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익사
귀가 먹먹해진다. 물속에 귀가 잠겨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내 주위에 누가 있고,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없다. 그저 살기 위해 발버둥 칠 뿐이다. 왜냐면 나는 점점 가라앉고 있다. 어떻게든 물 밖으로 나오기 위해 이리저리 손을 흔들고 발버둥 치지만 점점 더 가라앉는다. 나는 이곳을 나가려 하는데, 나의 행동은 이곳으로 빨려 들어가게 한다. 더 불행한 건 점점 이 삶에 적응하고 있다. 세상의 모든 일이 그렇듯이 결국 적응된다. 쓸쓸한 일이지만 적응할 수밖에 없다. 결국 모든 이야기는 살아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세상의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야 하는 이유는 살아남기 위함이다. 하지만 모든 발버둥이 옳은 방향으로 이끄는 건 아니다. 그리고 케니는 이미 죽은 삶을 살고 있었다.
죽은 자는 삶에 어떤 미련이 남아있는가? 모든 죽음에는 이유가 있다. 하지만 죽음의 문턱 앞에서 자신이 만들어 온 이유를 부정한다. 세상에는 아직 죽을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넘쳐난다. 자신을 탓할 수 없기에 세상을 탓한다. 그들은 이 세상이 잘못되었다고 말한다. 자신의 눈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못한다. 자신을 바라보는 남들의 눈은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있지만 자신만은 다를 것이라 생각한다. 이 세상과 자신은 다른 존재라 생각한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살고 이 세상에서 죽지만 자신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모든 생각의 끝은 모든 게 잘못된 상태가 된다. 목적지 없는 생각의 끝에 죽음의 문이 열려있다. 잘못된 나의 눈은 처음으로 진실을 보았다. 나는 죽은 삶을 살고 있었다. 뒤돌아볼 수 있어도 돌아가지 못하는 삶을 살고 있었다. 과연 누가 당당히 이 문을 지나갈 수 있을까? 아직 나는 미련을 떨쳐내지 못했는데. 아직 하지 못한 게 많은데. 이 세상은 왜 나에게만 이렇게 가혹한가? 나는 아직까지 잘못된 눈을 가지고 있다. 제대로 이 세상을 바라본 적이 한 번도 없다. 나의 눈이라는 생각에 잠겨 나의 세상을 본다고 느꼈다. 세상의 눈은 물속으로 가라앉고 있는 나를 보고 있을까? 아니면 물속을 향해 뻗어가는 나를 보고 있을까? 잘못된 나의 눈은 물 밖을 바라볼 뿐이다. 평범을 내세우며 누구보다 높은 곳을 원하는 삶이 나를 죽였다. 내 눈앞에 있는 이 문을 죽음의 문이라고 한다. 이 문을 넘으면 죽음을 향해 간다고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당당히 이 문을 지날 수 없다. 나는 이미 죽은 삶을 살고 있으면서 죽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이 문을 넘으면 죽음 밖으로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나의 잘못된 눈과 잘못된 생각이 나를 죽였고, 세상은 내게 기회를 주었는데 아직 나는 세상에 속할 자신이 없다. 내가 잘못된 것을 알기에 세상에 속하지 못할 것이라는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다. 과연 케니는 죽음의 문이 죽음을 향하는 방향인지, 죽음을 나오는 방향인지 볼 수 있을까?
"나는 점점 어린 갱스터의 삶에 적응하고 있었다. 평범한 미국인이 누릴 권리를 누리지 못하고, 권리의 필요성 마저 망각해 버린 피폐한 삶을 살아가면서 지나치게 긍정적으로 살고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눈길을 주지 않는 걸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었다. 혹시나 지나가는 사람들이 나를 흘깃거리며 지나가면 나는 일부러 들으라는 듯이 욕설을 해대며 오늘 판 약과 번 돈을 큰 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그들을 실패자라고 생각하며 어린 나이에 얻은 직업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사실 몇몇 사람들은 나를 부러워했을지도 모른다. 특히 그 당시 내 또래의 아이들은 더욱 그랬을 것이다. 가난 속에서 먹고 싶은 것도 못 먹고 입고 싶은 것도 못 입는 이들에게 반짝이는 목걸이와 반지, 윤기 나는 흰 스니커즈는 그들에게 꿈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가 그 꿈들을 몸에 두르고 있다면, 입안에 한가득 햄버거를 오물거리고 있다면 그들의 빛나는 두 눈은 부러움을 가득 채운 채 나를 볼 수밖에 없었다. 이런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망할 갱스터는 직업적인 의미를 부여받고 아이들의 장래희망 속에 깊이 들어간다. 언제 어디서 소리 소문 없이 죽을 수도 있고 더럽고 냄새나는 검은돈만 주머니 속에 꾸깃꾸깃 들어오지만 비싸기만 한 아무 쓸모없는 목걸이에 반사된 빛이 사람들을 비추고 구원의 빛을 본 사람들은 우리를 예수처럼 떠받들어 준다. 특히 내 나이 또래의 아이들은 맹신적인 신도들이다. 폭력적이고 허리춤에 총을 가지고 있고 낡아 빠진 차에 기대어 담배를 피워대는 모습에 눈이 돌아가 우리 같은 쓰레기를 롤모델로 삼는다. 하수구에 고인 더러운 물이 순수한 물과 한데 섞여 계속 오염시키는 꼴이지만 더럽게 살아온 우리들은 알게 모르게 영역을 넓혀갔다."
점점 물속으로 가라앉는다. 언제부터 내 몸이 무거워졌다. 온몸에 반짝이는 보석을 두르는 게 꿈이던 소년은 물속으로 가라앉는다. 소년은 이유를 모른다. 자신이 원했던 길이 죽음으로 가는 길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눈먼 소년은 계속 걸어간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반짝이는 빛은 눈에 아른거린다. 소년은 계속 걸어가는 자신이 자랑스럽다. 그리고 온몸을 감싸는 반짝이는 빛이 소년을 계속 걸어가게 만들어준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물속으로 가라앉는 소년만 보인다. 소년에게 소리치는 사람들. 소년은 물속에서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귀가 먹먹하다. 여기가 어딘지 모르겠다. 눈앞에 보이는 거라곤 빛 하나뿐이다. 저 빛의 끝에 도달하면 무거웠던 내 몸이 다시 가벼워질 것만 같다. 그렇게 소년은 죽어서도 빛을 쫓는다. 떠오르지 못한 익사체. 소년의 몸을 감싼 반짝이는 것들은 소년을 영원히 떠오르지 못하게 한다.
아무 말도 들리지 않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소년이 자신일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이미 그들은 아무것도 볼 수 없다. 옆에서 아무리 소리쳐도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그들은 스스로 자신을 포기해야 한다. 결국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가? 나는 죽어가고 누군가 나를 바라본다면 적어도 내게 죽음의 문 턱 앞에 설 기회는 있을 것이다. 결국 혼자가 될 것이라 생각하지만, 그 과정 속에서는 누군가 옆에 있어주길 바란다. 내가 넘어지는 걸 보고, 일어서는 걸 볼 수 있는 사람이 있길 바란다. 죽어가는 나를 보고 내가 죽었다는 사실을 슬퍼해줄 사람을 원한다. 소년은 떠오르지 않는다. 물속에서 반짝인다. 또 다른 누군가를 불러들인다. 불행을 지켜보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소년의 죽음은 가치가 생긴다. 누가 소년을 지켜볼 것인가? 누가 소년이 될 것인가? 아니면 누가 소년을 구해줄 것인가?
"나를 쳐다보는 녀석들이 겁먹을수록 내가 멋있는 줄 알았다. 나를 쳐다보는 녀석들이 겁먹을수록 내가 성공한 줄 알았다. 자만심에 빠져 익사하고 있는 나는 죽을힘을 다해 탈출하려고 허우적 대지도 못했다. 옆에 있는 녀석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면서도 나는 나를 너무 믿고 있었다. 이 자만심으로 가득 찬 바다는 내가 만들었는데도 나는 나 자신을 계속 믿었다. 늘 불안감에 쫓기며 나를 감추고 살아갔지만 언젠간 행복해질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래서 하루하루 위협을 무릅쓰고 달려 나갔다. 밤마다 울리는 총소리를 피해 차 밑에 숨기도 했고, 지붕을 타고 도망치기도 했다. 몇 백 만불짜리 약을 파는 것도 아니면서 나는 이걸 일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갔다. 낮에 반짝이는 보석들을 보여주고 싶어서, 내 새로운 조던을 뽐내고 싶어서, 너희들의 빛나는 눈길에 빠져버려서, 이미 자만심의 바다에 빠져 죽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