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 김해원 외 4명, 『그날 밤 우리는 비밀을』
*한 달에 한 주제를 정해서 책 2권과 영화 2편을 봅니다.
*5월의 주제는 [몸]입니다.
* 5월의 주제 [몸] 업로드 일정표
- 5월 5일(일) 책 『그날 밤 우리는 비밀을』(2018), 김해원 외 4명
이 책을 알게 된 건 표지만 보고 끌리는 책을 고르는 코너 '표지만 보고 고른 책'에서 에디터 이주가 골랐을 때였다. "메갈리아의 딸들"의 리디자인된 표지의 느낌과도 비슷한 몽환적인 일러스트가 오래 기억으로 남았고, '십대, 그리고 여성의 몸'에 대한 키워드로 쓰고 묶은 단편이라기에 더욱 관심이 생겼다.
키워드를 잡고 책을 읽고 발제를 하는 느빌의 발제에 제격일 거라 생각했다. 작품에서 공통의 키워드로 초점을 맞춰 해석하는 것보다 이미 그렇게 쓰인 책을 읽으면 더 편할 것 같기도 했다. 그렇게 책을 고르고 읽기 시작했다. 책은 '십대, 여성, 몸'을 키워드로 잡아 집필한 단편집이다. 책에 실린 다섯 편의 단편은 10대 여성들을 주인공으로 한다. 하지만 여러 작가의 작품이라 그런지 작품 간 서로 묶이는 코드는 존재했으나, 기대했던 만큼의 긴밀한 연결은 아니어서 다소 실망스럽긴 했다. 작가와 주인공의 세대차이 때문일까 주인공의 목소리가 실제 당사자의 목소리들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것도 아쉬웠다.
그럼에도 잔잔하게 끝까지 읽혔던 이유는 나 또한 한번쯤 지나왔을 수 있는 세계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었다. 불확실하고 불안한 내면을 가진 소녀들이, 다른 여성과의 관계를 통해서 불합리와 억압을 알아차리고 그것에서 한 걸음 내딛는 모습들이 주는 여운은 분명하게 존재했다. 그리고 다시 그 여운은 내 몸에 대해 떠올리고 생각해보게 만들었다.
내겐 평균에 미치지 못하는 작은 키에 대한 컴플렉스가 있었다. 외모에 대해서라면 누구나 다들 사소한 컴플렉스들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체중이 될 수도 있고 피부트러블이 될 수도 있고, 어쨌든 외모에 대한 평균 기준과 이상은 늘 존재했고 그래서 이런 허상은 모두에게 손쉽게 컴플렉스로 이어지니까. 그런데 여자의 작은 키에 대한 고민에선 약간 이상한 위로가 이어졌다.
키가 조금 더 크면 좋을 것 같단 말에 '여자는 작아도 괜찮잖아'라는 말이 쉽게 따라붙었다. 발화자가 남성일 때도 여성일 때도 있었고, 나중엔 나 또한 자연스레 그렇게 생각하게 될 때도 있었다. 묘한 이상함을 감지했다. 내 몸에 대해 내가 가지는 느낌이 다시 타인의 눈, 특히 남성의 눈으로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위로가 될 수 있다고 여기게 되다니. 내 몸이 대상화된 무언가가 아닌 그냥 '신체'로 바로 보기 위한 노력은 그 이상함을 감지한 이후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제 몸을 대상화된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고, 이를 감지하더라도 그 뿌리깊은 억압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의식적인 노력을 계속해야 하는 쪽도 역시나 여성이다.
가령 많은 여성들은 때로 화장을 조금이라도 하지 않으면 혹시 어디 아프냐는 질문도 자주 들었을 것이다. 아마 디폴트가 화장하고 꾸민 뽀얀 얼굴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화장기 없는 여성의 얼굴은 어딘가 부족한 것으로 느껴지고, 결국 여성 스스로에게도 그렇게 느껴지도록 한다. 나 또한 화장을 하지 못하면 모자를 쓰거나 마스크를 했다. 맨 얼굴인 상태는 준비가 부족한 상태로 느껴지곤 했음을 고백한다.
누구에게나 몸에 대한 인식은 항상 타인의 시선을 한번 통과해 발생할 수 있겠지만, 특히 여성의 경우 몸에 대한 억압적인 인식들이 많고 강하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은 자신의 몸에 대한 인식을 하기 전부터 대상화되고, 여성의 몸을 둘러싼 원치 않는 섹슈얼리티의 억압에 본인도 모르게 감금되고 또 그 억압을 재생산하기도 한다.
다른 아이였다면 비웃음을 샀을 것이다. 쟤는 쌩얼이네. 되게 용기 있다. 맨얼굴로 다니다가 남자아이들이 그렇게 말하는 바람에 화장을 시작한 아이들도 실제로 있었다. 처음에는 피부의 잡티를 살짝 가리는 수준으로 시작했지만 점점 전문적으로 변해 가고 짙어지는 색조 화장은 모든 여자아이들의 얼굴을 제각기 다른 방식으로 조금씩 어색해 보이게 했다.
<눈 그림자> 중
<눈 그림자>에서 현진은 같은 반 친구 설영의 몸을 보며 스스로를 비교하고 평가한다. 현진은 설영의 '우아함'을 칭송하고 부러워한다. 언뜻 현진이 설영을 바라보는 그 시선은 남자아이들의 시선과도 유사하다. 설영의 외모 권력은 여성과 남성 모두에게 통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이것이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였음을 알아차리는 덴 얼마 걸리지 않는다.
민준과의 연애 이후 도는 소문은 설영에게만 유해하다. 여성인 설영에게만 화살이 가고 비난의 눈총이 간다. 민준은 아무런 타격을 입지 않고, 되려 그것을 이별의 복수라고 여긴다. 10대 남성인 민준도 알고 있다. 여성의 섹슈얼리즘은 협박이 된다는 것을. 그리고 같은 일의 당사자라 하더라도, 남성의 경우엔 사회적으로도 다르게 해석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다 같이 미숙한 가운데서도 웃을 수 있는 쪽이 있었고, 절대로 웃을 수 없는 쪽이 있었다.
<눈 그림자> 중
과연 단지 정신적으로 미숙하고 어리기 때문에 더 자주 발생할 수 있는 일일 뿐일까. 이 단편에서 나는 각종 유사한 사건들이 겹쳐 보였다. 최근까지도 숱하게 만난 사건들과 여전히 벌어지고 있는 사건들. 섹스의 증거가 되는 사진이나 영상이 이별 후 여성에게 협박의 수단으로 작용하며, 강간 후 입막음을 위해, 그리고 죄책감 없이 손쉽게 벌어지는 또 다른 2차 가해들 가운데 소비되고 있다. 그 와중에도 이해와 관용을 강요당하는 쪽은 고스란히 피해 여성이다.
모두가 그 애를 기꺼이 이해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 같았어. 민준이가 실수한 건 맞는 것 같다고, 하지만 너를 좋아해서 그런 거라고, 남자애들은 아직 성숙한 존재가 못 돼서 그렇게 바보 같은 식으로 표현을 하는 거라고, 민감한 시기라고...... 그럼 나는? 왜 나만 성숙해야 하는데? 나는, 내 말은 아무도 믿어 주지 않았어.
<눈 그림자> 중
이런 불균형의 실체를 바라보며 소녀들은 이제 힘을 합친다. 어리고 힘없을 거라 여겨졌던 소녀들은 이제 힘을 모으고 움직이기로 결심한다. 자신들을 향하고 있는 침묵과 폭력의 실체에 대하여, 부당함을 감지하고 움직이기 시작한다.
10대 여성들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소설을 읽고 있으니 같은 교복을 입고 줄 맞춰 앉아 있던 고등학교 시절이 떠오르기도 했다. 정말 다양한 체형을 가졌으면서도 우린 잘 늘어나지도 않는 소재의 교복을 다 똑같이 입어야 했다. 그래 왔으니까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수업 중에 만연했던, 지금 생각하면 정말 이상한 개소리들에도 침묵하고 웃어넘겨야 할 때가 많았다.
그러나 이제 세상은 바뀌었다. 스쿨 미투나 탈코르셋 운동이 10대 여성들 사이에서 더욱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은 그 상황을 잘 알고 있지만 바꾸지 못했던 앞선 세대로서 미안하기도 하고, 다시 정신 차리게 하는 힘이 되기도 한다. 2016년 이후의 페미니즘 물결을 가장 가까이서 본능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던 세대 또한 그들이었을 것이다. 학교 안에서 불합리하게 쌓이고 있던 폭력들은 오래된 괴물이었고, 참았던 소녀들은 더 이상 가만있지 않았다. 학교라는 울타리가 10대 여성들을 지켜주기는커녕 일상적인 폭력의 현장이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현진과 설영도 힘을 합쳐 '아무도 대신 입 밖에 내주지 않는' 쌍욕을 자신의 입으로 뱉어 내며, 함께 싸움을 시작한다. 그렇게 입 밖으로 터져 나오는 외침은 또 다른 외침을 부르고, 아무도 대신해 주지 않았던 피해자의 목소리들은 서로의 목소리를 더 많이 부르게 되었을 것이다.
소설을 끝까지 다 읽고 다시 읽으면 서늘하게 무서운 첫 장면을 가진 <안개>의 주인공 미소도, 도무지 친밀감을 느끼지 못했던 새엄마를 처음부터 돕지는 않는다. 아니 못한다는 쪽이 더 맞을 수도 있다. 오래된 폭력은 피해자들을 마비시키고 벗어날 수 있을 거란 희망까지도 앗아가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만 바람소리일 뿐이라고 애써 무시하는 새엄마의 비명소리와 피해 사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온몸에 번지는 멍으로, 붉은 상처로 선명하게 남는다. 그러다 미소는 자신의 이름조차 제대로 부르지 않고 '너'라 부르며 집착과 데이트 폭력을 일삼는 남자 친구로부터 벗어나야 함을 깨닫는다. 동시에 자신을 구출해준 새엄마에게도 폭력적인 아빠가 '원래 미친 사람이었음'을 선언한다. 다음날 탈출한 새엄마의 무사를 응원하며, 자신 또한 폭력적인 연애 관계로부터 탈출한다.
나는 차가 달리는 내내 속으로 말했다. 그 사람은 바람개비의 저주가 내리기 전부터, 아니 우리 할머니 배 속에서부터 미쳐 있었던 건지 몰라요. 저 거대한 바람개비가 윙윙 울기 전부터 그 사람은 자기 멋대로 미쳐서 날뛰었으니까요. 아무도 말리지 못해요.
<안개> 중
폭력을 폭력이라 선언하고 바로 보기 시작하는 것은 그러므로 거기서 빠져나와야 함을 명확하게 알려주기도 한다. 불안하고 위태로운 상태였으나, 폭력은 폭력이고 억압이 억압임을 인식하는 것으로 주인공들은 그 상태에서 벗어날 행동들을 하나씩 하게 된다. 그리고 그 행동을 하는 몸은, 이제 억압적 세계로부터 탈출할 준비를 시작하고 있다.
결국 용기는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에 다름없다. 무엇이 폭력이고 억압인지 알아차리고 '행동하는 몸'을 자기 자신으로 인식하고 외부의 시선으로 억압받지 않으려 노력하는 태도. 그렇게 터져 나오는 용기들은 수신인을 특정하진 않았어도(않았기 때문에 더욱 확장되면서), 누군가에게 닿고 또 모이게 될 것이다.
그렇게 모인 '우리는' 고립되지 않고 불균형한 세계에서 서로의 용기가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