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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슨한 빌리지 May 10. 2019

그 시절 우리가 어쩔 줄 몰랐던,

53-1. 『그날 밤 우리는 비밀을』을 읽고 나눈 이야기

* 한 달에 한 주제를 정해서 책 2권과 영화 2편을 봅니다.

* 당분간 매주 토요일 발제 / 수요일 녹취가 업로드됩니다.

* 이 뒷담화는  키워드의 첫 번째 텍스트 『그날 밤 우리는 비밀을』에 대해 나눈 이야기를 기록한 글입니다.

* 이번 모임엔 일벌레, 이주, 다희, 연연이 참여했습니다.


* 본 녹취록은 '그 소녀는 내가 아냐’를 읽으면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습니다.



이제는 숨길 수 없는 몸, 性

출처 unsplash


다희: 발제에도 썼듯이 이주가 표지 콘텐츠에서 꼽은 걸 보고 읽어보자고 생각했는데 ‘몸’ 키워드와 잘 맞을 것 같아 선정했어요. 여성, 십대, 몸이라는 키워드를 정하고 썼다는 점이 흥미로웠거든요. 하지만 제목과 일치하는 표제작이 없는 데다 작품 간의 연결성이 약해서 아쉬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소년기라는 예민한 시기에 얼마나 많은 것에 영향을 받는지를 잘 드러내는 것 같아요. 요즘 화제가 되는 스쿨미투를 비롯한 청소년 몸 이슈에 대해 이야기 나누면 좋을 것 같아요.


일벌레: 저도 작품 간의 연결성이 부족하다는 점이 아쉬웠어요. 여러 작가가 쓴 작품집보다 한 작가의 작품집을 읽는 데 익숙해서 더 그런가 봐요.


다희: 맞아요. 작가가 여러 명이라 작품별로 선호가 다를 것 같아요.


이주: 작품은 <안개>가 제일 좋았어요. 다섯 작품이 같은 키워드로 시작했지만 각각 주제가 다른 것 같아요. 기획에서부터 의도하고 나눈지는 모르겠지만 1) 외모 지상주의 2) 청소년의 섹슈얼리티에서의 성별에 따른 불균성 3) 가정폭력 4) 자아 찾기 5) 동성애 라고 할 수 있겠네요.


다희: 저도 <안개>가 마지막에 발랄하게 끝나서 좋았어요. 하지만 소설이 아닌 현실이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하니 미소가 위태롭게 느껴지고 서늘해지더라고요. 아빠가 도망친 새엄마를 찾으면 어떡하지, 아빠가 미소까지 위협하면 어떡하지 하고요.


일벌레: 청소년기라고 생각했을 때 공감되지 않는 부분이 좀 있었어요. <그날 밤 우리는 비밀을>을 읽으며 <보건교사 안은영>을 읽었는데 저는 <보건교사 안은영>쪽이 더 공감가더라고요.


연연: 맞아요. 술술 읽혔지만 어른이 쓴 청소년 소설 같은 부분이 있어서 아쉬웠어요. 특히 <눈그림자>에서 현진이 낯설었어요. 현진이처럼 개방적으로 성교육받은 아이가 있을까? 의문이 들었거든요. ‘콘돔 사올래?’라고 말할 수 있는 여성 청소년. 화자로 현진이를 설정해서 공감하기 어려웠던 거 같아요. 오히려 저는 민준이처럼 죄의식과 섹스가 결부되어 혼란스러워하곤 했거든요.


다희: 한편으로 모든 작품들이 통쾌하게 끝맺지 못해서 아쉬웠어요. 모든 작품이 여성화자라서 으레 그렇듯이 흐지부지 끝나버린 건가, 싶었고요. 하지만 현진 같은 캐릭터가 나올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요즘에는 성인용품 브랜드 이브에서 청소년 콘돔 자판기를 설치하기도 했고 다이소에서 임신 테스트기를 구매할 수도 있으니까요.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경로가 많아 더 이상 숨길 수 없어졌으니까요.


일벌레: 맞아요. 예전에는 <안네의 일기>에도 자신의 성기를 그려오라는 성교육 과제하는 장면이 있었대요. 그런데 우리나라로 오면서는 삭제되었다고 하잖아요. 요즘은 원서도 읽을 수 있고 외국인과 교류하기도 쉬우니 그런 걸 숨기기 어려워졌죠.




몸을 둘러싼 시선들


다희: 작품 공통적으로 여성 청소년 몸에 대한 인식이 드러나잖아요. 특히 남의 시선엔 의해 규정되는 일에 대한 이야기가 많죠.


일벌레: 틴트가 안 나오는 소설이 없더라고요. 제가 학교 다닐 때만 해도 (화장 하는 청소년과 꾸미는 데 전혀 관심이 없는 청소년 사이의) 중간 영역이 있었는데 이제는 화장이 대세가 되어 화장 안 하는 친구는 겉돌게 된다고 하더라고요.


이주: 맞아요. 그냥 추리닝 입고 공부하는 친구들도 많았고요. 그런데 지금은 이전보다 청소년에게도 꾸미기에 대한 강박이 더 심해진 것 같아요. 반면에 그런 점 때문에 저희 때는 생각하기도 어려웠던 탈코르셋 운동이 청소년들을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는 것 아닐까요?


다희: 네, 청소년계에서 요즘 스쿨 미투를 비롯한 페미니즘 운동이 많이 일어나고 있대요. (관련 기사: #스쿨미투, 우리는 되돌아갈 수 없다) 그런데 청소년은 권력이나 권위, 경제적 자립 없이 자신을 드러내야 하기 때문에 활동이 더욱 어렵다고 하더라고요. 더군다나 청소년 페미니즘 토양이 부족하잖아요. 어른으로서 미안하기도 하고 걱정되기도 해요. 예전에는 숏컷이고 바지 입고 다니는 친구를 그냥 편하게 입는 친구로 보았거든요. 그런데 요즘에는 메갈로 받아들여져서 위협을 받을까봐 걱정되어요.  


일벌레: 그런 걸 보면 아이들이 순수하다는 말은 다 어른들이 지어낸 말인 것 같아요. 아이들도 어른들의 세계를  흡수해서 권력 관계를 답습하거든요. 제가 다니던 학교에서는 반에서 예쁜 애들은 면접 없이(혹은 형식적인 면접으로) 선발되어 동아리에 들어가기도 했어요.


연연: 저희 학교도요! 그 때에는 그렇게 예쁘다고 뽑혀가는 친구가 부럽고 그 친구들에게도 자랑이 되었는데 사실 그것조차 평가당하고 대상화되는 일이잖아요.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굉장히 심정이 복잡해요.


다희: 저도 여고였음에도 불구하고 학생회에 들어가자마자 졸업생에게 집합 당해 엎드려 뻗쳐 당했던 일이 있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소위 남자 문화라고 하는 군대 문화를 어게 여고 졸업생이 배워서 답습하고 있는지 참..



'만약'을 '지금'으로 옮겨오는 일

출처: 연합뉴스


연연: 그런데 저는 청소년기에 연애에 별 관심이 없어서 그런지 소설 속 감정선에 크게 공감이 되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성인이 되어 이성애와 다른 사랑까지 배우고 나니, 청소년기에 애정을 가졌던 친구들이 어쩌면 사랑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성애만 배워보았기 때문에 무의식적 억압으로 인해 소설 속의 야릇한 감정을 느끼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그때 친구를 향한 감정이 그 정도는 아니었는지 궁금해졌어요.


이주: 저도 공감해요. 저도 학창 시절에 친한 동성 친구에게 질투도 하고 약간 집착했었거든요. 물론 그럴때도 마음속으로는 좋아하는 남자애가 있긴 했었지만요.(?!)


일벌레: 어릴 때부터 대상화된 여성의 모습만 학습하다 보니 남성의 벗은 몸을 봐도 섹시하다고 느끼지 못하는 거 같아요. 오히려 여성의 몸을 더 섹시하다고 느끼게 되고요. 어릴 적부터 성적 욕망을 느끼는 주체로서의 여성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다희: 가끔 그래서 남성이 느끼는 욕망이 궁금해요. 여성은 한 번의 매커니즘을 더 거쳐서 생각하게 되는 거잖아요. 만약 학창시절부터 대상화된 여성으로서 교육받지 않고 주체적인 여성을 보았다면 어땠을까 궁금해요.


이주: 남녀 고등학교나 남녀반이 나뉜 것도 세계적으로 보면 보편적인건 아니잖아요. 오히려 그렇게 나누고 구별지어 버리니까 왜곡된 성 의식이 생기는 거 아닌가 싶어요. 서로 대화도 해보고 같이 생활도 해봐야 이성에 대한 환상도 없어지고 서로 어떤 부분을 배려해야 하는지 알 텐데, 그런 과정 없이 스무 살에 땡, 하고 사회에 던져지니 어찌할 줄 모르는 거죠.


연연: 그래서 『그날 밤 우리는 비밀을』을 읽으며 다양한 측면에서 내가 학창 시절에 다른 환경이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하게 되었어요.


이주: 저도 학창시절을 떠올리게 되었던 거 같아요. 그런데 우리는 이미 그 시기를 지나온 어른이잖아요. 진짜 청소년기를 지나고 있는 친구들은 어떻게 읽을까 궁금해요.


다희: 「생각을 보는 소녀」에서 드러나듯이 청소년기는 세상과 날 맞추어 가는 시기라고도 생각하거든요. 그런 과정에서 몸도 나의 요소 중 하나라고 생각하고 <캡틴 마블>과 같이 주체적인 여성이 등장하는 영화 등을 보며 다양한 여성상을 꿈꿀 수 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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