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난을 탈출하는 방법
꿈과 현실 사이에는 돈이라는 문제가 있다. 가진 자는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고, 가난을 가진 자는 가질 수 있는 기회마저 박탈당한다. 결국 가난을 탈출하기 위해 옆 사람의 목을 졸라야 한다. 덜 가난한 자가 되기 위해 발버둥 친다. 작게나마 열려 있는 기회의 문을 닫아버리고 아무도 나가지 못하게 막아버린다. 우리에게 성공한 사람은 부족함 없는 돈을 가진 사람이다. 부족함 없이 생활하는 사람에게 성공한 사람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온갖 로맨틱한 사람이 나오겠지만,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사람에겐 로맨틱을 누릴 여유조차 없다. 이 이야기의 가난이 주는 의미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의지와 이유다. 끔찍한 현실이 자신이 서 있는 자리임을 깨닫고, 이곳을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친다. 결국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가진 게 없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기회조차 가지지 못했다. 모든 게 불공평하고 평등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는 분노의 감정을 가친 채 살아간다. 하지만 오로지 분노 하나 만으로 그들에게 선택지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배고픔, 굶주린 배에서 울려 퍼지는 아우성이 그들에게 선택지를 보여준다. 음식에 눈이 멀어 눈앞의 돈을 줍기 위해 무릎을 꿇는다. 배고픔에 미끼를 문 생선처럼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고민하지 않는다. 우선 배를 채워야 한다. 살기 위해 무엇이든 먹어야 한다. 살아남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고 있다. 살아남기 위해 배고픔을 지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다. 배고픔을 지우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한다. 그래서 이미 걸어온 길을 다시 걷는다. 살기 위한 선택지는 가장 확실한 결과를 가져온다. 당장의 배고픔을 지워준다. 그 대가는 다른 기회의 상실이다. 결국 하고 싶은 일이 아닌 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한다. 분명 내게도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나의 간절함은 배고픔에 무릎 꿇었다. 미래의 불확실한 성공보다 지금 당장 배를 채우고, 고통 없이 취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제는 이런 생각도 든다. '이렇게라도 내게 주어진 하루를 살아가면 상관없지 않을까?' 나의 한계를 정의해 버린 순간 모든 게 끝나 버린다. 이미 선을 그어버렸고, 모든 에너지는 살아남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데 쏟아붓는다. 즐겁지 않아도 고통은 줄어든다. 좋지는 않지만 나쁘지도 않다. 정말 나쁘다 하더라도 취할 수 있다. 그리고 잊을 수 있다. 그렇게 내가 뭘 해야 하는지 잊어버렸다. 어찌어찌 오늘 하루를 살아남는다. 그리고 또 잊는다. 내일을 살아남기 위해.
"나는 현관에서 음식을 우걱우걱 밀어 넣었다. 목이 막혀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음식을 밀어 넣어 황급히 부엌의 싱크대를 잡고 호수에 입을 물린 채 수도꼭지를 돌렸지만 물은 단 한 방울도 않았다. 결국 입안에서 덩어리가 된 음식을 뱉어내고 한 손으로 덩어리를 집어 들자 두 눈에서는 눈물이 쏟아졌다. 방금 나는 사람이길 포기했다. 굶주림과 외로움이 나의 이성을 죽이려고 했다. 수많은 투쟁과 싸움 끝에 얻은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길을 뒤돌아 걸어가려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컴튼으로 온 이유는 점점 흐려지고 있었다. 하루하루를 살기 위해서 움직이고 고향의 검은돈은 거의 다 떨어져 간다. 일거리를 찾아야 했지만 꼬질꼬질하고, 냄새나는 너덜너덜해진 옷을 입고 있는 흑인에게 일을 주는 사람은 없었다. 결국 나는 다시 길거리를 택했다. 어둡고 으슥한 뒷골목에는 나와 같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언제나 빠른 비트를 유지하고 연기를 뿜어내며 고객의 얼굴을 위아래로 훑어본 뒤 조심스럽게 크랙을 건넨다. 나는 더 이상 그들이 내미는 손길을 무시할 수 없었다. 나는 그들과 최대한 자연스럽게 있기 위해 호탕한 웃음소리와 언제 죽어도 두렵지 않다는 마음을 보여주었다. 그들은 나에게 입을 옷과 먹을 음식 그리고 마실 물을 주지는 않았지만 취할 수 있는 크랙을 주었다."
하루를 잊고 하루를 살아가는 삶에 조금은 적응이 된 걸까? 조금씩 욕심이 생긴다. 굶주림의 시간은 지나가고 텅텅 빈 주머니를 채울 시간이 다가온다. 모든 게 더 나아질 일만 남았다. 처음에는 원치 않던 일이지만, 어느 때보다 간절했다. 그래서 최선을 다했다. 모두가 기피하고 하찮게 보는 일이라도 최선을 다해야 할 이유가 있었다. 오로지 살아남기 위해, 지긋지긋한 가난의 연을 끊어버리기 위해 목숨을 걸었다. 그리고 상황은 계속 좋아졌다. 배도 부르고 걱정도 줄었다. 하지만 가진 게 생길수록 욕심도 커진다. 원래 내가 원했던 건 이게 아닌데. 이제 내가 가려했던 곳으로 가야 한다. 마음먹은 대로 할 수 없단 걸 알면서 나의 정신을 지키기 위해 다시 되뇐다.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걸.
그리고 다시 깨닫는다. 인간다운 삶을 사는 데 돈이 필요했다. 이제 나는 돈을 벌고 있다. 분명 위험하지만 꽤 많은 돈을 벌 수 있다. 오히려 인간다운 삶, 그 이상을 바랄 수도 있다. 그런데 뭐가 문제인가? 가난을 탈출하려 하는 데 왜 다시 돌아가려 하는가? 나는 가난을 탈출하기 위해 충분한 돈을 벌었지만 아무것도 채워지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옳은 일을 하는 것이 맞다. 오로지 돈만 좇는 자는 돈에게 쫓길 것이다. 내가 가난을 탈출할 유일한 방법은 꿈을 좇는 길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내가 만든 길이 다른 누군가의 길이 될 수 있도록 옳은 길을 만들어야 한다. 돈의 가난이 아닌 나의 가난을 탈출하기 위해 다시 걸어간다.
"나는 중독의 늪 속에 내 몸을 던지며 친구들에게 가난의 향기를 뿜어댔다. 오지랖 넓은 누군가가 알아주길 원하며 계속 그들 곁에서 기다렸다. 묵묵히 끈질기게 나서지 않고 몸이 썩어가는 것을 참으며 계속 기다렸다. 눈치 빠른 벤이 약봉지를 건네기까지 무려 한 달이 걸렸지만 나는 계속 기다렸고 결국 가난을 탈출할 수 있는 열쇠를 얻어냈다. 이 지긋지긋한 가난의 냄새를 지워버리기 위해 여기까지 왔는데 결국 나는 가난의 냄새를 퍼트려 돈벌이를 만들었다. 이제 우리 집에도 물이 나오고 전등이 밝게 빛을 낼 것이다. 이제 주린 배를 붙잡고 누워있을 일도 없고 깨끗한 새 옷을 입을 수 있을 것이다. 머릿속에는 계속 가난을 탈출한 삶이 그려지는데 왜 내 심장은 뛰지 않는 것일까? 미친 듯이 빨라져야 할 심장은 계속 느려지고 있었다. 강제로 심폐소생술을 하고 숨을 불어넣어도 심장은 느려지고 있다. 무려 한 달을 기다리고 평생을 이 썩어빠진 몸뚱이로 살아야 하는데 가난의 탈출은 나에게 아무것도 아닌 것인가? 결국 심장은 그 느린 비트마저 꺼버렸다. 나는 ‘왜?’라는 의문을 가져야 했지만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그냥 넘어가 버렸다.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난다는 생각이 내 온몸을 휩쓸고 다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