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쓰는 이야기

: 살아남기 위해

by CP

2020년 2월의 LA는 따뜻했다. 천사들의 도시, 별들의 도시, 온화한 기후 모든 게 완벽한 곳에서 한 명의 관광객으로 보낸 시간은 아름다웠다. 현지인보다 외국인이 많은 곳에서 시간을 보내고 사진을 찍고, 인터넷에서 보던 음식을 먹고, 레이커스를 응원하며 꿈꿔왔던 순간을 하나씩 채워나갔다. 하지만 절대 채울 수 없는 게 있었다. 나는 LA에 살고 있지 않았다. 한 명의 관광객이자 초대받지 못한 외국인의 촉박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유 없는 무서움을 느끼고, 새로움을 받아들이기만 했다. 내가 가진 것은 틀리고 LA의 향이 배어 있는 모든 것은 옳았다. 내가 그토록 LA를 원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한 편의 영화 때문일까? 한 곡의 노래 때문일까? 아니면 어느 한 사람 때문일까? 나는 LA의 모든 걸 원했다. LA의 달콤함에 빠져 사는 한 명의 사람이 되길 원했다. 하지만 이 도시는 내게 살아가는 사람을 보여 주었다. 이른 아침 쓰레기통을 뒤지는 홈리스, 피곤함에 고개를 푹 숙이고 지하철을 내리는 배 나온 스파이더맨, 오픈 시간 전에 이미 줄을 서 있는 손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카운터의 직원. 세상 모든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살아가고 있다. 내게 주어진 LA의 시간이 끝나면 나도 저들처럼 살아남기 위한 24시간의 연속을 견뎌야 한다.

살아남기 위해 살아간다. 무엇이 나를 살아가게 하는가? 어떤 삶의 이유 때문에 비굴해지고 거짓을 일삼을 수 있는가? 단지 살아남기 위함이 이유라면 생존이 가지는 값어치는 어느 정도인가? 수많은 물음은 답을 원하지 않는다. 생존은 물음을 먹고 산다. 답을 찾지 못하는 물음은 나에게 생존이라는 선택을 강요한다. 살아갈 이유가 없다면 이유를 찾기 위해 살아야 하고, 이유가 있다면 이유를 위해 살아야 한다. 생존은 생존하기 위해 질문을 던진다. 밑바닥부터 누군가의 머리 꼭대기까지 우리가 어디에 있든 '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대해 생각해 봤으면 한다. 비관적인 답이 나오든 긍정적인 답이 나오든 답이 나오지 않던 결국 이 질문이 우리에게 제시하는 길은 계속 살아가기 위함이다. 누군가는 살아남기 위해 살아가고, 또 다른 누군가는 살기 위해 살아남을 것이다. 그 이유가 어떻게 됐든 살아야 한다. 이른 오전 할리우드 거리 외곽의 쓰레기통을 뒤지는 홈리스와 버스를 기다리다 지쳐 리프트(Lyft)를 부른 나. 우리가 가진 이유는 다르지만 하루를 살아가기 위해 눈을 뜨고 몸을 움직인다. 살아가기 위해.


"어느 순간부터 비굴함은 우리들의 특성이 되어버렸다. 백인들이 신발을 신기면서 우리의 뿌리는 약해지고 오염되었다. 단단하고 탱탱한 발바닥은 물렁해지고 우리들의 심장은 힘을 잃고 폐는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새롭고 낯선 환경과 악마들이 득실거리는 땅에서 우리는 더 이상 진화할 수 없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퇴보해 가며 악마들에게 적응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먹는 음식, 입는 옷, 사는 집에 적응하고, 그들의 약함과 악함에 적응했다. 얼굴도 본 적 없고,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나의 할아버지나 할아버지의 아버지 그리고 그보다 더 윗 세대들은 살아가기보다 살아남기 위해 힘썼고, 살아남기 위한 발버둥은 우리 세대까지 이어져 왔다. 백인과 흑인, 흑인과 흑인, 흑인과 멕시코인, 흑인과 아시아인, 백인과 히스패닉, 백인과 유색인종, 크립갱과 피루갱, 컴튼과 LA. 인종분리는 끝나지 않고 계속 바뀌어 나갔다. 감기 바이러스처럼 자신을 뜯어고치고 개조시켜 사회에 속속히 파고들어 뿌리 끝까지 침투했다. 우리는 그저 기침 한 번 따위 신경 쓰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애썼지만 어딘지 모를 곳에서 계속 온몸을 조여왔다. 그리고 발 밑을 보는 순간 거대해진 인종분리 바이러스는 치료하기에 너무 늦었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 발버둥 치며 소리 질렀다. 살아남기 위해, 단지 살아남기 위해 내 삶이 아닌 내 몸뚱어리 하나를 지키기 위해 겁에 질린 척 쓰러지고, 미친 듯이 웃어대고 옛 친구를 괴롭히며 실컷 웃다가 뒤돌아서서 눈물을 훔쳤다."


살기 위해 집이 필요하다. 물질적인 집이 더 중요해진 세상에서 마음의 안식처가 되어줄 집이 필요하다. 집은 어떤 공간이 되어야 할까? 단순하게 편해야 한다. 나의 말과 행동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 좋아하는 음악을 실컷 틀 수 있어야 한다. 안심하고 잠을 잘 수 있어야 한다. 누군가에게 쫓기지 않고 천천히 걸을 수 있어야 한다. 이 모든 것이 가능한 곳이 어디일까? 우리가 '집'이라고 부르는 곳은 어딜까?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낙원은 어디에 있을까? 누군가는 호화로운 호텔 방 안에서 두려움에 소리 지르고, 누군가는 사방이 훤히 뚫린 모래사장에 누워 편히 잠을 잔다.

낯선 도시가 나의 집이 되기 위해선 내 몸을 편히 누울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케니가 가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가족도 친구도 돈도 없는 케니에게 누가 '집'을 줄 것인가? 그에게 남은 건 오직 심장 소리뿐이다. 온몸이 울리는 심장 소리를 들으며 계속 걷는다. 거리와 하나가 되기 위해 거리를 걷는다. 거리는 죽거나 사라진 누군가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케니를 받아들인다. 그리고 케니의 눈앞에 덩그러니 놓인 공간은 작은 몸 하나를 뉘일 수 있도록 온기를 내뿜는다. 이렇게 '집'이 만들어진다. 이 모든 걸 우연이라는 말로 덮고 케니는 또 하루를 살아남았다.


"아주 느린 비트 위로 천천히 깔리는 피아노 선율 그리고 자연스러운 빗소리. 나는 아주 느리게 걷고 있다. 당장 오늘 잘 곳도 없고, 먹을 것도 없지만 내 몸은 비트에 반응한다. 발걸음은 더욱 느려지고, 호흡은 차분해진다. 주위를 둘러봐도 온통 암흑뿐이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걷다 지쳐 길바닥에 쓰러져 잠이 들어도 상관없다. 지금 내 몸은 원하는 걸 할 뿐이다. 비틀거리는 사람들 틈을 지나가며 눈에 띈 불 꺼진 컨테이너는 정말 운명적인 만남이었다. 주인이 있는 집인지, 아니면 누군가에게 뺏고 빼앗기는 것인지 의심해야 했지만, 내 두 다리는 이미 컨테이너의 문 앞에 서있었다. 노크도 하지 않고 창문으로 집 안을 들여다보지도 않고 나는 당당히 문 손잡이를 잡아당겼다. 오늘이 마지막인 사람처럼 행동했다. 내 몸은 이미 나를 버리고 운명의 비트 위에 몸을 내팽개쳤다."


인정하기 싫지만 살아가면서 돈이 차지하는 비중은 무시할 수 없다. 나도 그렇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 살아가는 데 많은 시간을 사용한다. 오로지 돈 하나 때문에 한 달의 단 하루만 보상받는 삶을 살아간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들을 비난할 수 없다. 모두가 원하는 일을 하면서 원하는 돈을 벌 수 있는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누군가는 원치 않는 일을 하며 틀어진 세상의 부당함 속에서 살아가는 보상을 기다릴 뿐이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두에게 꿈이 있지만, 꿈은 존재하기 위해 현실을 필요로 한다. 차라리 돈을 버는 것이 꿈이었다면 꿈속에서 살아갈 수 있었을 텐데.

꿈과 돈의 공통점은 잡을 수 없다는 것이다. 꿈도 돈도 계속 움직인다. 손을 뻗기 위해 자리에 멈추면 도망가고, 뛰쳐나가 잡으려 하면 넘어진다. 우리는 끝을 향해 나아가길 바랐다. 내 손안에 잡으면 모든 게 끝날 거라 믿었다. 그러나 영원히 잡을 수 없기에 끝을 볼 수 없다. 아무것도 없이 태어나 아무것도 없이 떠나는 게 인생임을 망각하고 살고 있다. 결국 모든 걸 얻는다 해도 수많은 순간 중 하나임을 알고 있지만, 그 유혹이 너무 크다. 영원은 존재할 수 없지만 상상 속에서 영원은 만들어진다. 코비 브라이언트는 은퇴식 연설에서 꿈을 위해 나아가는 과정이 결국 꿈이라는 것을 알게 될 거라고 말했다. 꿈과 함께하는 순간이 많을수록 꿈을 이룬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코비 브라이언트는 사고로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꿈과 함께 LA와 달려간 시간은 그를 영원히 남아 있게 만들어 준다. 그가 남긴 꿈은 돈을 벌기 위함이 아니다. 그가 꿈과 함께 나아가는 과정에서 돈이 있는 길을 걸어왔던 것뿐이다. 돈은 꿈이 될 수 없다. 꿈은 종이 뭉치와 비교할 수 없는 가치를 가지고 있다. 돈은 그저 푸른 종이일 뿐이다.


"주머니에는 고향 친구들의 지갑에서 훔쳐온 여러 냄새를 풍기는 꼬깃꼬깃 구겨진 지폐 한 장이 내 손에 잡혔다. 크랙과 마리화나를 위해 계속 여기저기 옮겨 다녔던 돈이 드디어 제 구실을 할 때가 왔다.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쓰이는 이 지폐는 컴튼에서 가장 먼저 성공한 녀석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감성적인 녀석도 아니고 감성적이고 싶지 않았다. 며칠을 굶주린 등불은 이성도 감성도 잃고 오직 눈앞에 있는 음식에만 모든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더럽고 꼬깃꼬깃한 지폐는 그저 푸른 종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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