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개 낀 아침
이야기가 깊어질수록, 가장 본질적인 것을 다루게 된다. 주변 환경보다 더 깊은 자신의 내면을 보기 위해 노력한다. 결국 자신이 얼마나 열악한 환경에 노출되었는지 깨닫는다. 순수한 내면을 마주했을 때, 내 주위가 얼마나 어두운지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깨닫는 것과 답을 얻는 것은 다른 일이다. 주변 환경에서는 답을 찾을 수 없다. 그리고 내가 가진 답도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바라보는 것이다. 지금 어디에 있는지, 내 눈앞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나의 마음은 어디를 향하는지 바라볼 뿐이다. 아이러니하게 내면을 바라볼 때 가장 비참해진다. 가장 순수한 모습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모습임을 깨닫는 것이 두렵다. 결국 내면은 어둡게 물들어야 한다. 내면은 환경을 받아들여야 한다. 어둡게 물들여진 내면은 고통 속에서 분노를 만들어낸다. 행복을 가진 자는 그 자리에 멈출 수 있지만, 고통을 가진 자는 그 자리를 떠날 수 있다. 분노는 가장 큰 추진력이 된다. 좋은 것이 좋은 것이라는 주입식 교육은 분노의 힘을 알려주지 않았다. 나의 가장 큰 동기부여는 좋은 것을 향한 갈망보단 분노가 만들어낸 복수를 향한 마음이다. 이 분노에는 주체가 없다. 단순한 복수심으로 이루어진 분노가 아니다. 오로지 나의 내면 안에서 폭발한다. 오로지 나만 뜨거워진다. 뭐든지 할 수 있다는 마음보다 뭐든지 해낼 것이라는 마음이 더 커진다. 주변은 달라지지 않는다. 아침이 찾아와도 안개는 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아침이 왔기에 안개는 사라질 것이다.
"나는 비록 나의 모습을 보지는 못하지만, 그 녀석들은 봤을 것이다. 거만하게 가운데 손가락을 올리고 흑인 특유의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놈들을 올려다보는 모습을. 그리고 놈들은 내려다보겠지. 힘없고 쓸쓸히 죽어가는 세상에서 가장 약하게 태어난 애벌레 한 마리를. 사실 나도 처음부터 신을 믿지 않은 것은 아니다. 어렸을 적엔 주일마다 교회도 가고 기도도 드렸다. 그러나 점점 내가 저지르는 일들이 두려웠다. 주일마다 회개를 했지만 하나님이 나를 째려보는 느낌이었다. 이미 검어질 만큼 검어진 양심은 다시 나를 더러운 곳으로 끌고 갔다. 솔직히 연기 한 모금이 회개보다 더 좋은 효과를 가져왔다. 그게 내 양심을 끝이 없는 어둠 속으로 가져갔지만 내 양심은 뽀얀 연기를 받아들였다. 내 폐는 이미 환각상태에 빠졌고, 심장도 더 이상 날뛰지 않았다. 말라빠진 입술은 하얀 연기를 내뱉었고, 검은 내 얼굴은 하얀 연기 속에서 희미해져 갔다. 나는 두 눈을 감는다. 그리고 잠이 들길 원하고 있다. 잠이 든 내 몸을 하얀 연기가 데려가 주길 원했다. 백인도 흑인도 아시안도 멕시칸도 아무도 없는 곳으로. 아무 색깔도 존재하지 않고 이름만 있는 곳으로."
어둠 속에 태어난 사람은 빛의 소중함을 알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두려움의 공간이 자신에게는 익숙한 공간이다. 어떤 이유에서 자신이 이곳에 있는지는 알 수 없다. 태어나보니 주변은 어둠뿐이었다. 값싼 목숨을 지키기 위해 어느 누구보다 더 치열하게 살았다. 내일 당장 내 옆의 친구가 죽을 수 있다는 공포 속에서 살아간다. 누군가는 이런 삶을 살아가고 있겠지. 나는 언제라도 죽을 수 있다는 공포를 느끼지 않았다. 안전한 삶에 익숙해져 살기 위한 길이 아닌 안전한 길을 선택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안전한 길을 쉬운 길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안개 낀 도시를 달리고 있다. 어디에 사람이 있고, 어디에 가게가 있고, 어디에 도로가 있는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내가 선택한 것은 사실 달리지 않는 것이다. 가장 안전한 길이라는 생각 때문일까? 사실 가장 쉬운 길을 선택하면서 안전을 핑계 삼은 것이다. 언젠가부터 쉬운 것만을 찾기 시작했다. 공포를 느껴보지 않았지만, 공포를 느끼는 공포에 겁먹어 있었다. 그래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핑계는 쌓여가고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케니의 입을 빌려 온갖 공포를 겪을 것 마냥 안개 낀 도시를 달리기 시작한다. 나는 할 수 없다. 이미 공포에 사로잡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하지만 케니는 어디로든 갈 수 있다. 케니는 공포와 함께 살아간다. 내가 피했던 공포를 가지고 살아간다. 케니가 극복한 공포를 통해 나는 배움을 얻는다. 자신감을 가지고 나의 삶을 살아간다. 이제 공포를 맞이할 준비가 끝났다. 케니가 그랬던 것처럼 나도 쓰러지고 다시 일어설 준비가 되었다. 그러나 이미 공포는 사라졌다. 나에게 공포는 찾아오지 않는다. 안개는 도시를 덮을 뿐이다. 도시는 바뀌지 않는다.
"이곳의 밤은 너무나도 춥고 싸늘하다. 밤하늘에 울려 퍼진 총성과 사람들이 욕하는 소리 그리고 마지막은 언제나 비명 소리, 도망치는 발자국 소리, 사이렌 소리의 삼중주가 화합을 이루며 밤을 마무리한다. 따스한 아침햇살이 이 거리를 비추면 길거리의 흩뿌려진 피가 굳고 시체가 부패하며 썩은 냄새가 거리를 뒤덮는다. 그래서 우리는 영원한 어둠을 원했다. 이 망할 도시에 빛이 들어오면 우리는 더 초라해졌고, 더 불쌍해졌다."
나 하나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면서 남을 걱정하는 모습을 보아라. 누군가는 나를 응원하고, 다른 누군가는 나를 보며 한숨을 쉴 것이다. 과연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은 내게 어떤 반응을 보일까? 나를 진정으로 생각한다는 사람들은 고개를 떨구고 한숨을 깊게 내쉰다. 그리고 내게 다가와 당장 그만두라고 소리친다. 반대로 나와 아무 접점이 없는 사람들은 나의 행동에 박수를 보낸다. 나에게 열심히를 강요하며 저 멀리서 지켜보고 있다. 가까운 적 없던 우리의 관계처럼 그들은 다가오지 않는다. 나는 누구를 선택해야 할까? 진심 어린 걱정이지만 맘대로 나를 판단하는 듯한 나의 가족, 친구 그리고 나를 걱정하는 모든 사람들. 아니면 단지 나의 행동만을 보고 응원하고 격려해 주며 부추기는 이름 모를 사람들. 나는 자연스레 후자를 선택한다. 감정 없는 따뜻함에 마음이 향한다. 내게 남겨진 건 아무것도 없지만, 단지 따뜻함에 눈이 멀었다. 나는 오로지 인정받기를 원했다. 그래서 모두가 공감하지만 아무도 해결하지 않는 문제를 가져왔다. 인종, 빈민가, 마약, 망가져버린 남의 삶. 소문으로만 들은 사회의 문제들. 사회의 피해자가 문젯거리로 전락한다. 그들은 죄가 없다. 하지만 아침의 안개가 짙다. 보이는 것이 사실이 아니다. 우리도 이게 사실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이게 사실이 아니라면 내가 보낸 박수는 아무 의미가 없다. 나의 행동에 의미가 없다. 나를 위해 당신은 피해자가 되어야 한다. 이 안갯속에서는 아무도 이걸 문제 삼지 않을 것이다. 아침이 오면 안개가 걷힐 것이라는 기대도 사라졌다. 아침이 왔기 때문에 안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안개 낀 아침을 말한다. 이 이야기는 안갯속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안개를 벗어나기 위해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친구의 죽음을 팔아야 한다. 어머니를 더 비참하게 만들어야 한다. 가장 소중한 사람을 잃어야 한다. 케니는 안개를 벗어날 수 있을까?
"길거리에 버려진 여인, 취한 듯이 풀린 눈, 알싸한 술냄새, 마약 중독자, 여인을 노리는 주위의 알코올 중독자와 마약 중독자의 시선, 거부와 저항이 없을 듯한 입술, 잠금장치 없는 낡은 집 앞의 여인, 나의 어머니다. 사랑받은 적이 없어 사랑할 수 없고 사랑할 줄 모르는 여인의 아들, 바로 나다. 어디까지 올라가야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거리가 생긴 이후로 그녀의 선조는 마약 중독자였고 술과 함께 살았을 것이다. 누군가 이 사슬을 끊어야 하지만 그 누구도 하지 않았고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우리의 주위에는 사슬이 너무 많았으니까. 어느 것이 우리의 사슬인지 몰랐으니까. 그냥 원래 있는 것인 줄 알았으니까. 그러면서 시간이 흘러갔고 사슬은 더 많아졌다. 사람은 하나 둘 줄어들었지만 사슬은 없어지지 않았다. 끝나지 않는 사슬의 대물림. 왼쪽 발에 사슬을 찬 남자와 오른쪽 발에 사슬을 찬 여자가 만나 술에 취하고 한 행동이 또 다른 사슬을 만들어 낸다. 남자는 도망가고 여자는 주저앉는다. 새로운 사슬은 울고 웃기를 반복한다. 그런 사람은 그런 사람을 만나고 이런 사람은 이런 사람을 만난다. 이런 사람과 저런 사람은 만날 수 없다. 그 사이에 존재하는 수많은 벽돌이 서로의 존재를 숨기고 경멸하게 한다. 결국 그런 삶 사이에 그런 아이가 태어나고 저런 사람 사이에 저런 아이가 태어난다. 이게 우리 사회의 규칙이다. 지겹게 반복되어 당연시되어 버린 사회의 규칙. 우리는 그 규칙 안에 버려져 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간다. 오늘도 내일도 계속 살아간다. 나도 그리고 내 어머니도 옆에 있는 톰도 길거리에 널브러져 있는 중독자들도 그렇게 살아간다. 그래서 나는 어머니를 가여운 여인이라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