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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슨한 빌리지 Feb 01. 2018

10-1. <상냥한 폭력의 시대> 뒷담화

* <느빌>의 오프라인 모임을 기록합니다. 느빌 사람들의 열띤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하겠습니다.

* 발제문과 뒷담화는 전담 에디터 없이 돌아가며 작성합니다.


1. 도시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이전까지 우리는 '전쟁', '시스템-개인', '예술' 등의 주제로 여러 작품들을 다루었다. 하지만 이 모든 주제들은 어쩌면 우리에게 피상적인 주제들이었다.


  이번 발제를 마무리하며 동석은 이런 이야기를 했다.


  "이전까지 주제와는 다르게 '도시'라는 주제는 가장 우리와 맞닿아 있는 것 같다."


  그렇다. 이전까지 우리는 발제를 하면서도 우리는 상상할 수 밖에 없었다. 내가 만약 전쟁을 겪게 된다면, 혹은 예술가가 되고 싶은(하지만 되지 못한) 그런 상황에서 소설을 읽고 발제를 해야만 했다. 하지만 '도시'라는 주제를 통해서는 얼마든지 현재의 삶을 얘기할 수 있다. 이를테면 이전보다 더 자격을 얻은 것이다. 그렇게 정이현의 <상냥한 폭력의 시대>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 이번 모임엔 학곰, 박루저, 다희, 동석, 이주, 셔니, 해정 님이 참여했습니다.

* 본 녹취록은 이전 게시글인 '발제문'을 읽고 오시면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습니다.

* 참고 링크 : 상냥한 폭력의 시대 발제문



2. 뒷담화


2-1. 발제에 대한 평


다희 : <상냥한 폭력의 시대> 중에서도 네 작품을 고른 것은 시간 개념이 들어간 문장이 공통으로 나오는 것이 인상적이었기 때문이에요. 그렇게 골라 놓고 쓰다 보니까 얘기할만한 거리가 많더라고요. 발제문에 다 담지 못한 이야기들도 많았어요.


박루저 : 발제문 좋았어요! 꽤나 공들여서 쓴 것 같은데 나중에 줄여야 할 때 문단 날리기 아까울 것 같아요. 소설은 소재때문인지 30대나 40대의 이야기가 묶여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들의 자기위선 혹은 자기합리화가 일상의 폭력이 되는 걸 보여주는구나 했는데, 무튼 소설 얘기는 이따가 같이 해보아요.


학곰 : 이 소설과 '도시'를 연결시키는 것에 있어서는 도시보다는 도시에 사는 평범한 사람들에 방점이 찍혀있는 느낌이었어요. 왜 이 소설이 '도시' 키워드에 속하는 책인지를 명확히 해야 할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단죄는 항상 유예된다.’라는 문장을 꼽았던 것이 좋았어요. 책 속 ‘위선’이라는 코드와 잘 맞는 것 같아요.


동석 : 책을 쓸 때 작가론적인 걸 얘기했으면 좋겠다 했었는데, 정이현의 소설 스타일, 특징 같은 것도 같이 다뤄줘서 좋았어요.


이주 : 책을 미처 다 안 읽은 상태에서 발제문을 읽었는데(눈치), 발제문만으로도 소설을 읽은 느낌이라 좋았어요. 발제문 중에서는 특히 시간에 대한 내용이 인상 깊었어요.


셔니 : 이전 작품들을 읽지 않았는데도 앞부분에서 연결이 잘 되어 있어 이어진 맥락을 이해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예술가와 도시 사람들의 모습 같은 게 잘 표현되어 있었고 시간에 대한 것도 좋았어요. 몇몇 뜻이 궁금한 문장들이 있었는데 이야기해보면 될 것 같아요.


 


2-2. 소설은 각자 다른 감각으로 다가왔다


박루저 : 장강명 소설이랑 비슷하게 읽었어요. 폭력을 일으키는 당사자가 사실은 스스로(폭력이 내면화된 주인공들)인데 그런 것들을 작가의 눈으로 말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거든요. 아쉬분 부분을 말하자면 이를 거리두고 쓰고 있는 관찰자의 모습이라서 아쉬워요. 더불어 주인공들에게 전제된 상황이 결혼, 내 집 마련, 아이 등 30-40대 중산층의 이야기인 거 같아서 우리의 모습은 아닌 것 같다고 느꼈어요. 우리 세대는 소설 속에서 폭력이라고 표현되는 것들에 이미 지극히 익숙하거든요. 이처럼 거리를 두는 태도 자체도 조금은 맞지 않는 거죠. 폭력이 내면화되어 있는 현실을 솔직하게 말해야 하는 우리 세대가 해야하는 일이라고도요.


그래서 '우리 세대의 제일 마지막 양심은 무엇일까' 하는 질문이 남았어요. 작가는 이를 '폭력'이라고 했는데, 우리는 못하니까요. 우리가 지켜야할 마지막 선은 무엇인지, 우리가 돈말고 지켜야되는 건 뭘지 돌아보게 하는 소설이었습니다.


학곰 : ‘안나’라는 작품에서 나왔던 것이 하나의 답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소설에서 경의 삶은 테크트리처럼 단계를 밟아나가는 그런 삶이고(이를테면 내일을 기대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삶, 미래가 있고 따라가면서 맞춰갈 수 있는 삶이라면), 안나는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느낌으로 나오잖아요. 안나는 알바를 하며 살지만 희망이 없고 해고를 당하고…. 이런 내일에 대한 기대, 희망이 바로 감각의 차이인 것 같아요.


동석 : 소설을 읽으며 꿈도 희망도 없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모든 소설이 끝나는 것이 주인공들이 안 좋게, 또는 현실적으로 끝이 나는 것을 보고 폭력적이라고 느꼈어요.


박루저 : 주인공들은 사회적으로 옳다고 하는 것들을 처절하게 지켜나가면서 더 나은 삶을 위해 노력하지만, 결과적으로는 그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폭력을 일으키게 되잖아요. 그래서 ‘점잖고, 상냥한’ 폭력인 것 같아요. 근데 저는 사실 여기에 거리를 두고 '나빠'라고 말하고 싶은 용의는 별로 없거든요. 그래서 폭력적이라고 느낀 동석은 윤리적 피플인 것 같아요(으헤헤). 저는 오히려 소설이 매우 불편하고 힘빠진다라고 느꼈어요. 이미 최소한의 양심이 무너진 상태라서 그런가(하하).


이주 : ‘폭력’을 행하는 주체가 누구인 것으로 읽느냐의 문제 아닐까요. 주인공들은 폭력을 당하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폭력을 행하는 주체이기도 한 것 같아요. 주인공들을 단순히 폭력적인 시대에 사는 불쌍한 사람들로 읽을 수는 없을 것 같아요. 물론 더 큰 문제는 그런 폭력을 일으키는 사회라고 생각하지만요.


다희 : 이전에 ‘시스템’을 키워드로 읽었을 때는 시스템과 개인을 따로 보았는데 사실 개인과 시스템은 연결되어 있는 것 같아요. 개개인은 선하게, 그리고 열심히 살고 있지만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폭력이 되는 시대인 것 같아요.


해정 : 박루저는 소설이 우리 세대와는 다른 내용 같다고 했는데 저는 우리 세대가 느끼는 고민과도 맞닿아 있다고 느꼈어요. 이를테면 우리 세대가 "결혼은 못해"라고 말하듯이, 정이현 작가가 그리는 결혼한 이들의 모습이 '결혼 이후에도 더 나을 미래가 없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잖아요.


그리고 극 안의 인물들은 양심이나 찝찝함 때문에 자신의 부덕한 행위가 탄로나기를 기다리지만, 그런 순간은 결코 오지 않고, 그렇게 남아있던 양심이나 찝찝함 역시 천천히 사라지는 과정을 겪어내는 듯했어요. 자신이 저지른 부덕한 일의 행방이나 결과를 알 수 없는,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오는 히스테릭한 행동들이요. 어떤 일을 저질러도 그것의 향방을 확인할  없는 익명의 도시에서 '결과 값이 없음'으로 인해 일어나는 정서나 사건들을 적나라하게. 조금 무서울 정도로 담담하게 그린 소설로 이해했습니다. 인물들은 그런 정서나 사건에 영향을 받긴 하지만, 그것이 이들의 삶을 폭삭 망가뜨리지는 않아요. 그저 지지부진하게 남아있다가 이내 아무것도 아니게 되죠. 극적인 전개가 아니어서 허무하다고 느끼기도 했지만 그 허무함이 좋았어요. 저는 박루저가 말하는 '도덕적 선택을 내릴 수 없는 지금의 세대'를 이미 소설이 그려냈다고 느꼈어요.


셔니 : 시간이 지난 후 양심이 사라졌다고 하셨는데, 저는 남편이 폭력을 저지르고 직장에 짤리고 하면서 양심 때문에 충격을 받기도 하고 고통을 받고 있다고 느꼈어요. 그리고 결과가 아닌 의도만으로도 충분히 나쁜 짓을 저질렀다고 생각했어요.


박루저 :  여러 작품들 속에서 작가는 폭력을 저지를지 말지의 경계를 제시해주면서 불편함을 느끼도록 묘사했는데 저의 감각으로는 이것이 너무도 일상적인 삶인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불편하라고 제시했지만 이미 우리에게는 강요되고 내면화되어버렸달까요. 작가는 이러한 현실을 약간 개탄적으로 그린 것 같고, 우리 세대는 '그런데 이게 나야' 라고 말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2-3. 잠시 소설에서 벗어나 - 우리 세대는


학곰 : 저는 집단보다 '나'는 더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이 20대의 감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88만원 세대라는 말이 나오기 이전, 2000년대 초반에 대학생을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개인보다는 집단이 남아있더라고요. 반면에 개개인으로 파편화된 지금의 세대를 묶는 무언가(연대)는 없다고 생각해요. 디폴트가 다르기 때문에 감각이 다를 수 밖에 없는 것 같아요.


박루저 : 저도 동의합니다. 정이현이니까 이런 소설을 쓸 수 있지만 우리 세대가 이런 소설을 썼으면 위선이라고 생각해요.


해정 : '나'를 더 소중하게 생각하는 감각, 을 '20대의 감각'으로 묶어내는 것 자체가 이미 세대를 엮는 연대를 수행하는 것 아닐까요. 다른 속성일 뿐이지 기성세대와 똑같은 무언가가 우리 세대에도 있다고 생각해요. 어쨌든 우리 세대를 정의내리고자 하는 무언가가요.  


이주 : 저는 해정의 말에 동의해요. 이미 우리 세대 자체가 우리 윗 세대나 아래 세대에 대해 선을 긋고 판단하고 평가하는 것이 바로 세대가 있다는 의미 같아요.


해정 : 그리고 저는 세대론이라는 것 자체를 불신하는 편이에요. 세대론은 흔히 '그들은 그런 감각을 공유하고 있을 것'이라고 전제를 하는데, 그건 우리가 '우리'로 묶일 수 있다는 믿음이 깔려있는 거잖아요. 물론 공통으로 공유하는 감각이 있다고 보는 것에 대해서는 부정하지는 않는데,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 편입니다. 상냥한 폭력의 시대라는 책을 읽고 세대론적으로 접근하는 것, 그리고 이 이야기 속 사람들의 삶 혹은 그들을 바라보는 화자의 시선을 우리 세대와 맞지 않다, 고 정의 내리는 것 자체가 폭력 같다는 느낌이에요. 개개인, 개별자들은 다 제각기의 삶을 살고 있는데 이것을 '3040대가 살고 있는 삶'이라고 뭉뚱그려서 우리 감각과는 조금 달라, 라고 말하는 것 같아요. 물론 어떤 경험과 감각을 나누어 접근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그것이 비단 구별만을 목적으로 하는 거라면 위험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동석 : 저도 소설을 읽으면서 굳이 세대론적으로 접근하진 않았아요. 그냥 개인으로 접근했고 그래서 표현방식이 다른 폭력이라고 봤어요. 딸의 엄마가 인큐베이터에 있는 손녀를 고민하고 있는 모습이 나쁘다고 생각했는데, 나쁘다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위선이라는 것인지?


다희 : 이제 우리 세대는 무언가 단일한 설명으로 묶이기 어려운 세대라는 것은 분명하죠. 그래서 그렇다면 우리 세대는 마지막까지 무엇을 지켜야할꺼를 생각해보면 저는 다른 목소리나 다른 삶 등의 다양성을 열어두는 태도인 것 같아요. 서로 다른 각자의 이야기들을 들어줘야 하고요.(그러니 다들 진정 좀)


학곰 : 세대가 다르다고는 느꼈지만 그것이 중요하거나 꼭 필요한 의견은 아닌 것 같아요. 그런데 그냥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스타일의 책은 아니었어요. 쉽게 안 넘어가기도 하고 전체적으로 진한 느낌인데, 작가가 플롯을 빽빽하게 잘 짜서 사람들이 엇나가지 않게 잘 끌어갈 수 있는 소설이라고는 생각해요. 하지만 제가 좋아하는 소설은 중간중간 사람들이 엇나가고 빠지는, 그런 걸 좋아해서인 것 같아요.


해정 : '이런 내용 불편하지?'라는 마음으로 쓰인 글이라기보다, '우리는 이미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에 가깝다고 느꼈어요. 제목에 '폭력'이 들어간 이상 이 상황들에 대해, 이미 작가의 개인적인 판단이 담겨 있는 걸 수도 있겠지만, 결국 폭력의 ‘시대’라고 명명하는 것처럼 "우린 (이미) 이렇게 살고 있다"라고 생각해요. 게다가 그런 상황에서 뚜렷이 벗어나는 인물들도 없잖아요. 세대를 떠나 지금을 살고 있는 모두가 어렴풋하게 느끼는 부조리함, 가해자-됨. 그런 것들이 녹아난 소설 같아요.



2-4. 왜 여성만이 삶에 대해 고민해야 하는가?


다희 : 그런가 하면 소설 속 삶이 궁지로 몰렸을 때의 선택의 상황에서 남자들은 항상 없더라고요. 그리고 저는 개인적으로 결혼은 안할거야 라고 말 하면서도 내가 정말 결혼이라는 제도에서 완전히 빠져나올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동시에 들기도 하거든요. 또 왠지 결혼하고 나면 정말 소설 속의 모습처럼 살고 있을 것 같아요. 삶의 자잘한 고민들과 고독은 여성의 몫으로 돌아오고 그 때 늘 남성은 부재하는 소설 속 상황들을 어떻게 읽으셨는지 궁금해요.


이주 : 일단은 작가가 여자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요, 그리고 남자가 없는 건 그냥 실제로도 그랬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이제까지의 사회에서 남자들은 그냥 그런 고민을 할 필요도 없었어요. 반면에 여자들은 그런 고민들을 하도록 교육받아 왔잖아요. '전쟁' 키워드를 다루며 보았듯이 남자들에게는 그런 고민들이 금지되어 온 것 같아요.


학곰 : 다희랑 인터뷰 중 다희가 해줬던 이야기 중에 '천국에 사는 사람들은 지옥을 생각하지 않지만 지옥을 사는 사람들은 매일 천국을 상상한다'는 말을 인용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생활 밀착형 고민들은 이미 누군가가 해주는 거고 나는 그것을 넘어서 더 큰 것을 해야 해.' 라는 것이 남자들에게 이미 오랫동안 쌓여왔어요. 그래서 이런 소설이 나온 것이라고 생각하고, 남성 화자가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것 자체가 위선인 것 같아요.


박루저 : 예전에는 페미니즘에 대해 고민하고 나의 스탠스를 성찰하고, 그걸 밖으로도 표현해야한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바뀌었어요. 결국은 남성인 제가 '내가 생각하는 페미니즘이 무엇무엇이다.' 라고 말하는 것이 누군가의 페미니즘을 막는 것이라면, 그냥 닥치는 게 낫겠다라고 생각들더라구요. 왜곡된 페미니즘들에 대해 '저건 페미니즘으로 인정할 수없어!'는 아직 내가 할 말은 아닌거 같아요. 분명히 페미니즘 진영 안에서 누군가는 거기에 대한 성찰적 지적들이 있어야겠지만요. 그 표현이 극단적이고 동의할 수 없더라도, 남성으로서는 일단 이 현상 전체를 긍정하는 게 맞지 않을까합니다.


해정 : 여자가 '상냥한 폭력'의 상황에 더 많이 처해져있는 성별이라고 생각해요. 남성의 삶을 살아본 적이 없어서.. 이런 얘기는 늘 어렵지만, 흔히 남자들이 겪는 폭력은 '폭력이다'라고 바로 느껴지는 반면, 여성들이 겪는 폭력은 그게 폭력인 줄도 모른 채 이미 겪고 있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너무나 당연한 것들이어서 미처 폭력이라고 느끼지 못하는 그런 것들요. 같은 내용인데 남자가 주인공이었다면 조금 갸우뚱 했을 거 같긴 해요.


동석 : 저도 동의해요. 남자가 등장해서 고민을 했으면 스토리 자체가 더 이상했을 것 같아요. 제가 요새 느끼는 것 중에 하나는 회사 사람들이 대부분이 30, 40대이고 결혼을 하고 애가 있고 하다보니 아이를 어떻게 키우고 있고를 이야기하면서 '요새는 남자가 살기 힘든 세상이야' 라고 말하더라고요. 돈을 벌면서도 애를 돌보고 집안일도 해야해서 피곤하면서요. 어쨌거나 서로 느끼는 감각이 다른 상황에서 각자가 가장 잘 쓸 수 있는 주제로 소설을 쓴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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