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하는 퇴사지만 잘 부탁드려요. - 퇴사 가이드 1판
2024.12
사실 어디에도 완전한 '자유'는 없다. 작은 속박에서 더 큰 속박으로 옮겨갈 뿐이다.
하지만 목을 죄는 사슬보단 커다란 울타리가 낫지 않을까
하지만 나는 조금 극단적인 방법을 택했다.
그만두고, 뛰어든다.
어찌 보면 너무 무모한 방식이고, 대책 없으며, 멋모르는 젊은 날의 패기스럽다.
왜 이런 방식을 택했냐는 질문에 나는 위태로웠다고 말하고 싶다.
평범하게 이직처도 구하고, 돈도 충분히 모으고, 안정적으로 준비를 하며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나갈 수 있는 상태는 아니었다고 본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뭐 어때
어차피 차근차근 준비를 해도 분명히 우리는 계속 실패할 것이며, 그렇게 준비하다간 일흔은 넘겨야 뭔가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니 어떤 방법이든 당장 하기로 마음먹었다. 새로운 해, 3년의 경력, 지금보다 적기가 있을까 싶다.
내년까지 있으면 이것저것 더 받을 수 있다고 하지만, 나는 내가 받을 그 자잘한 보상들보다 내 한두 달의 시간이 더 소중하다고 생각했다. 또 그렇게 만들고 싶었다. 원래 가치란 매기는 사람이 정하는 법 아닌가. 내가 가야 할 길은 머니까 실패도 얼른 시작하러 가야 한다.
도전을 위해서는 일단 퇴사부터 해야 한다.
필자는 앞서 미리 퇴사를 계획했기 때문에 언제든 미리 이야기할 수 있었다.
주변 지인들의 조언으로는 보통 한 달쯤 전에는, 대신 그보다 더 일찍 이야기하면 오히려 불편하기만 하니 조심하라는 이야기들을 들었다. 하지만 필자는 뭔가 남 탓을 듣고 싶지 않아 인수인계를 최대한으로 정리하고 떠나고 싶었고, 회사에 정든 고마운 사람들과도 충분히 정리하고 떠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거의 2달 정도의 여유를 두고 팀장님과의 면담 신청을 통해 퇴사 의사를 전달했고, 내부적으로 정리가 되고 나서 사람들에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과거에 많은 분들이 퇴사를 했지만, 이야기 하나 없이 퇴사 소식을 알게 되는 건 나에게는 조금 슬픈 일이었다. 상대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는 적어도 수고했다고 고마웠다고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알게 모르게 떠나가버리는 사람들에게는 나에게 있어 인사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은 기분이랄까,, 뭐 당연한 일이겠지만 말이다.
한 명씩 DM으로 퇴사 소식을 전하고, 가기 전에 식사하자는 말을 해주신 분들은 TODO에까지 적어가며 밥을 먹었다. 물론 이 또한 모두 완벽하게 하지는 못했지만, 이 과정에서 새롭게 친해지거나 더 두터워진 관계들도 많이 생겼다.
사실 사람들의 인연을 나는 별로 믿지 않는다. 거리가 멀어지고, 공감하는 영역이 적어질수록 어떤 관계든 희미해져 간다는 느낌을 느껴서일까. 그래서 사실 믿진 않지만 최소한의 노력은 해보고 싶었고, 그렇게 점점 막이 내려갔다.
담당자들에게 열심히 설명해 주더라도 나는 그런 기억들은 다 왜곡, 유실되는 법이고, 만약 담당자가 또 퇴사할 경우에는 더 많이 기존 인계 내용이 유실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최대한 많은 내용들을 문서로 기록하려 했고, 인수인계 문서의 포맷도 새로 만들어 가이드라인 문서를 쓰고, 그에 맞추어 여러 담당 업무와 프로젝트들을 정리해 기록했다.
차근차근 한 명씩 업무들을 정리해 전달할 때마다 점점 퇴사하는 실감이 들기 시작했다. 퇴사하는 날까지도 부족한 내용이 있는 것 같아 보충했고, 언제나 그렇듯 만들고 나면 항상 조금씩이 아쉬운 것 같다.
앞으로 다시 접근할 수 없는 내용들이기 때문에, 회사 기술과 밀접한 내용들을 제외하고 내가 수행한 업무들에 대한 내용들을 잘 정리해 가야 한다. 그간 바쁘단 핑계로 미리 정리를 별로 해놓지 않은 탓에 원하는 만큼까지는 정리를 하지 못했고, 어느 정도의 내용들만 대략 정리하게 되었다. 다른 분들은 꼭 '자신이 수행한 업무들'은 미리미리 정리해두길 바란다.
퇴사를 확정하고 준비하고 정리하다 보니 정말 빠르게 시간이 흘러갔다.
몇몇의 자동화 코드들은 다 정리해서 올렸고, 추가적인 교육 자료나 자동화 툴들도 더 작성해 공유하고 싶었는데, 그럴 시간까지는 아쉽게도 없었다.
그리고 퇴사 전 날인 목요일 점심에 나 나름의 마지막 인사를 사내 메신저 잡담 채널에 게시했다.
솔직하게 안 좋은 마음들도 있겠지만 모두 각자의 입장과 의견이 있었을 뿐이니, 나의 생각들이나 감사 인사들을 전하고, 익명 소통 채널인 개인 텔레그램 봇 정보와 업무 평가 설문지도 만들어 공유, 요청드렸다. 사실 이런 설문지는 올려봤자 할 사람은 손에 꼽는 거 알지만 뭐 그래도 안 하는 것보단 좋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퇴사 당일인 24.12.27 (금) 이 마침내 찾아왔고, 데스크의 짐들도 정리하고, 여러 가지 물품들은 가지고 싶어 하는 분들에게 기부도 하고, 섹션별로 마지막 인사들을 건네었다.
그리곤 마지막으로 짐을 챙겨 나오는데, 엘리베이터 앞에서 사람들에게 마중을 받으며 마지막 인사를 했다. 기분이 굉장히 묘한 기분이었다.
'가는 사람들의 기분은 이런 거였구나'
'이렇게 가는 거구나'
'이제 이렇게 마무리구나'
미운 것들도 많지만 좋아하는 사람들도 너무 많았기에, 그래서 쉽게 떠나지 못했고 그래서 내 발로 떠나는 게 또 쉽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앞으로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려 한다. 그렇게 좋은 사람들이 많고, 또 다들 힘들어한다.
그래서 나는 궁극적으로는 보다 우리들이 더 행복해질 수 있는 시스템들과 서비스들이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앞으로 내가 해야 하는, 해내고 싶은 과제라고 생각한다.
자 이제 퇴사는 끝이 났다. 이제 본격적으로 다음 스테이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