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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슨한 빌리지 May 21. 2019

완전한 디스토피아, 불완전한 로맨스

리사 프라이드 <스타터스>

*한 달에 한 주제를 정해서 책 2권과 영화 2편을 봅니다.

*매주 수요일 발제 / 월요일 녹취가 업로드됩니다. (잘 안지켜질 때가 훨씬 많습니다.)

*5월의 주제는 [몸]입니다.


*5월 주제 [몸] 업로드 일정표

- 5월 5일(일) 책 『그날 밤 우리는 비밀을』(2018), 김해원 외 4명

- 5월 10일(토) 영화 『에이리언』(1979), 리들리 스콧

- 5월 21일(화) 책 『스타터스』(2012), 리사 프라이드





0. 늙음과 젊음의 이분법.


리사 프라이드의 <스타터스>는 가까운 미래의 극단적인 양극화 시대를 맞은 세계를 그린다. 생화학 전쟁으로 인해 중장년층이 모두 죽고, ‘엔더’라고 불리는 매우 늙은(100살에서 200살까지 있는)이들과, ‘스타터스’라고 불리는 10대 청소년들만 남은 세계다.


이렇게 연령으로 극단적으로 나누어진 사회는, 당연하게도 사회의 모든 면이 양극화 되어있다. ‘엔더’들은 (투표권을 포함한) 모든 기득권을 독점하였고, (운 좋게 부자인 조부모를 둔 극소수의 스타터를 제외한) 많은 ‘스타터’들은 거리에서 살며 굶주리며 안전한 사회의 테두리에서 벗어난 존재가 되어있다. 그들은 길에서 범죄자(비우호주의자)나 부랑자(우호주의자)로 살아가는데, 이마저도 그보다 더 비참하게 살아야 하는 ‘보호소’로 잡혀가는 걸 피했을 때나 가능한 일이다. 거리 곳곳에는 스타터들을 잡아가려는 엔더들과 집행관들이 득실거린다. 엔더들은 이렇게 사회 구조적으로 스타터들을 억압하고 착취하며 살아가는데, 결국 그들의 권력은 ‘스타터’들의 '몸'에 대한 욕망으로까지 나아간다.


소설 속 주인공 ‘켈리’는 아픈 동생과 함께 살 집과 돈이 필요하고, 그래서 그녀의 ‘어린 몸’을 엔더들에게 파는 거래에 응하는 것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1. ‘몸’을 소유한다는 것 - 매춘의 메타포.


사회의 기득권을 모두 독점한 노인들과 가난하고 절망적인 10대들 밖에 안남은 사회에서, 엔더들의 욕망이 마침내 스타터스의 ‘젊은 몸’에 투영되는 건 당연해 보인다. 이 거래가 기업의 주도로 이루어진다는 점 역시도 꽤나 현실적이다.


예쁘거나 잘생긴 스타터와 계약해 그들을 성형수술 시켜 더욱 완벽한 10대로 만들어 준 뒤, 그 몸을 단기적으로 ‘렌터’라고 불리는 엔더들에게 대여해주는 회사(프라임 데스티네이션)가 그 중심에 있다. 이 회사를 통해 늙은이가 젊은이의 몸을 대여하고, 여기에 유혹당하거나 혹은 강제로 납치되어 자신의 신체를 빼앗기는 10대들이 생겨난다. 몸의 대여 기간 역시도 하루-일주일-한달로 점차 늘어나고, 결국 소설의 후반부에는 엔더들의 영구적인 스타터 신체 강탈 시도로 이어진다.


결국 이 구조는, SF라는 장르의 탈을 쓰고 공상과학의 디테일로 그려내고 있지만, 실은 우리 현실의 매춘과 노동 착취를 환기시킨다. 말 그대로 많은 형태로 ‘몸을 파는’ 젊은이들과,  돈이 많다는 이유로 청년의  몸을 너무나 쉽게 사버리고 있는 사회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이다. 신체 렌트가 이루어지는 구체적인 과정과 구조도 현실 속 (유사)매춘과 너무나 흡사하다. 기업 ‘프라임 데스티네이션’은 포주(혹은 젊음을 상품화 하는 수많은 기업) 역할을 하고, 스타터들을 예쁜 상품으로 만든 후, 돈을 쓸 준비가 된 늙은이들의 욕망을 광고로 자극한다. 이렇게 늙은이(엔더)들의 욕망과 그들이 가진 돈이 합쳐지면, 기업은 이들을 위해 곧바로 ‘아름답고 어린 여성의 몸’이라는 상품을 만들어 낸다. 엔더들은 그 어린 몸을 마음껏 소유하고 심지어는 다치게도 하지만, 이 과정에서 실제 그 몸의 주인인 10대는 자기 몸에 대한 권리나 결정권이 별로 없다. 이미 스스로도 자신이 팔 수 있는 하나의 상품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일반적인 스타터의 삶으로는 결코 가질 수 없는 돈을 주기 때문에 이 세계에 대한 환상을 모든 가난한 스타터가 갖고 있다. 그러나 한번이라도 자신의 신체를 대여해준다면, 그들은 머리 속에 칩이 심겨 평생 감시당하고 관리당하는 존재가 될 수밖에 없다.


이 전체 서사는 젊은 몸을 상품이자 수단으로 소비하는 게 일상화된 우리 사회와 무척이나 닮아있다. 지나치게 자극적인 모습의 젊음과 성으로 상품화가 되고 있는 아이돌, ‘삼촌 팬’이라는 그럴싸한 단어로 위장한 채 이를 소비하는 아저씨들의 욕망. 헐값으로 청년들의 노동을 부품처럼 소비하는 회사들과 오히려 그런 회사에 가는 게 꿈이 된 많은 청년들. 일상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매춘과 그 유혹에 빠져들기 쉬운 사회 구조, 이제는 공공연해진 사회 고위층을 둘러싼 성접대까지. 모두가 다 ‘젊은 몸’에 대한 욕망과, 그 욕망과 필요성을 자극하여 실제로 돈으로 사고파는 행태라는 점에서는 비슷하다. 그 구조 속에 한번이라도 빠지면 다시 헤어나오기 어렵다는 점까지도.    




2. 로맨스라는 해결책.


이런 '몸'을 둘러싼 절망적인 사회 구조를 폭로하고, 잃어버린 희망을 찾아주는 요소가 주인공 켈리가 보여주는 낙관적인 ‘로맨스’로부터 시작된다. <스타터스>가 디스토피아에 가까운 SF소설임에도, ‘블랙 로맨스’라는 묘한 장르로 구분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부와 권력을 독점한 채 스타터의 몸까지 빌려 자신을 포장하는 엔더, 그리고 반대쪽에서는 몸을 빌려주는 대가로 엔더의 삶과 부를 맛보는 스타터. 겉으로는 모두가 완벽해 보이는 사회에서, 이제 그들은 자신이 만나는 사람이 실제 젊은 사람인지 혹은 자신이 렌트한 인위적인 몸에 기생하는 엔더인지 쉽게 알 수가 없다. 자기 신체가 언제 누구에게 대여되어서 어떤 일을 하고 다녔는지조차 확인할 수가 없다. 과거와 미래에 대한 믿음 따위 없어져야 하는 사회인 것이다. 그럼에도 주인공 켈리와 그녀가 만난 또 다른 스타터 블레이크는, 오히려 낙관적인 믿음을 잃지 않는다. 상대가 그동안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앞으로 또 어떤 순간에 갑자기 사라질지 모르지만, 그들은 그 순간의 사랑을 다짐한다. 이건 오히려 그들이, 엔더만큼 완벽하고 교묘하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들의 진짜 젊음, 바꿔 말한다면 그들의 ‘불완전함’이 로맨스를 탄생시키는 것이다. 누구나 가질 수밖에 없는 이 '불완전함'을 인위적으로 가리거나 피하지 않고, 그 자체로 받아들이면서 사랑을 시작하기 때문이다. 


"블레이크, 있잖아, 난 사실은 버려진 건물 바닥에서 잠들곤 했던 아주 더러운 길거리 고아야. (...) 게다가 더 끔찍한 건, 내가 바디 뱅크라고 불리는 이 회사에다 몸을 팔았다는 거야. 그 사람들이 내 몸을 레이저로 지지고 표백하고 털을 뽑고 문질러서 광을 냈지. 그리고 엄밀히 말하자면, 이 몸은 지금 헬레나 윈터힐이라는 이름의 엔더의 소유야. 그녀가 렌탈 금액을 지불했거든. 너는 사실 지금 그녀랑 데이트하는 중이었을지도 몰라. 100살도 더 넘은 어떤 여자하고. 그러면서도 그 사실을 전혀 몰랐겠지. 이 얘길 어떻게 생각해?"



3. 완벽할 수 없다는 젊음의 모순


소설 속 세계에서 진짜 젊음과 엔더들의 돈으로 만들어낸 인위적인 젊음을 구별하는 유일한 기준 역시도 ‘완벽함’이다. 흠이 하나도 없이 완벽하다면, 그 신체는 엔더스가 빌리기 위해서 인위적으로 만들어 낸 젊음이고, 조금의 흠이 존재하면 그건 실제의 젊음인 것이다. 이 설정은 이 소설을 ‘디스토피아’가 아니라 ‘로맨스’임을 보증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진짜 젊음이 가진 그 흠이, 그들을 늘 ‘현재’에 살게 해주고, 그들이 ‘사랑’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거기에 흔들리면서, 그들은 앞으로도 계속 흔들릴지 모를 사랑을 시작할 수 있게 된다.


절망적이지만 늘 지금을 '시작'으로 살아가려는 ‘starters(스타터스)’와, 많은 걸 가졌지만 자신의 현재를 수긍하지 못하고 점점 도피하는 ‘enders(엔더스)’의 얘기인 것이다.  


"신데렐라가 그 멋진 무도회 드레스를 입고 신나게 즐겼던 밤에, 왕자에게 고백하려고 한 적이나 있나? 오 그런데요 왕자님, 저 마차는 제 것이 아녜요. 전 실은 더부살이 하고 있는 지저분하고 가여운 맨발의 청소부일 뿐이거든요. 이런 고백을 하려고 생각이나 했느냐 이말이야. 아니지. 신데렐라는 그저 순간을 즐겼잖아. 그러고 나서 자정이 지나자 조용히 사라졌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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