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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출근길 성장 에세이 Oct 07. 2020

소개팅보다 더 설레었던 그녀와의 첫 만남

2014년 1월 1일 우리의 인연은 시작됐다

최대한 얌전하게, 얌전하게...... 를 되뇌며 집을 나섰다. 화장을 너무 찐하게 했던지 그날따라 유독 얼굴은 하얗게 보였다. 회사 후배가 추천해준 원피스를 입고, 적당한 굽이 있지만 또각또각 소리가 크지 않은 구두를 신고 그렇게 지하철을 타고 몇 발자국 걸어 40분 남짓 5호선 장한평역에 도착했다.


먼저 기다리고 있던 오빠는

“어머님께서 아직 준비가 덜 된 것 같아. 잠깐 카페에 들러서 시간 보내다 오자”라며 잔뜩 긴장한 나를 이끌어주었고 우리는 인근 스타벅스에서 따뜻한 차를 마시며 시간을 보냈다.


카톡을 확인하던 오빠는

“가자”


내 손을 이끌었고 그렇게 그녀의 집에 당도했다.


문을 처음으로 열었을 때 놀란 그녀의 토끼눈과 호기심 가득한 눈빛을 기억한다.

그도 그럴게 10년 만에 아들이 처음으로 사귄 여자고 게다가 결혼하겠다며 집으로 데려오겠다고 하니 어느 부모라도 궁금할 수밖에


환하게 웃는 미소가 필살기인 나는 최대한 얌전하고 웃으려 했다. 웃는 얼굴이 침 뱉을 리 없지.


잡채, 불고기, 동그랑땡, 뭇국, 각종 김치와 나물, 황태구이 그렇게 9첩 반상을 융숭히 대접받고, 내가 좋아하는 페퍼민트 티까지 마셨다.

사실 긴장해서 무슨 정신으로 밥을 먹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이리저리 훑어보는 그녀의 눈길과 신기해하는 아주버님의 표정 속에 나는 최대한 음식 먹기만 집중하려 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엄마한테 첫인사 때는 뭘 해야 돼? 이렇게 물어볼걸.

그 때는 나란 사람만을 무대 위에 올려놓고 심사받는 시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나도 그녀와 그녀의 집안, 가정 분위기를 재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녀는 특유의 솔직함과 담백함으로

아들이 여자를 데려온다고 했을 때 자신이 얼마마 당황했는지...

대체 어떤 여자인지 얼마나 궁금해했는지.... 릉 털어놓았도.

그리고 나에 대한 신상파악에 들어갔다.


“아버님은 선생님이시고요 어머님은 피아노 학원 교사였다가 지금은 집에서 쉬고 계시고요”


일단 부모님이 교사라고 하면 +1 점이 된다.


“지금 저는 홍보대행사에서 언론홍보 일을 하고 있습니다.”


거드는 오빠

“샘이네 회사 엄청 커요. 삼성전자, LG전자 이런데 샘이네 회사에서 홍보해주는 거예요”


“솔직히 우리 정훈이가 아직 학생이니 결혼을 한다고 했을 때 당황 그래서 연애하다가 도금 늦게 내년쯤 경혼 물어봤다”


그녀의 말에 어색했던 분위기가 싸늘함으로 바뀌었다. 저 말은 내가 맘에 들지 않는다는 건가? 그녀의 말은 분명 학업 때문에 결혼을 늦게 하는 걸 이야기했지만 나의 귀에는 드라마처럼 결혼할 여자가 맘에 들지 않는 핑계로 들리는 건 왜일까. 나는 비뚤어진 사람은 아닌 거 같은데? 왜 이리 그녀들의 말은 비뚤어지게 들릴까. 오빠는 내 표정을 살피더니 자기가 나설 차례임을 알아차리고


어머니 그 이야기는 이미 끝났잖아요. 결혼 시기는 샘이네에 맞추기로”


하고 그녀의 말을 일축했다.


순간 어색함에 나는 페퍼민트 티 한 모금을 마셨고 티백이 오랫동안 우러나서 그런지 차가 썼다.


그녀는 못내 아들의 쌀쌀함에 서운함을 감출 슈 없었다. 그리고 이내 화재를 돌려 중년 아주머니들의 푸근함으로 다시 나를 대했다.


“잡채를 잘 먹는 거 같던데 좀 싸줄까?”


잡채...... 바로 볶지 않으면 퉁퉁 불고, 어차피 냉장고 안으로 들어가면 음식물쓰레기가 돼 나올 텐데


네 싸주세요”


위생팩에 참 많이도 담아주셨다. 이미 시간이 지난 잡차는 불어있었지만, 그렇게 첫 만남은 일단락됐다.


오빠가 차로 바래다주는 길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의자만 바짝 뒤로 당기고 잠을 자려고 노력했다.

뭔가 오빠한테 할 말은 많았지만 피곤한 면접을 끝낸 직후라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분명 환영받았지만 완전히 환영받지 못한 기분을 지울 수 없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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