 아이러니하다고 느꼈죠.


연연: 학곰은 뭘 꿈꾸는데요?


학곰: 궁극적인 건 자기만의 밈으로 30분 이상 채울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거예요. 회사 다니면서 그런 밈을 만드는 사람의 책을 팔다보니, 자기만의 것으로 어떤 세계를 만들 수 있는 모습을 보잖아요. 멋지더라고요.

 근데 최근에 어떤 친구가 제게 그러더라고요. 너 정말 조급해보인다고. 해야하는데 못하는, 또는 무언가는 했지만 내가 생각하는 것과는 멀어진 경우가 쌓이니까 처음엔 죄책감이 많이 들었어요. 진짜 하고 싶은 것을 두고 왜 이걸 하고 있지? 내게 묻게 되더라고요. 그러다가 자기합리화의 핑계를 대고, 핑계 대는 나에 대한 화도 나고, 결국엔 아무 생각 없이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더라고요. 그래도 지금은 무엇이든 다시 시작해보려고, 일상에 균열을 내보자고 생각하고 있어요.


연연: 그런 측면에서 영화 초반 시퀀스에 나오는 저금통 깨는 장면이 굉장히 좋았어요. 파라다이스 폭포로 떠나겠다는 꿈을 위해 돈을 모으지만, 자동차 바퀴가 터진다든지 어디가 아파서 급전이 필요하게 될 때마다 저금통을 깨잖아요. 현실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했어요. 어떻게 보면 <업>은 노년이 되어서야 꿈을 이루고자 행동한 이야기이고 어떻게 보면 노년까지 꿈을 미룬 이야기이기도 하죠.


학곰: 저금통 장면에 대해 좀더 이야기하자면, 프레드릭슨이 살던 시대는 탐험가가 각광받던, 명예로운 무엇을 꿈꾸고 참여하고 싶어하는 마음을 추동하던 시대였죠. 그런데 우리 세대는 그러한 거대 서사는 끊임없이 지연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현실에서 어른들을 보며 깨달았죠.

 그래서 요즘 세대는 다르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꿈꾸는 건 아주 다른 사소한 거예요. 극중 인물들이 꾸었던 상상의 세계는 우리에게 없어요. ‘저금통을 채워서 무얼 하겠다’가 아니라 ‘저금통을 채우는 행위 자체’가 중요한 세대가 되었어요. 그래서 저금통을 깨는 행위도 어떻게 보면 꿈을 지연하는 게 아니라 꿈을 이뤘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죠. 문제는 저금통을 채우는 일 자체가 워라밸을 위협당하면 이루기 어렵다는 점이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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