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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출근길 성장 에세이 Nov 26. 2021

내가 직접 요리를 하는 이유

밀키트, HMR의 유혹속에서도


오늘 전복솥밥을 만들었다.

(만들었다? 요리했다? 차렸다? 뭐가 맞을까……)


어머님께 오늘 저녁은 내가 차리겠다고 호언장담했다.

뱉은 말은 나를 옥죄는 옥쇄가 돼 3시간 내리 요리를 하게 만들었다.

막상, 저녁밥상 앞에서는 힘들어서 숟가락 들어올릴 힘도 없더라.



오늘의 메뉴는 SNS에 직접 차린 밥, 정성스럽게 지은 밥의 대명사로 꼽히는 "전복솥밥"이다.

전복귀신인 나는 전복을 손질하는데 누구보다 자신이 있었다.

사실 전복요리라는 것은 전복손질하는데서 50%의 에너지를 쓰는것을 잘 알고 있기에.

처음 도전하는 메뉴이지만 그리 어려워 보이지는 않았다.


전복 작은거 10개, 전복 중미 4개 총 14개를 쓱싹 솔로 문질러서

내장을 발라냈다.

내장은 곱게 다져 내장물을 만들었다. 전복 10개는 가늘게 채썰었고, 4개는 통으로 살짝 칼집을 냈다.

그리고 버터에 내장을 볶았고 거기에 불린 쌀도 넣어 함께 볶았다.

다른 팬에는 채친 전복살을 버터에 볶고 있었다. 참, 다진마늘도 넣고

그리고 볶은 쌀에 육수를 부어 밥을 짓고, 밥이 다될쯤 뚜껑을 열어 전복살을 올려준다.

밥이 끓는 동안 미나리를 손질해서, 쪽파 대신 밥 위에 고명으로 얹어줬다.

미나리와 함께 달래도 손질해서 송송송 알맞은 크기로 썰어서 달래장도 만들었다.

오후 3시 30분부터 시작한 요리가 6시가 다되어서야 끝났다.


이상하다. 분명 나의 생각으로는 1시간이면 끝났을 요리인데,

180분을 서서 요리만 했으니 지쳤을 터,

이후에는 "맛있다", "처음치고 잘했다"하는 가족의 칭찬도 귀에 들어오지 않고

멍~~~~ 하니 배터리 충전모드로 들어가 있었다.

과연 이 180분의 나의 시간과 노동과 에너지를 들인 작품이 30분도 안돼 저녁으로 뚝딱 사라졌다.

오늘 오후 나는 뭘 한거지? 저녁을 마감하는 자리에서 현타가 왔다.


내가 쓴 시간과 에너지, 재료비 등을 돈으로 환산해 보면

냉동 전복 14개 20,000원

달래 70g 1,560원

미나리(정확히 모르겠음) 1,590원

나의 임금 (2.5시간) 21,800원

기타 양념 등 부대비용 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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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46,950원


인터넷에서 파는 전복솥밥 밀키트(2-3인용) 가격이 10,210원이다.

2개, 총 4인분을 산다고 하면 20,420원이다.

심지어 인터넷으로 산 밀키트가 더 경제적인 셈.

마지막으로 밀키트에는 전복이 많이 안들어가 있었을거야...... 위안을 삼는다.


동네 마트만 가도 즉석해서 조리해 먹을 수 있는 밀키트가 많다. 손질된 재료들도 많고,

그리고 밀키트는 웬만해서는 먹을만 하다 (맛있는 건 아니지만) 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나는 왜 직접 요리를 하는 걸까. 재료비도 비슷하고 (심지어 나의 노동비까지 더하면) 2배나 더 비싼 비경제적인 '요리'라는 활동은 나는 왜 하고 있는 것일까.


'그래 밀키트는 조미료가 많이 들어있어서 건강에 안좋을거야'

라고 위안을 삼지만 사실 내 요리에도 조미료가 아예 안들어가는 건 아니고,

'내가 만든 요리가 밀키트보다 건강에 더 좋다'는 입증된 사실이 아니다.

아무래도 밖에서 파는 음식보다는 직접 만든게 좋겠지...... 하는 근거없는 믿음뿐이다.

(심지어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는 자기 아이가 마트 HMR 새우볶음밥을 더 좋아한다며 그게 어디가 몸에 안좋냐며 기뻐하는 지인도 있었다.)


마트에 가니 비비고에서 생선구이 라인업을 출시했다.

그 냄새나는, 그 손질하기 까다로운, 뒷처리도 힘든...... 하지만 건강을 생각해서 최소 일주일에 한번쯤은 먹으려고 노력하는 그 생선구이님 이시다.

(우리집은 가스렌지에 환풍기가 없어서 생선을 굽고 나면 그날 저녁은 온 집안에 생선비린내가 진동한다.

이 비린내는 최소 30분 정도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켜야지만 빠진다. 만약 생선구이 밀키트와 집에서 직접 생선구이를 만드는 비용을 비교하고자 한다면 이 생선비린내 제거 비용 또는, 생선비린내 때문에 괴로워하는 비용도 꼭 항목으로 넣어야 한다.)  

이제 HMR 식품에 성역은 없어보인다. 식품회사들은 집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음식을 HMR로 출시하려고 할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HMR을 사지 않고 왜 직접 요리하기에 나서는지 모를일이다.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 처럼 "집밥은 절대 고수하겠소 우리집을 HMR이라는 신진문물로 부터 지켜내겠소"하는 마음일까?

아니면 (나의 노동비용은 생각하지 않고) HMR은 비싸니 아무래도 가공의 과정을 덜 거친 날것의 재료들을 조리하는게 더 경제적이다는 판단에서 일까 (이건 앞에서도 입증됐듯 거짓으로 판명났음을 알려드립니다.)

그래도 파는 것보단 건강하겠지 하는 믿음일까.


무엇때문에 내가 HMR 사기를 꺼려하는지 모르겠다.


오늘 전복솥밥을 먹은 우리 여섯살 아들이

"엄마 밥이 정말 맛있다"라고 말했다.

그 말인 즉, 밥 먹을때 자기가 보고 싶은 텔레비전 채널을 틀어달라는 말이었다.


기분이 참 좋았다.

아이가 내가 한 밥을 맛있다고 했다. 그것도 처음 시도한 요리인데.

답을 찾은것 같다.


뭔가 먹였다는 마음.

그래도 내가 손수 지은, 건강하다고 생각하는 무언가를,

소중한 사람한테 먹였다는 그 마음, 그 성취감에 나는 오늘도 직접 요리를 하는 것 같다.


옆에서 남의 속도 모르는 남편은 그냥 밥하기 귀찮을 때는 치킨을 시켜먹자고 한다.

그러면서 삐죽삐죽 입을 내밀며 솥밥을 김에싸서 곧잘 먹는다.


나는 오늘도 우리 가족을 잘 먹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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