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쓰는 이야기

: 투팍 이야기

by CP

나는 소설을 쓰기 시작하면서 이 순간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하나의 인용구를 넣기 위해 케니를 만들었고, 고통 속에 던졌다. 모든 걸 포기하기로 마음먹은 순간, 세상은 아직 나를 포기하지 않았구나라고 느낄 수 있는 희망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케니가 죽기로 마음먹은 순간 내가 선택한 희망은 투팍이다.

내게 지금까지 소설을 쓰며 보낸 시간을 되돌아보면, 길고 지루한 시간이라 생각할 수 있다. 다른 누군가의 눈에는 그저 하나의 취미 생활이라고 보였을 거다. 글쓰기라는 취미를 가진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더라도 나의 글을 읽어주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그리고 나의 글을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지도 않다. 그럼 나는 왜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을까?

나의 가치관에 가장 큰 변화를 준 사람을 생각해 보자. 우선, N.W.A가 있다. 내게 힙합을 느끼게 해 준 사람들. 켄드릭 라마는 나의 뮤즈다. 그의 말 하나하나가 소중하다. 그래서 나는 케니를 만들었다. 로직의 스피치는 우리 모두에게 가치에 대해 알려줬다. 에이셉 라키는 자신의 비트를 느끼며 사는 인생의 멋을 보여 주었다. 그 외에 힙합을 만들어 나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내게 영감을 주었다. 이 소설의 모든 이야기는 힙합이라는 문화 속에서 시작한다. 자연스럽게 스쳐 지나갈 줄 알았는데, 언제 이렇게까지 깊이 들어왔는지 모르겠다. 나는 여전히 힙합을 사랑하고, 넓은 차원에서 힙합을 계속 알아가고 싶다. 그래서 투팍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내게 있어 투팍이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당신들에게 들려줄 생각은 없다. 그냥 투팍을 생각하며 그가 남긴 유산을 하나하나 돌아보고 싶어 이 글을 쓴다.

내가 투팍을 알았을 때, 그는 이미 죽었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투팍이 내게 들려줄 새로운 이야기는 더 이상 없다. 이전에 남아있는 영상과 노래 그리고 다른 사람의 마음속에 담긴 투팍이 내게 남았다. 당신과 나 사이에 이렇게나 많은 시간이 흘렀는데, 그는 계속 나를 끌어당긴다. 벌어진 시간이 좁혀진다. 진심이 담긴 목소리를 듣고 나는 무엇을 느꼈는가? 울림이 있다. 바람이 분다. 나를 돌아본다. 아무것도 남은 게 없구나. 지금까지 시간은 내게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다. 걸어왔던 길 뒤에는 아무 흔적도 없다. 시간의 바람은 쓸모없는 발자국을 모조리 지워버렸다. 내 뒤에 불어오는 바람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런 내게 투팍은 바람을 불어다 주었다.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했던 느낌이다. 진정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내가 지나온 길을 돌아본다. 이미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깔끔하고 단단한 길이다. 나는 편한 길을 걷고 있었다. 그러면서 편하고 쉬운 것을 갈망하는 삶을 원하고 있었다. 스스로 해왔다고 생각하는 일 뒤에는 누군가의 손길이 남아 있었다. 내가 생각하는 옳은 길은 남들이 가길 원하는 길이었다. 투팍을 만나기 전까지.

투팍이 걸었던 길을 생각하면 지금도 심장이 요동친다. 그가 걸어왔던 험난하고 고통으로 가득 찬 길이 옳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러나 그가 걸었던 길은 자신에게 물었을 때 후회가 없는 길이다. 그가 우리에게 전하려고 했던 것은 자신처럼 험난하고 고통으로 가득 찬 밑바닥에서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며 올라가는 길을 걸어라는 게 아니다. 그는 옳은 길을 찾길 원했을 거다. 후회 없이 걸어가고 자신이 걸어온 발자국을 바라보며, 웃으며 기억을 되새길 수 있는 길을 걷길 바랐을 거다. 투팍은 모든 정답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에게 의존하는 삶 또한 옳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길을 잃어버린 자에게 방향을 보여주고 고통에 지쳐 있는 이에게 다시 일어설 동안 쉴 수 있는 안식처가 되어준다. 그래서 투팍은 항상 기억된다. 마음속에서 그는 영원히 살아있다. 내게 물음이 생길 때 가장 먼저 투팍을 생각한다. 만약 투팍이라면 어떻게 행동했을까?

대답 없는 물음만으로도 그는 우리에게 힘을 준다. 그를 생각하는 것만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그의 인생에 대해 유심히 살펴보고 그가 외쳤던 소리를 들어온 사람이라면 모두가 알고 있다. 적어도 투팍은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 달콤한 소리를 통해 우리를 약하게 만들지 않는다. 그렇다고 우리가 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챙겨주지 않는다. 그저 자신이 보고 느낀 걸 말한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말한다. 자신의 생각에 대한 자신 있는 목소리가 누군가에게 닿을 때, 우리는 이 사람의 가치를 느낄 수 있다. 순수하고 강렬한 목소리는 투팍이란 사람을 있는 그대로 담고 있다. 그래서 울림이 깊다. 내가 직접 겪어보지 않았지만, 그의 이야기를 통해 나 또한 새로운 생각을 가진다. 그리고 투팍의 진심이 담긴 영상은 나의 소설의 중심이 되는 이야기가 되었다. '떠그 라이프(Thug Life)'


"그냥 죽어 버리는 게 더 편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쯤 기적이 TV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이 있다고 믿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이 존재한다고 믿는 사람들은 정말 기적 같은 어느 순간, 신이 아니라면 일어나지 못할 그 순간을 경험하고 하나님의 존재를 믿을 것이다. 나에게 그 순간은 TV에서 그가 나왔을 때이다. 검은 피부, 새하얀 이와 눈 그리고 넓적한 입술과 둥근 코까지 나와 다를게 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당당함과 카리스마가 있었다. 말로 표현하지 못할 기분이 그의 뒤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맑고 깊은 그의 눈에도 불만이 맺혀 있었다. 그는 우리와 같은 처지에 살아있고 살아갈 사람이지만 확실히 그는 우리와 닮았다. 그는 불만을 표출할 수 있는 입을 가지고 있었다. 투팍 아마루 샤커 검은 반다나를 두른 그는 어느 편에도 속하지 않고 검은색 위에 서있었다. 그는 당당히 불만을 표출하며 나를 변화시키려 했고, 우리를 변화시키려 했다.


나더러 말 좀 곱게 하라더군요. 좆 까라 그래요.

전국의 어린 흑인 아이들에게 내 새 계획을 설명하고 다니는 건 멋진 경험이었죠.

“떠그 라이프(Thug Life)”

되살아난 블랙파워 운동 같은 거지.

“떠그 라이프(Thug Life)”란 문자 그대로의 의미입니다.

백인들은 어차피 우리를 깡패로만 보니까요.

소위 ‘아프리카계 미국인’이라면 그가 변호사든 뭐든 스스로 얼마나 자부심을 갖고 있든 관계없이 흰둥이들에게는 다 똑같은 깡패 검둥이들일 뿐입니다.

우리 몫을 얻어낼 때까지 전 이 운동을 계속해 나갈 겁니다.

굶주리는 인간이 어떻게 남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겠습니까?

몇 집 돌아다녀도 이런 동네에서 제대로 큰 인간은 없었습니다.

총이나 휘두르고 다니는 우리를 누가 고상하게 ‘아프리카계 미국인’이라고 인정해 줄까요?

이대로는 우린 언제까지나 깡패 검둥이입니다.

절 믿어주세요.


집 안에는 계속 정적이 흐르고 있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 나는 밖으로 뛰쳐나갔다. 피가 온몸을 도는 것이 느껴질 정도로 온몸에 생기가 돌았다. 그리고 비트가 돌아왔다."


"심장 깊숙한 곳에서 깨끗하고 톡톡 터지는 비트가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었다. 나를 돌아볼 필요가 있었다. 지금까지 내가 어떤 고통을 받았는지, 어떻게 고통을 숨겼는지, 어떻게 참았는지. 내 어깨 위에서 짓누르고 있는 압박과 자존심을 내려놓기 위해 몇 가지를 인정했다. 첫 번째, 나는 꿈을 이루기 위해 떠난 게 아니라 이미 예정된 꿈에서 도피하기 위해 떠났다. 두 번째, 나는 주위 사람들을 알게 모르게 무시했지만 나도 그들과 다르지 않다. 세 번째, 나는 어머니를 사랑한다. 아직 몇 가지가 남은 것 같지만 어깨가 가벼워진다. 소파에서 몸을 일으킬 수 있었고, 가볍게 걸을 수 있었다. 이 짧은 순간 동안 스스로 많은 변화가 있었다고 느꼈지만 내 앞에 자리 잡고 있는 이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시 쓰레기 같은 더러운 일상이 시작될 것 같았다. 새로운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남들이 아닌 나에 의해 어둡고 위험한 길거리의 삶을 살아갈 것 같았다. 내가 내 손을 움직이지 못하고 내 발을 움직이지 못하고 내 입을 움직이지 못하게 하며 삶의 위치를 한곳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고 더 큰 고통을 불러들일 것 같았다. 눈을 감고 마음속으로 계속 돼 내었다. ‘내가 투팍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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