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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슨한 빌리지 Jun 05. 2019

고정 수입이 뭐길래

55-1 『스타터스』를 읽고 나눈 이야기

* 한 달에 한 주제를 정해서 책 2권과 영화 2편을 봅니다.

* 당분간 매주 토요일 발제 / 수요일 녹취가 업로드됩니다.

* 이 뒷담화는  키워드의 세 번째 텍스트 『스타터스』에 대해 나눈 이야기를 기록한 글입니다.

* 이번 모임엔 학곰연연,  다희, 박루저 참여했습니다.


* 본 녹취록은 '완전한 디스토피아, 불완전한 로맨스’를 읽으면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습니다.

https://brunch.co.kr/@neuvilbooks/326


# 스타터스의 메타포



박루저: 스토리도 재밌긴 했지만 자본주의가 가는 방향을 드러낸다고 생각했어요. 쉽게 말하면 (우리 사회도)  자본과 권력이 있는 사람이 없는 사람의 몸을 착취하는 게 점점 심해지는 사회잖아요. 성을 사고파는 것이나 노동력도 마찬가지로 몸을 매개로 하는 것이고. 상품들도 결국 신체가 상품화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고 생각해요. 『스타터스』가 보여주는 것은 실제로 몸을 성/노동력 같은 (서비스로) 상품화되어서 파는 것에서 더 나아가 그 자체로 몸 자체를 사고 파는 데까지 보여준 게 아닐까요. 저는 이것이 현실의 메타포라고 생각하며 읽었어요.

그래서 엔더스와 스타터스가 윤리적으로 둘 중에 누가 우위에 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분명 스타터스가 약자인 것은 맞지만 윤리적으로 우위에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어요. 제가 이 (소설 속) 사회에 있다고 생각하면 몸을 거래하는 일은 그저 취직하는 정도로 받아들이지 않을까 생각하거든요. 그래서일까 스타터스들도 우호/비우호로 나뉘면서 사회 안에서 디스토피아처럼 그려지는데 주인공만 유독 특별한 존재로 그려지는 게 아쉬웠어요.


연연: 몸이 존재의 가장 확실하고 직관적인 지표잖아요. 그런 면에서 봤을 때 존재의 두 가지 요소가 시간과 공간인데 이 두 가지를 우리는 몸을 통해서 거래를 하는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잖아요. 그래서 그런 부분의 메타포를 보여주는 것이 좋았어요. 한편으로 이 디스토피아라고 말할 수 있는 세계, 바이러스가 창궐하고, 돈이 있는 사람에게만 백신을 나눠줘서 책에 나오는 상태가 되었다는 설정은 짐작만 할 수 있을 뿐 구체적으로 이 사회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알 수가 없어요. 그래서 구조적인 얘기를 하려는 것 같은데 어딘가 부족한 느낌이 들었어요.


다희: 박루저는 발제에서 매춘을 다뤘는데 매춘이라는 메타포도 있지만 저는 대리모가 생각이 났어요. 타인의 신체를 자본이 어디까지 착취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좀 생각해볼 수 있는 지점이었던 것 같아요. 저도 스타터스들이 윤리적인 존재라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선택권이 없다는 점에서 그 사람들을 약자로 봐야 하고, 전쟁과 복잡한 자본주의의 사회를 복합적으로 이해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게 지금의 시대에서도 생각할만한 문제가 많다고 생각했어요.


학곰: 저는 이 책을 읽을 무렵에 타임테이블을 짜본 적이 있어요. 일어나면서부터 잠들 때까지 시간을 1시간 단위로 그려봤어요. 그런데 제가 쓸 수 있는 시간은 하루에 3~4시간 남짓이었어요. 긁어 긁어 모아도 평일에 20시간 정도밖에 시간이 안 나오더라고요. 그런 생각하니까 되게 우울했어요(웃음). 어쨌든 고용이 되어서 봉급을 지불받고 나의 시간과 몸을 제공하는 삶을 살고 있고, 앞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입장에서 일하는 시간만큼 계속 렌탈당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읽었어요. 그런데 제가 하루에 3시간을 위해서 나머지 시간을 직장에서 써야 하는 게 왠지 억울하더라고요. 그래서 스타터스의 마음으로 책을 읽었던 것 같아요. 



# 고정적인 수입 VS 프리랜서



박루저: 저는 읽으면서 제일 좋았던 설정은 스타터스와 앤더스를 외모로 구분했을 때, 약간 불완전해야 스타터스고 그 불완전하고 안 한 것도 스타터스가 불완전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만 그걸 또 아는 거잖아요. 


학곰: 불완전하다는 게 어떤 의미죠?


연연: 약간 윤내고 흠집 하나 없는 외모?


박루저: 여드름이 하나라도 있으면 같은 젊은 사람이어도 진짜 스타터스. 10대인데 외모적으로 완벽하면 엔더스죠.

작가는 외부적인 완벽함을 말하려고 했던 것 같은데 저는 좀 더 본질적인 메타포가 아닐까 했어요. 현실에서 젊은 사람들은 사실 무엇을 봐도 나이 든 사람에 비해 가진 것이 없고 젊음 자체가 강점이 될 수는 없지만, 그들이 살아가는 감각이 유일하면서도 강력한 무기라고 생각하거든요. 52시간 근무, 갑질 등의 이슈를 볼 때 생활에서 느낄 수 있다는 그 감각이 젊은 사람들의 장점이자 특권이라고 생각해요. 근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특권은 내가 약자라서 생기는 거죠. 내가 52시간에 보호받아야 하기에, 갑질을 당하는 위치이기에 나이 든 사람들보다 예민하게 감각할 수 있는 것이고 그런 차별에서 약자가 될 수 있는 환경이기 때문에 더 민감할 수 있는거죠.


『스타터스』에서도 완전함에서 오는 '젊음'이 보여서 좋았어요. 불완전함 때문에 로맨스가 있는 거잖아요. 가진 것이 하나도 없기에 갖게 되는 태도나 가진 것이 없어서 예민해지는 부분들이 어떤 공통감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연연: 조금 별개인 얘기지만 저는 요즘 늙어감에 대해서 자주 생각해요(웃음). 물론 신체상의 변화이기도 하지만 마인드 상의 변화로 보면, 뭔가 소진하려 하지 않는 나를 보면서 느껴요. 무언가 비축하려 하는 모습들. 이를테면 0으로 갔다가 100으로 가면 힘드니까 20까지만 쓰고 다시 생각해 보자 하는... 신체적인 부분이나 정신적인 부분이나요. 

별 것 아닌 것이지만 뭔가를 가지기 시작하면서 포기하지 못하는 마음도 생기고 두려움도 커지는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 늙음과 젊음이 갈리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물론 신체적인 요소도 있겠지요. 


학곰: 저는 그것은 젊음과는 다른 문제라고 생각해요. 고정수입을 버느냐 안 버느냐의 차이 같아요.


박루저: 저도 비슷하게 생각해요.


학곰: 젊거나 나이가 많다고 비축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소진에 대한 감각은 고정수입이 있는 사람들에게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 노동을 고정된 시간에 제공해야 하기 때문에 잡혀있는 스케줄을 제대로 하려면 주말에 푹 쉬어야 하고한 분배를 해야 하잖아요(웃음). 

다시 박루저의 얘기로 끼어들면 저는 엔더스로 분류된 이들(몸의 주인)도 스타터스라고 보았어요. 자립할 수 없는 존재들이 어느 집단에 소속되고 그렇게 변해간다는 생각을 했어요. 주변 환경이나 내 생활이 분명히 더 나아지기는 해요. 그러면서도 자신을 잃어가는 과정에 대한 메타포라고 생각했어요. 사회적인 필요에 의해서 나도 모르게 그런 모습이 형성되는 거고 계속 렌탈을 하면서 나 자신은 사라지고 나의 몸만 남아 있는 그런 느낌이요. 젊음/늙음, 꼰대/젊은이 그런 대립항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한 개인이 소속을 두었을 때 상품이 되어가는 과정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연연: 표백되어간다는 말이죠?


학곰: 네. 그거예요.


연연: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 게 상처나 흔적은 지나온 시간들에 대한 과정인데, 그런 개인의 역사는 다 지워지고 물성만 남는다는 그런 얘기로 들리네요.


박루저: 비슷해요. 저는 대학생 때부터 사람을 만날 때 이 사람이 프리랜서인지 아닌지가 너무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외모로도, 또 대화 방법이나 사고방식으로도요. 프리랜서로 살면 매 순간 쏟아부어야 하잖아요. 하나 끝나면 포트폴리오가 되어 다음 일이 조금 수월해질 수도 있지만 그때그때 투입되어야 하는 건 늘 현재의 100% 인건 마찬가지거든요. 쏟아붓고 소진하고를 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겉으로도 그렇고 약간 쉽게 나이들지 않는다는 생각을 할때가 많아요. 그래서 저도 젊은 마인드와 늙은 마인드는, 신체적인 조건보다는 오히려 라이프스타일 차이에서 오지 않을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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