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아버지를 보내드리며

투박하지만 순수하시고, 평생 남에게 싫은 소리 한번 못하시고,

성실히 묵묵히 일만 하시다 돌아가신분,

고생한만큼 보답으로 돌아오는 농사일을 좋아하셨던 분,

늘 손자 손주들을 만나면 밥 많이 먹어라, 공부 열심히 해라를 한번도 빼먹지 않고 말씀하셨던 분.


여느 장례식장과 다를바 없이 소란스러웠다.

장례식장은 이런 소란스러움이 어울린다. 제일 먼저 외할머니를 찾았는데 다행히 외할머니는 너무 온화하신 표정으로 계셨다. 그 다음은 엄마, 엄마는 손님맞이에 분주했다.

비로소 영정 사진 속 익숙한 분을 보니 외할아버지의 죽음이 실감났다.

상주인 사촌 동생과 외삼촌에게 인사를 드리고 나왔다.


때때로 손님중에 외할아버지와 비슷한 체구, 비슷한 체크남방과 모자, 외투를 쓰신분이 오시면 놀래곤했다.

그렇게 2일차를 보내고 새벽 6시 30분 발인예배를 드렸다.

예배만 드리면 왜 이렇게 눈물이 나는 걸까.

예배때 부르는 찬송은 지금 나의 삶을 비춰 가사 하나하나가 가슴으로 와닿는 것일까.



발인예배를 드리고 운구요원들이 할아버지 관을 운구차에 실었다.

화장터로 가는 새벽, 안개속에 해가 너무 선명히 보였다.

한치의 모남도 없이 동그랗고 밝게 빛나는......

엄마가 "우리 아빠 천성가는 길 우리더러 보라고 저렇게 해가 밝게 빛나는 구나" 라고 말했다.

천국의 그 영광이 이 땅위에 내려온 것 같이 말이다.



두달 전 뵌 할아버지는 힘이 든다고 빨리 죽고 싶다고 했다.

숨 쉬는 것도 힘이 든다고, 할아버지 손을 잡아드렸는데 차가워서 깜짝 놀랐다.

성경에 보면 다윗이 죽을때가 되니 몸을 데펴도 따뜻해지지 않는다는 표현이 나왔는데 정말 그랬다.

남편이 나이들수록 운동을 통해 몸을 스스로 데펴줘야 된다는 말을 했는데,

몸의 신진대사가 원활하지 않은 그 나이가 되면

이제는 적정체온도 유지하지 못할정도로 고장이 나는 구나.


화장터로 가는 버스안에서 할아버지에 대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우리 할아버지. 1932년생. 마을에서도 할아버지가 가장 많은 나이라고 한다.

평생 쉬신적 없이 일만하다가 가신, 선천적으로 귀가 어두워 늘 보청기를 끼고 계셨다.

그래서 할아버지께 말할때는 늘 또박또박 큰 소리로 가까이에서 말해야했다.

생각해보니 할아버지와 대화를 주고 받은 적이 없다.

할아버지가 우리 이야기를 들으려면 외할머니가 할아버지가 잘 알아듣는 용어로 대신 해석을 해줘야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말을 전해드리면 할아버지는 늘 "잘 혔다. 고맙다" 는 통상적인 말씀만 하셨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불쌍한 우리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세상은 얼마나 어둡고 외로웠을까.


우리 할아버지는 손재주가 참 좋으셨다. 내가 초등학교 5학년때 학기초에 청소도구를 가정에서 사와서 내야되는게 있었다. 엄마는 집에있는 할아버지가 만드신 빗자루를 학교에 내라고 시켰다.

화려한 꽃무늬의 그 빗자루가 나는 너무 촌스러워서 내가 냈다는걸 들키지 않기 위해

얼론 몰래 가져다놨다. 청소시간에 남자애들은 그 빗자루를 차지하기 위해 앞다투워 나갔다.

그 빗자루가 그렇게 바닥이 잘 쓸린다나.

할아버지는 우리가 돈 주고 사는 걸 손으로 만드셨다. 나는 할아버지의 손재주가 신기할따름이었다.

젊은시절에 경운기를 돌리다가 손을 베어 오른쪽 엄지손가락이 없으신데도

그렇게 아홉 손가락으로 열손가락을 가진 우리보다 재주가 좋으셨다. 할아버지. 우리 할아버지.


죽으면서 그 사람이 남긴 모습이 참 그사람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할아버지의 삶은 내게 많은 귀감이 되었다.

숨을 놓고 싶은 많은 순간들에도 온전히 마지막 한 숨까지 감내하신 할아버지가 존경스러웠다.

어떨때는 신이 참 불공평하게 느껴지는게 정작 필요한 사람에게는 그 숨을 허락하지 않으시고,

불필요한 사람에게는 숨을 허락하신다. 인생은 너무 괴로워서 신이 주신 그 숨을 놓아버리고 싶을때가 참 많은데 그 숨을 마지막까지 감당하신 할아버지를 진심으로 존경한다.


죽음처럼 깔끔한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살면서 무엇일 이땅에 남기고 있는가. 직장에서 조금도 손해를 보기 싫어 하는 행동들.

이기적인 말과 행동들. 다른사람에게 주는 상처들.

나는 참 지저분한 것들만 이 세상에 남기고 있는것 같았다.

일본의 아키타 마치오는 다른사람에게 기분 좋은 풍경이 되기 위해서 노력한다는 말을 저서 <기분의 디자인>에서 말한 적이 있다. 나는 다른사람에게 어둠의 아우라만 주고 있는것 같다. 특히 회사에서.

(-)가 될 바에야 아예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는 (0) 상태가 낫지 않을까.

다른사람에게 어둠의 아우라가 아닌 무엇이라도 보템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


할아버지가 화장터로 들어가셨다. 태워질 육신을 보니, 나의 본질은 몸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영혼육 중에 태워없어질 육에 가장 많은 시간과 에너지, 물질을 쏟고 있다.

지금의 SNS는 육을 자랑하라고 부추기기도 하고 하지만 육은 결국 태워없어질 것이라는 걸

영, 혼, 육 중에 육에 가장 많은 투자를 하고 있었던 내 자신을 회개하며, 매순간 매일의 삶에 영원 이라는 관점에서 조금은 나은 선택을 하길 기도해본다.


화장을 마치니 할아버지의 육신은 조그만 함에 담기는 가루가 됐다.

선산에 가셔서 할아버지 뼛가루를 묻어드리기 전에 다시 예배를 드렸다.

찬송가 493장 하늘 가는 밝은 길이 찬양을 불렀다.


하는 가는 밝은 길이 내 앞에 있으니

슬펀일을 많이 보고 늘 고생하여도

하늘 영광 밝음이 어둔 그늘해치니

예수 공로 의지하여 항상 빛을 보도다


내가 걱정하는 일이 세상에 많은 중

속에 근심 밖에 걱정 늘 시험하여도

예수 보배로운피 모든것을 이기니

예수 공로 의지하여 항상 이기리로다


내가 천성 바라보고 가까이 왔으니

아버지의 영광 집에 가 쉴맘 있도다

나는 부족하여도 영접하실터이니

영광나라계신 임금 우리 구주 예수라.


지금 내 삶의 괴로움이, 천국 소망으로 다 씻겨져 내려가는 찬양이었다.

할아버지 취토를 하며 천국에 계신 할아버지는 승리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할아버지께

"할아버지 승리하신것 축하드립니다.

이 땅에서 모든 괴로움 감내하시고 우리들에게 성실의 본을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할아버지가 보여주신 교훈 마음에 새기고 살겠습니다." 라고 말했다.


모든 사람이 취토를 하고 묘비를 세웠다.

산에서 내려가려고 하는데 다같이 가족사진을 찍자고 제안했다.

할아버지의 영광스런 천국잔치를 축하하며 다같이 찰칵 찍었다.


취토.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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