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선자
당신에게 위선자는 어떤 존재인가? 좋은 느낌으로 다가오는 건 아니다. 겉과 속이 다른 사람. 행동에 거짓이 묻어있는 사람. 품 안에 칼을 숨기고 있는 사람. 우리라는 공동체 안에서 위선자는 신뢰받을 수 없다. 그가 어떤 행동을 하든, 그 안에는 무엇인가 숨어있다. 볼 수 없어도 알 수 있다. 우리는 그가 얼마나 더러운지 알고 있다. 그의 베풂에는 대가가 따른다. 그런데 왜 우리는 그를 계속 잡아 두는가?
내가 위선자라고 생각해 보자. 나는 우리라는 공동체를 사랑한다. 그들은 내 겉모습을 보고 판단한다. 나도 그들의 겉모습을 본다. 거짓 웃음 뒤에 숨어 나를 욕한다 할지라도 내게 보이는 건 웃음뿐이다. 그래서 나도 웃었다. 내가 웃을수록 그들의 경멸은 더 커진다. 이제 내게 진실된 행동은 없다. 아무리 당신을 위해 희생해도 내게 돌아오는 건 뒤에서 들리는 수군거리는 목소리뿐이다. 그들은 나를 위선자라고 부르는 것 같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생각해 보지만,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사실 내가 잘못을 저지르긴 한 건가? 그냥 나의 어떤 모습이나 말 한마디가 누군가에게 거슬렸기 때문인가? 위선자 딱지는 시간이 지날수록 굳어간다. 정말 아무것도 기억나는 게 없는데, 왜 당신들은 나조차 신경 쓰지 못한 일을 나보다 더 소중하게 간직하는 건가? 나는 오로지 기억나지 않는 그 행동 하나로 정의되는 사람이 아닌걸 내가 훨씬 더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왜 당신들은 나를 마음대로 평가하고, 정의 내리는 건가? 난 정말 당신들이 싫지만, 무너져내려 가는 나의 모습을 보는 게 더 싫다. 그래서 이유 없는 잘못을 되돌리기 위해, 내 행동은 당신을 위한 행동이 돼버렸다. 그게 내가 아무 대가 없이 당신들을 도와준 이유다. 오로지 단, 하나의 이유만으로 나는 당신들을 위해 행동한다. 그러니 제발 나의 시간을 뒤로 돌려줄 수 없을까? 단, 한 번 만이라도 나의 노력을 마음으로 이해해 줄 수 없을까? 이런 나의 마음이 당신들에게 닿지 않는다면 결국 이곳을 떠나는 건 내가 되겠지. 정말 이곳을 사랑하고 아꼈는데, 이유도 모른 채 이곳을 떠나야 한다. 그냥 실수라고 생각한다. 이제 조용히 작별하고 싶다. 그게 내가 당신들에게 해줄 수 있는 마지막 희생이다.
다시 우리라는 공동체에게 돌아가자. 그들은 뻔뻔한 거짓 웃음을 가진 자가 떠나는 뒷모습을 바라본다. 어둠 같은 존재가 사라진 순간,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다 같이 모여 파티를 열어야 하나? 아니면 어둠을 뿌리까지 뽑아내기 위해 그의 흔적부터 지워야 하나?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다. 우리의 관심을 독차지한 존재가 사라졌다. 우리는 뭘 해야 하지? 지금까지 우리는 한 사람을 절벽 밑으로 떨어뜨리는 데 시간을 보냈다. 드디어 절벽에서 그의 손가락은 바닥을 떠났고, 이제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우리가 가진 시간은 계속 흘러가지만,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새로운 사람이 필요하다. 우리의 마음을 하나로 모을 수 있는 새로운 빌런이 필요하다. 영원한 평화는 없다. 안정을 위해 불안정이 필요하다. 서로가 서로를 경계하기 때문에 내 옆에 네가 있고, 네 옆에 나를 둘 수 있다. 악몽의 연속이다. 하지만 악몽 속에서 아무도 주인공이 되려 하지 않는다. 모두의 신경이 곤두서있다. 누군가의 실수를 모두가 기다리고 있다. 누군가는 이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잘못을 말하는 게 실수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아무도 입을 열지 않고 행동하지 않는다. 이곳에 미래는 없다. 오로지 지금 뿐이다. 사실 그들에게는 영웅이 필요했을지 모른다. 모두의 관심을 받으면서 의지할 수 있는 사람말이다. 공동체가 되기로 마음먹은 이후 혼자의 행동은 미움을 불러일으켰다. 의도 없는 미움은 한 사람을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더 이상 보이지 않는 곳으로 보내버렸다. 이제 이곳이 두렵지만 떠날 수 없다. 아무도 이곳을 떠날 수 없다. 이곳을 떠나기 위해선 위선자가 되어야 한다. 누군가에 의해 쫓겨나야 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길은 적응뿐이다. 옳고 그름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누군가 이곳에 적응하지 못하길 기다릴 뿐이다. 그리고 그게 내가 아니길 기도한다. 두려움이 공동체를 유지한다. 그런데 나는 이 공동체 안에서 두려움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가끔 이미 떠나간 사람들이 부럽다고 생각한다. 그럴 자격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들이 생각난다. 지나간 일을 돌이켜보면 그들은 항상 희생했고, 용감했다. 하지만 아무도 인정하지 않았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인정하지 못했다. 그들과 같은 취급을 당하는 게 두려웠다. 불안정이 만든 안정을 떠나는 게 두려웠다. 이 생활을 위해 우리는 불안정을 지켜야 했지만 실패했다. 이기적인 선택을 위해 더 이기적인 선택을 저질러버렸다. 이제 아무것도 모르겠다. 나는 이 공동체 안에서 죽어가고 있다. 나도 떠나간 이들처럼 조용히 잊히길 원한다. 그냥 여기서 살아가자.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다.
떠나간 이들은 행복을 찾았을까? 그들의 행선지 없는 발걸음을 따라갔다.
심란한 마음은 어디로 가야 할지 정하지 못했다. 한 명의 방랑자가 되어 이곳저곳을 돌아다닌다. 가끔씩은 후회도 한다. 나의 선택에 대한 의심을 가진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낀다. 그래서 이 세상이 밉다. 버림받은 자를 방치하는 이 세상에 불만을 가진다. 한 명의 행복도 챙겨주지 못하는 세상에 대한 증오가 내 마음을 집어삼킨다. 왜 나는 이런 삶을 살아야 해? 나는 아무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는데 진짜 범죄자보다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그냥 범죄의 문을 열고 망설임 없이 걸어 들어간다. 나와 같은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나는 우리에 속할 수 있다. 버림받은 사람들은 버림받은 사람을 받아준다. 과연 이곳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을까? 확신이 서지 않는다. 하나의 공동체 안에서 나의 행복을 찾아 행동했을 뿐인데 위선자가 되었다. 그리고 쫓겨났다. 다시 공동체에 들어온다고 달라지는 게 있을까?
그래서 나는 최악의 위선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긴장감이 넘치는 숨바꼭질을 하면서 약이 간절한 미친 사람들이 나를 찾아오게 해야 하는 이 일은 학교에 앉아 정규교육을 받아야 할 나이부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내가 정당히 받아야 할 교육을 받았는지 신경 쓰지 않는다. 민중의 지팡이라는 경찰은 나를 범죄자로만 취급하고, 감방으로 가는 길을 알려주는 지팡이가 되었다. 약이 간절한 미친 사람들은 나를 마약 자판기처럼 취급했다. 돈을 주고 약을 받아가기도 하고 돈도 없으면서 찾아와 자판기를 부수는 것처럼 나에게 총을 겨두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맞서 싸우기도 했고 맞고만 있기도 했다. 그리고 정말 죽을 위기가 올 것 같을 때는 약을 건네주고 죽을힘을 다해 도망쳤다. 이런 쓰레기 같은 삶을 살면서도 왠지 모르게 죽기는 싫었다. 아무도 없는 조용한 곳에서 지그시 눈을 감고 정신을 한곳에 집중한 뒤 천천히 죽음에 대해서 생각했을 때, 내 머릿속에 남은 대답은 ‘무(無)’였다. 기차가 달려오는 철로 위에 내가 서있을 때, 막다른 길 앞에서 피루갱이 내 앞을 막고 서있을 때, 사랑하는 사람이 내 옆에 목을 메단 채 두 발이 허공에 떠있을 때, 이 생활에 굴복한 채 하루하루 약물 복용량을 늘여가고 있을 때 어느 순간이 다가와도 내 머릿속에서 보여준 다음 장면은 아무것도 없었다. 죽는 순간도 없었고, 죽음의 문턱을 넘기고 행복해지는 순간도 없었다. 그저 죽음의 문턱 앞에 서있는 순간에서 멈춰 있을 뿐이었다. 죽음의 문턱에서 달아나지도 못하고 넘어서지도 못하는 영원한 고통 속에서 사는 내 삶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다시 눈을 떠도 고통의 연속이다. 마치 고정된 하나의 프레임 속에서 살아가는 것처럼 고통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았다. 이게 나의 삶이었다. 이게 우리의 삶이었다. 이게 빈민가 유색인들의 삶이었다.
나는 온 세상 모든 것들을 증오했다. 마음속은 항상 부당함에 대한 질문들로 가득 차 있었다. 왜 나는 이런 삶을 살아야 해? 왜 나는 너희들과 같은 미국 시민인데 같은 걸 누리지 못해? 왜 나는 불법적인 방법으로만 돈을 벌어야 해? 왜 우리들은 이곳을 벗어나지 못해? 왜 이곳은 바뀌지 않는 거야? 부당한 질문들은 내 몸속을 휘젓고 다니며 온몸에 증오의 불꽃을 퍼트리고 있었다. 하지만 몸 밖으로 표출되는 일은 없었다. 그래서 항상 불만 가득하게 다니지만 다른 녀석들은 그 이유를 몰랐다. 나는 녀석들에게 당당하고 강렬하게 말하고 싶었지만 녀석들 앞에서는 항상 말을 아꼈다. 괜히 이런 말을 꺼냈다가 녀석들의 웃음거리가 될 수 있었고, 괜한 영웅놀이라고 나를 조롱하거나 무시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내가 녀석들을 무시했기 때문이다. 녀석들은 이 생활에 만족하고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바보 같은 녀석들에게 약을 사고, 다시 약을 팔고 바보처럼 시시덕거리는 생활에 극도의 불만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이 이 일을 그만둘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