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은 나를 사랑했나요?
사람의 이야기라면 결국 다루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알 수 없는 곳에서 만들어진 감정이 이토록 진할 수 있을까? 아니면 이 세상과 아무런 연결점이 없는 상태에서 유일한 연결점이 되어줬기 때문인가? 나는 수많은 버림받은 사람을 대변할 자격이 없다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내게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면 꼭 말하고 싶은 게 있다.
우리는 결국 돌아갈 것이다.
가장 증오하고 다시는 오지 않을 거라 다짐했던 곳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리고 과거의 증오는 자신을 향했던 것이라 깨닫는다. 그렇게 애벌레는 나비가 된다. 얼마가 걸릴지 모르지만 아무리 잊고 지낸다 한들 결국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나비가 될 수 없다. 그래서 돌아가야 한다. 모든 문제가 시작되었던 곳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곳에는 가족이 있다. 친구가 있다. 매일 지나치던 거리에는 매일 지나치는 가게가 있다. 크게 바뀌지 않은 거리와 모든 걸 바꾸고자 거리를 떠난 사람의 재회는 아름답지 않을 것이다. 과거의 추억에서 고통은 씻겨 내려가고 반가움만 남아있다. 영원할 수 없는 반가움, 끝이 보이는 반가움. 결국 이곳에서 다시 돌아간다. 그래도 조금은 가벼운 마음과 발걸음이 함께 하겠지? 그리고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 확신과 함께 사랑하는 곳을 떠난다.
나를 사랑하게 해 준 곳이 보인다. 온갖 증오를 가지고 찾아온 곳에서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배웠다. 아직까지 모든 증오를 용서하지 못하지만, 나의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증오는 쓰다듬어 줄 수 있다. 하나하나 죽어가는 증오를 보며 깨달은 게 하나 있다면, 결국 모든 문제의 시작은 나에게 있었다. 내게서 뻗어 나와 당신과 연결된 선을 내가 더럽히고 있었다. 나의 어둠이 당신의 피를 어둡게 만들었다. 그리고 나는 이곳에서 당신을 죽였다. 붉은 피는 맑게 빛나고 있었다. 당신과 나를 연결하는 선은 끊어지고 어둠은 내 주위를 맴돌았다. 없어지지 않는 어둠의 주인은 누구인가? 이미 당신의 숨소리는 들리지 않고, 붉은 피는 처음으로 내 주위를 빛나게 만들었다. 그렇게 나의 증오가 하나 둘 죽어갈 때마다 내 주위는 밝게 빛났다. 어둠으로 가득 찬 나를 위해 빛나고 있었다. 이미 모든 문제의 시작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지만, 사실을 인정하기 싫었다. 나의 선택이 옳다고 믿고 싶었다. 이미 성공한 사람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나는 달라. 저기 빛나는 사람들처럼 나도 다른 사람이야."
그렇게 나의 소중한 사람들이 내 곁에서 죽어나간다. 나의 손으로 그들과 연결된 선을 끊고 있었다. 내게 유일한 빛을 보여준 사람들을 사랑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 자신을 사랑하지 못한 소년은 사랑을 주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사랑받는 법을 모른다고 여겼던 소년은 사랑이 무엇인지 몰랐다. 소년은 빛을 보고 사랑을 알았다. 그러나 소년은 어둠을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을 감싼 어둠을 증오했다. 증오는 증오를 키웠고, 소년의 증오는 소년의 눈을 어둠으로 덮었다. 소년의 세상은 어둠으로 뒤덮였다. 어머니는 어둠 속에서 자신을 안고 있었다. 친구들은 어둠 속에서 미소를 지었고, 가게의 주인과 손님은 어둠 속에서 돈과 음식을 주고받고 있었다. 소년의 눈은 어둠으로 둘러싸인 거리를 품고 있었다. 이곳은 어둠만 남았다. 내 주위의 사람들은 어둠 속에서 죽고 있다. 결국 나도 어둠 속에서 죽을 것이다. 소년은 두려웠다. 아무렇지 않은 척 해도, 죽음에 대한 공포를 가지고 있었다. 결국 소년이 선택한 길은 도망가는 것이다. 어둠을 피해 거리를 떠났다. 후회는 없다. 어차피 이곳에 있는 모든 존재는 어둠이다. 아무리 내게 소중한 사람도 어둠일 뿐이다.
어둠은 소년의 마음속에서 뿌리내리고 온갖 부정적인 기운을 키워 나갔다. 증오와 혐오로 가득 찬 소년은 이 시대의 불쌍한 사람이 되는 길을 걸었다. 그래도 소년의 마음 깊은 곳에는 빛이 남아 있었다. 소년을 위해 빛나는 순수한 빛이 아니다. 빛은 욕망에 물들어 소년에게 갈등을 만들어 주는 존재가 되었다. 아무것도 의지할 게 없던 소년은 빛이라는 존재 하나만을 바라보고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방법을 찾는다. 소년은 목이 마르다. 목마름에 죽어간다. 물 한 모금을 위해 거리를 이리저리 방황하는 소년을 보는 세상은 그에게 별명을 지어준다.
'갱스터, 마약쟁이, 문제아, 우리 아이가 피해야 될 사람, 깡패, 양아치, 곧 죽을 사람 그리고 사랑받지 못한 아이.'
소년은 사랑을 이해하기 위해 어둠과 함께하는 법을 배워야 했다. 그는 살기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하루를 버텨냈다. 보이지 않는 적을 피해 숨고,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물을 찾아 쉬지 않고 움직였다. 소년은 게으르지 않다. 쉬지 않았다. 멈추지 않았다. 최선을 다했다. 그럴수록 소년을 향한 주변 사람들의 눈초리는 그의 주위를 더 어둡게 만들었다. 결국 소년의 눈은 어둠에 잠식되어 아무것도 보지 못할 것이다. 이때 소년은 어떤 선택을 할까? 끝없는 어둠 속에 잠겨버리거나, 어둠 속에서만 만날 수 있는 빛을 따라가거나. 소년은 고민하지 않았다. 그는 언제나 빛을 따라가고 있었다. 욕망의 빛일지라도 그에게 빛을 심어준 사람을 잊지 않았다. 자신이 성공해야 하는 이유를 만들어 준 사람을 잊지 않았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가족과 친구 그리고 자신이 자란 거리가 있었다. 끝없는 어둠 속에 나타난 빛 한줄기는 소년의 눈에 가득 찬 어둠을 지워냈다. 그리고 소년은 마음속 깊이 자신의 어둠을 품었다. 그렇게 그는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어둠이 사라진 거리는 빛도 사랑도 어둠도 따가운 눈초리도 없었다. 거리는 거리로 존재했다. 아무것도 몰랐던 자신에 대한 후회는 없다. 한 가지 달라진 게 있다면, 이제 돌아갈 수 있다. 후회가 없기 때문에 어디든 갈 수 있다.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누구든 만날 수 있다. 당신이 나를 사랑하지 않더라도 나는 사랑을 줄 수 있기 때문에 당신과 마주 볼 수 있다. 지금까지 나는 그 누구에게도 사랑을 주지 못했다. 당신에게 사랑을 강요한 울부짖음은 내게 욕망의 빛을 만들어 냈다. 후회하지 않는다. 그러나 책임도 잊지 않는다. 당신을 사랑하는 만큼 나를 사랑하기에 후회 또한 사랑할 것이다. 나는 아무것도 버리지 않는다. 잊는다는 말과 함께 마음속 깊이 묻어둘 거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사랑을 원하는 나의 울부짖음에 대답하지 마세요. 나는 이미 소중한 인연을 죽여버렸는걸요. 그러니 내가 가진 새로운 관계의 끈을 보고 다시 잡아 준다면 제가 당신에게 사랑을 줄게요. 아직 누군가에게 사랑을 줘본 적은 없지만, 나는 알고 있어요.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당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알고 있어요. 서툴더라도 이해해 주세요. 제 손에 있는 책이 더 두꺼워질수록 당신을 향한 사랑도 커질 거예요. 우린 앞으로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거예요. 그동안 수많은 사람이 제 곁에서 지워지고 다시 쓰이겠지만, 당신은 언제나 다시 돌아올 거예요. 그러니 기다려주세요. 제가 당신에게 진실된 사랑을 주는 날까지.
"문을 열고 집 안으로 발을 들이자 온몸에 쌓인 긴장감이 한 번에 풀리며 내 다리도 같이 풀려버렸다. 나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5분 동안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잠깐 눈을 감고 있는 것도 괜찮은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다음날 정도가 되어서야 깨어났다. 신발이 신겨진 채로 냄새나는 옷을 입고 딱딱한 바닥에서 잠을 자서 온몸이 욱신거렸다. 그리고 메이플 시럽을 머리부터 발 끝까지 쏟아부은 듯한 끈적함은 나를 당장 욕실로 달려가게 만들었다. 수도꼭지에 손을 올렸을 때 살짝 멈칫 거리며 ‘물이 나올까?’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지만 이 찝찝함을 참을 수 없어 곧장 물을 틀었다. 강한 물줄기 소리가 귀를 간지럽힌다. 얼굴에는 나도 모르게 웃음이 지어진다. 이런 자연스러운 웃음이 언제 있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다시 머릿속에 ‘이게 행복인가?’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그리고 곧바로 ‘이 정도면 성공한 건가?’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그러나 마음속에 찾아온 과거의 힘든 나날이 잠깐 나타난 ‘행복’의 잔상을 지워버렸다. 물도 전기도 먹을 것도 입을 것도 없던 옛 시절 그때 나에게는 의지할 사람이 없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의지 할 수 조차 없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한편으론 영원히 미워하고 저주하지만 한편으로는 불쌍하고 여리기만 한 그녀. 도대체 그녀는 왜 나를 낳았을까? 어린 나이에 찾아온 갑작스러운 임신 소식에 겁을 먹고 벌벌 떨고 있는 그녀는 뱃속에 있는 나에게 사랑을 느꼈을까? 아니면 낙태할 돈조차 없어서 다른 여자들처럼 한 아이의 인생을 거리에 내팽개치고 뱃속에서부터 버렸던 것일까? 그녀의 마음은 모르지만 내 바람은 후자다. 아직 부모님의 사랑이 그리울 나이에 갱스터가 되어 물과 전기에 행복을 느끼고 아버지의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고 어머니의 감정은 증오와 분노가 전부로 남게 만든 사람이 나를 사랑했었다면 당장 그녀를 찾아가 이마 위에 총을 겨누고 울부짖으며 물었을 것이다. ‘당신은 나를 사랑했나요?’ 그리고 후자의 답변이 나오기를 기다리며 방아쇠를 잡은 손가락에 서서히 힘을 줄 것이다. 만약 전자의 답변이 나올지라도 방아쇠를 당길 것이다. 샤워기의 깨끗한 물이 내 온몸을 훑고 있지만 내 눈 밑으로 흐르는 물은 너무 뜨겁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 꾸짖는다. ‘이제 그 동네에서 있었던 일은 모두 다 잊으라고. 어머니, 친구들, 아지트 그리고 죽은 아버지 모두 잊으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