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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슨한 빌리지 Feb 09. 2018

12-1. <한국이 싫어서> 뒷담화

한국이 싫으면 떠나려는 노오력을 해

* <느빌>의 오프라인 모임을 기록합니다.

* 발제문과 뒷담화는 전담 에디터 없이 돌아가며 작성합니다.

* 이 뒷담화는 <상냥한 폭력의 시대>, <립반윙클의 신부>에 이어 작성된 도시 키워드의 세번째 텍스트입니다.


*이번 모임엔 학곰, 박루저, 다희, 동석, 이주,  최생, 연연 님이 참여했습니다.

*본 녹취록은 이전 게시글인 '발제문'을 읽고 오시면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습니다.

*참고 링크 : '한국이 싫어서' 발제문

https://brunch.co.kr/@neuvilbooks/81



# 발제문에 대해서


박루저 : 급하게 써서 죄송해요. 오늘 모임에서 무슨 얘기가 나올지 알 것 같아요. 하지만 늘 이렇게 생각해요. 윤리적이고 교과서적인 답안 한 줄 남기는 감상은 별로에요. 저번에 다루었던 <상폭시>에서도, 그 폭력들에 거리를 두고 비판하며 책을 덮는 거보단 오히려 내 모습을 돌아보는 게 중요하다 생각했구요.

근데 이렇게 말하면 늘 사람들이 되묻더라구요. 그럼 무결점인 사람만이 지적할 수 있는가? 하면서요. 그러니까 당위적이고 윤리적인 태도를 쉽게 정하는 게 싫다는 태도였는데, 또 다시 윤리적인 프레임이 오는 거에요. 무튼 같은 얘기입니다. 사회의 모습을 한 발짝 떨어져서 뭐라고 하기 보다는 내가 부역하는 모습을 돌아보고 고치는 모습이 중요한 것 같아요.


학곰 : (훈계타임) 박루저가 가장 촉이 서있는 주제라고 생각했는데 발제문은 박루저의 생각이 잘 나오지 않은 것 같아요. 이전부터 쌓아왔던 통밥을 갈아넣었지만 진부해졌고 새로운 담론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박루저 : 관혼상제에 지친 주말이었습니다...(대구행)



학곰 : 장강명이라는 작가가 현실적인 말을 한다고 생각해요. 최소한 생각을 하고 살아라, 라는 느낌으로 읽었어요. 발제문은 장강명이 20대를 바라보는 지점으로 생각하고 쓴 것 같아요. 솔직함, 기만 없음을 나타나는 것이 기만이었던 것 같기도하고요. 박루저의 생각이 온전히 드러나지 않았던 것 같아요. 다른 이야기를 무얼 할 수 있을까 생각해봐야 될 것 같습니다.


다희 : 발제문 읽으면서 세대론 적인 것을 언급했다기 보다 '계나의 행동'에 대한 문제제기를 했다는 점이 좋았어요. 결국 계나의 선택도 성공 신화를 위해 노력하는 자기계발의 서사일 수밖에 없었다는 지적에 공감하고, 이를 더 자세히 보충하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이주 : 두번째 주제는 좋았어요. 책이 갓 출판됐을 때는 '탈조선'에 대한 것에 꽂혔는데 발제문에서 계나의 이중적인 면도 꼬집은 것이 좋았어요. 세 번째 주제에서는 더 나아갈 수 있을 줄 알았어요. 한편, 도시라는 주제로 책을 정한 것이기도 한데, 주제에 대한 연결점을 말해주었으면했어요.


동석 : 이주의 말처럼 도시와의 연결고리가 부족했어요. 그리고 이건 개인적인 거지만... 박루저에 대한 기대감이 있어요. 모임을 할때마다 사람들이 써온 발제문을 보면서 '이 사람은 이런 생각도 하는 구나'라는 것이었는데, 제가 <한국이 싫어서>를 읽으면서 가졌던 생각과 박루저의 발제문이 거의 비슷해서 아쉬웠어요.


최생 : 발제문 금방 잘 읽었는데 세번째 주제는 급진적이지 않았나싶어요. 결국 박루저의 입장은 이런 것(호주 워킹홀리데이)를 갈까 말까 자체를 고민하는 것조차도 기만적이라고 하는 것 인데, 너무 인간의 스펙트럼을 양 극단만 보는 건 아닌가요.




# 소설에 대해서 그리고 담론


연연 : 한국이 싫어서는 계몽소설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너희가 '헬조선'이라는 거야 라는게 한 편의 '과잉쇼'인 것 같은 느낌이 있었고 그런점을 지적한 것 같아요. 그런점에서 저는 세번째 주제의 논조를 이해해요. 계나 시점이지만 계나의 목소리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이에대해 더 이야기해봤으면 좋겠네요. 한국의 싫어서를 고른 맥락은 무엇이었나요?


박루저 : 상폭시도 그랬고 립반윙클도 그랬고, 우리가 스스로 저지를 수밖에 없는 폭력이나 없어진 희망을 얘기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니까 이제 답이 없어보이는 상황에서, 그 상황을 벗어나는 실질적인 고민을 다룬 소설을 보고싶었던 거죠. 누군가는 탈출구를 말할 것 같은데, <한국이 싫어서>에서 장강명이 '탈조선'을 제시한거죠. 그리고 그 '탈출'의 목적이, 어쩌면 매우 기만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니까 한국의 구조적인 문제가 싫어서가 아니라, 그냥 그 속의 내 위치가 싫어서 떠나는 게 대부분의 생각 아닌가 했던거에요. 그리고 이런 솔직한 담론은 많이 나오지 않았다고 생각하고요. 세대론 적인 접근은 아니었어요.



다희 : 책에서는 크게 행복에 대한 이야기를 두 가지로 나누어서 말하고 있죠. 미래를 위해 현재를 조금 포기하는 자산성행복과, 현재의 행복을 중요시하는 흐름성 행복으로요. 저는 계나가 말하는 흐름성 행복에 공감되어서 더 이입되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이 행복은 지난 텍스트였던 <상냥한 폭력의 시대>와는 반대편에 있는 다른 도시의 삶과 행복이라고 이해했어요.


박루저 : 계나가 한국을 싫어하는 이유는 우리 모습이랑 많이 닮아 있잖아요. 그러니까 학벌주의 싫어!라고 말하는 건 사실 진짜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서울대에 못가서인 경우가 많죠. 베스트셀러도 똑같아요. 스스로 글쓴다는 부심있는 사람들이 너무 쉽게 베스트셀러 욕하고 조롱하는데, 사실 자기들 책이 베스트셀러되면 누구보다도 좋아할꺼면서(웃음). 이런 기만? 혹은 위선을 잘 보여주는 소설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니까 상폭시가 그런걸 '폭력'이라고 너무 쉽게 지적했다면, <한국이 싫어서>는 그걸 폭력이라고 지적하면서사실은 내가 저지르는, 그 위선을 잘 담아냈다고 할까요.


 이주 : 과연 내가 기득권이 되었을 때는 한국이 싫어서라고 말할 수 있을까? 어떤 맥락인지는 알겠어요. 계나도 그런 마음이 있긴 했지만 그 울타리를 느껴서 호주로 갔떤 것으로 이해가 되요. 한국이 싫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스펙트럼은 매우 넓을 것인데 그 관점으로만 보면 다양한 입장을 다루지 못할 것 같아요.


최생 : 불합리한 현실을 보면서 자기기만 정도는 있어도 되지 않나? 라고 생각했어요. 평범한 사람을 극복할 수 없는 일들을 해낸거잖아요. 자기기만이 생기더라도 계나가 호주에 가서 이룬 것, 그리고 그녀의 심리에 대해 작은 공감 정도는 가능하지 않을까요. 장강명을 비판하면 따라오는 '외부인의 피상적인 시점'이란 생각은 들지 않았어요. 오히려 이 사람은 관찰 열심히 하는구나 라고 생각했죠.


연연 : 그 말을 들으니 다큐멘터리가 생각났어요. 사람의 인생이 5부작으로 기승전결이 되지는 않잖아요. 이주노동자와 같은 전형적인 이미지로 박혀지는 것이 있는데 소설이나 다큐에 담긴 것이 전부는 아니잖아요. 하지만 <한국이 싫어서>에는 장강명이 자신이 제일 잘 하는 걸 쓴 느낌이 들어요. 자기 스탠스가 있기 때문에 이렇게 썼지 않았을까요.


다희 : 맞아요. 저도 <82년생 김지영>을 읽을 때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어요. 인물에게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하면서 보편적인 사건들을 응집해 놓은 형식이라는 것이 비슷하죠. <한국이 싫어서>는 헬조선을 외치는 20대가 겪을 법한 이야기를 모아 놓은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공감되는 부분도 많았지만, 오히려 계나라는 인물의 실존성이 느껴지진 않기도 했어요. 하지만 이렇게 한 인물의 일대기를 객관적으로 그려내는 것에는 분명히 독자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주기도 한다고 생각해요.


박루저 : 장강명은 자신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다고 장강명의 스탠스에 그냥 동의해버리고 마는 건 지양해야 되요. 작가는 작가 나름대로의 입장을 말하고, 우리는 또 우리 나름대로 깔 건 까야하는 거죠. 작가처럼 제3자 입장이 아닌, 당사자로서의 목소리가 필요하다 생각해요.



#우리들의 한국이 싫은 이유


연연 : 저는 <한국이 싫어서>까 우리세대의 이야기같아요. 우리가 읽었을 때 생각하는 것이 다 다를텐데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미디어의 영향이죠. 헬조선을 감각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렇게 읽지 않을 것 같아요. 미디어가 소설로 추천하고 언급하기 때문에. (셀링 포인트) 이걸 겪어내는 사람들의 공론의 장이 필요한데 장강명이 이걸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최생 : 기정세대가 우리를 규정하려고 하죠. 문학은 어쨌든 개별적인 역할을 해야 하는데, 규정을 하기 위해 문학을 쓰는 것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요. 책을 읽고나서 드는 생각은 독자에게 맡기는 것이죠. 쓸때는 그냥 내 얘기를 쓰는 거라고 생각해요. 쓰고나서 정체성이 보이는 것이 아닐까요. 어떻게 읽히느냐는 나중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이주 : 책을 읽으면서 13년~15년 책이 출판 된 그 당시의 느낌과 또 달랐어요. 탈조선이라는 말이 유행했었죠. 흙수저, 금수저 담론이 있었다면 이미 지금은 한 차원 지난 느낌. 이미 내재화를 하고 '탈조선'을 한다기 보다 자산성행복에 순응을 해버린. 욜로와 섞인 자조적인 삶이 지금은 더 대세가 아니었나요. 이 소설도 한 물 갔구나, 라고 생각했어요.


다희 : 공감가는 부분도 많았지만, 어느 부분에서는 우리보다는 반세대정도 위(30대 초~30대 중)의 선배들의 이야기를 듣는 기분이었어요. 그리고 언젠가 책 정보를 찾아보았을 때, <한국이 싫어서>는 작가의 아내분께 영감을 받은 소설이라고 읽었었거든요. 그래서 저는 소설에 나오는 기자 지망생 '지명'이 장강명 작가인 것 같다고 상상하면서 읽었고, 더 재밌었어요.


이주 : 갑자기 재밌어 지는데요?


다들 : 리얼리티네...


다희 : 한국 사회는 계나도 피해자면서 가해자인 답답한 구조인거죠. 그래서 우리가 더 나아가서 무얼 할 수 있을까? 윤리적인 이야기가 나오는 것 같아요. 하지만 그러한 고민들이 무의미하다고는 할 수 없지 않을까요?


연연 : 고백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윤리적인 지점이 있을 때 고백이 의미있다고 생각. (어 얘도 그랬네? 그럼 나도 괜찮겠네.. 라는 것이 문제) 내가 잘못했다고 하는 지점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제 잘못됐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에 대해 지쳤거든요.



학곰 : 당당히 고백을 하는 사람들은 잃을 게 없는 사람들이지 않나요. 여기서 고백의 기준은 '실명 공개'에요. 트위터상에서 익명이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자기의 실명'을 공개하면 직업을 잃으니까.


연연 : 고백을 하는 사람은 항상 잃을 것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 때문에 잃을 것이 많은 기득권 등은 입을 열지 않을 것이고, 그들의 입을 어떻게 열게 할 수 있을 지 모르겠어요. 고백을 많이 하자는 흐름은 이해하지만 실질적으로 어떻게 될지는 잘 모르겠어요..


학곰 :  도덕성은 없는 자의 마지막 무기가 아닐까요?


연연 : 그걸 내려놓는게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윤리가 고귀하고 돈이 속물적으로 비춰지잖아요.




#나는 한국을 떠날 것인가?


동석 : 토론을 듣다보니 생각난 것인데. 지금 대화가 책과는 조금 거리가 먼 쪽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 같아요. 우리의 2차 창작물을 보는 사람들은 <한국이 싫어서>를 읽었거나 읽고싶어 하는 사람들일 텐데, 책과 관련된 이야기이긴 하지만 조금 멀리 온 느낌이 들어요. 음.. 저는 그래서 여러분들에게 질문을 하고 싶어요.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지금 이런 '헬조선'의 상황에서 각자 어떻게 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세요? 그리고 이 상황을 타계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박루저 : 저는 계나가 말한 자산성 흐름은 버리고 떠난다는 것 자체가 이미 불가능하다 생각해요. 수정자본주의의 질서밖에 모르고 살아온 세대잖아요. 그러니까 계나의 호주유학도 결국 하나의 성공신화처럼만 제시되는 게 아닐까요.


 이주 : 탈조선에 대한 생각은 저 한국안에서 뭔가 기득권이 만들어놓은 방식이에요. 기득권이 생각하는 행복이 아닌 것을 하면서 제가 행복하게 사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해요.


다희 : 이주와 비슷해요. 누군가가 보기에 저는 커리어가 보장된 길을 걷는 것 처럼 보이지는 않을거에요. 저는 제가 하기에 마음이 편하고, 원하는 직무의 일을 하고 있다는 것으로 만족해요. 이렇게 무언가가 정해진 길이 아니라, 내가 만들어 놓은 '틈'에서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요즘 많이 하는 것 같아요.


동석 : 저는 조금 다르다. 자신이 삶을 살며 행복한 것이 꼭 일일 수는 없죠. 저의 경우는 어느정도 일을 통해 자아실현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지금 다니는 회사도 그런 이유가 있기 때문에 제가 하고 있는 일이나 장차 할 일이 기대된다. 사회에 대한 기여도 하고싶고... 그러나 아직은 실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당분간은 계속 노력해야 하죠. 그리고 음... 지금의 저는 한국에서 이룬것들이 있기 때문에 계나처럼 한국을 떠날 수는 없어요.


연연 : 이주님처럼 계나도 어느정도 기득권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강원도에서 어릴 적 살았어요. 항구쪽에서 학교를 다녓는데 1/3이 학교에 오지 않았어요. 회뜨는 것을 배우는 것이 더 자기 삶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고 했어요. 그쪽의 아이들은 그런 꿈(좋은 대학 / 좋은 직장) 자체를 가질수가 없었죠. 그래서 저는 제 안에 내재해 있는 관습이 있을 것이고 죄의식이 있다. 이걸 어떻게 해소할 것인지 고민하고 있어요. 생존하는 사람들은 부역하는 사람들. 글쓰기는 일을 하면서 하는 것. 일을 해나갈때 역시 부역을 하고 있지 않을까요. 저의 발언을 다른사람에게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학곰 : 저는 속물로 살기로 했어요. 빅-속물-맨. 한편 저는 셀럽이 되고 싶기도 해요. 생계를 유지할만한 안전망을 깔아놓고 하고싶은 것을 하며 살고 싶고, 제 작업물도 내고 싶어요. <느빌>의 2년뒤, 3년뒤에는 구성원들이 저마다 셀럽이 되어서 힘이 있는 모임이 되면 좋겠어요. 그때가 되면 우리가 낼 수 있는 목소리에 힘이 실릴테니까요.


최생 : 딱히 해외로 가는 걸 좋아하진 않지만, 돈을 모아서 보르도를 가고 싶어요. 사회만이 싫어서 떠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개인적이고 내밀한 이유로 떠나는 사람도 많지 않을까요. 떠나고 싶습니다.


박루저 : 저도 제가 속물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돈 많이 버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위선은 또 되게 싫어하구요. 그러니까, 일상에서 나름대로의 비타협적인 면은 잃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제가 학벌주의 욕할 땐, 진짜 순수하게 혐오하는 방식이에요. 내 친척이 서울대 간 것을 결코 자랑스러워하지 않고, 내 대학에 맞춰서 미래를 결정하지 않는거죠. 그러니까 학벌 자체에 아무런 가치를 두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삼성도 똑같습니다. 뉴스보면서는 '삼성 공화국' 운운하며 쉽게 욕하면서, 스스로는 삼성을 가고싶어하고 주위에 삼성 간 사람을 부러워하거나 가족이 삼성이라는 건 또 자랑스러워하는 이런 게 싫다는 거죠. 그냥 순수하게 혐오해야 되요(웃음).


연연 : 자신이 하고싶은 것을 위해서는 아무리 생각해도 1인브랜드가 되는 수밖에 없는 것 같기도 해요.



보르도의 모습


결국 모두 지금 현재는 한국을 떠나지 않기로 했다.

최생은 보르도로 갈지도 모른다. 와인농장을 운영하는 그를 상상하며 오늘 녹취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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