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쓰는 이야기

: 꿈

by CP

케니는 결국 꿈을 이룰 수 있을까? 나는 케니가 꿈을 이뤘으면 좋겠다. 케니를 통해 나도 꿈을 이뤘으면 좋겠다. 다시 펜을 잡는다. 매일 밤, 잠들기 전 적는 한 문장이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일단 적는다. 언제나 느끼지만 글을 쓰는 것은 어렵다. 외롭고 힘들다. 계속 생각해야 한다. 깊게 생각해야 한다. 번지르르한 겉모습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정말 열심히 글을 적어도 누군가에게 보여주지 못한다. 내가 만족할 수 없기에 다른 누군가를 만족시키지 못할 것이다. 남들의 평가를 신경 쓰지 않는 척하지만 사실 어느 때보다 귀를 쫑긋 세울 것이다. 그리고 의미 없는 말 한마디에 흔들리고 상처받고 아무 생각 없이 시간을 흘러 보낸다. 또다시 펜을 잡았을 땐, 지나간 시간을 후회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에 대해 후회한다. 너무 쉽게 흔들린 것에 대해 후회한다. 그리고 다시 한 문장을 적기 위해 생각한다. 언제가 마지막이 될까? 나는 언제쯤 꿈을 이룰 수 있을까? 진솔한 질문에 대답하지 못한다. 나에게 남은 건 자신감뿐인데, 이것조차 잃을 순 없다. 잠깐 펜을 내려놓고, 이야기 속에 빠진다. 케니가 사는 세상을 그려본다. 나의 고통은 케니의 고통으로 바뀐다. 케니는 꿈을 이룰 것이다. 그래서 더 힘들고, 아프고, 괴롭다. 결과를 알기 때문에 더 큰 고통을 원한다. 영화 속 주인공이 더 큰 고통을 받을수록 관객의 박수소리는 커진다. 우리는 결말을 알고 있다. 주인공은 승리한다. 우리의 눈은 이미 주인공이 누군지 느끼고 있다. 누군가는 나의 꿈이 이뤄질 것이란 걸 미리 알고 있을까? 누군가의 눈은 나의 결말을 알아차리고 나를 바라보고 있을까? 나는 내가 꿈을 이룰 것이라 느끼지 않는다. 하지만 나의 꿈은 이뤄져야 한다고 끊임없이 말하고 생각한다. 그리고 다시 펜을 잡는다.


"수업을 마치는 종이 울린다.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학교 밖으로 빠져나왔다. 진짜 교육은 학교가 끝나고 시작된다. 아이들은 서로의 공통점을 찾아 삼삼오오 모여 저마다의 길을 나선다. 크립스는 크립스의 지역으로 블러드는 블러드의 지역으로 멕시칸은 멕시칸의 지역으로 아시안은 아시안의 지역으로 익숙한 냄새, 익숙한 색깔을 따라 모여들어 그곳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버틴다. 나는 주머니에 손을 넣고 바지를 약간 내려 입은 뒤 나와 같은 피부색을 가진 아이들과 함께 걸어간다. 걸음걸이는 최대한 건들건들거리고 눈빛은 불만에 가득 차 시비 거리라도 찾으면 바로 달려들 것처럼 주위를 쏘아보며, 이마는 잔뜩 찡그린 채로 얕잡아 보이지 않으려 애쓰면서 살짝 곁눈질로 옆에 있는 녀석들을 보니 모두 얼굴을 찡그린 채로 두려움을 숨기고 있었다. 그렇게 아무 말도 없이 5분쯤 걸으니 우리의 아지트인 톰의 집에 도착했다. 언제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허름한 집이지만 어느 집보다 우리에게 편안함을 준다."


케니는 꿈을 이뤄야지. 그런데 케니의 꿈이 뭐였지? 유명한 래퍼가 되는 것인가? 케니는 음악을 사랑하지 않는다. 가난에서 탈출하는 것? 어떻게 보면 맞는 말이지만, 꿈은 아닌 것 같다. 세상 사람들의 영웅이 되는 것? 케니는 평범하다. 그리고 이기적이다. 인종차별이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 불가능한 일이다.

케니는 진실을 말한다. 사람들 마음속에 자리 잡은 거짓을 끄집어내고 싶어 한다. 사람들 마음속에 불편함을 주고 싶어 한다. 불편한 글을 쓰자. 읽는 사람을 배려하지 말자. 나의 글은 누구를 위한 것이 아니다. 나의 글은 나의 생각을 온전히 담고 있다. 당신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던 답은 내가 가지고 있다. 이건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내가 어떤 것을 보고 어떤 것을 느끼느냐에 대한 문제다. 그냥 나의 생각을 적는다. 아름다울 필요도 없다. 날 것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자. 우리가 어떻게든 살아가는 것처럼 케니도 자신의 세상을 살아간다. 내가 힘들고 당신도 힘들듯이 케니도 힘든 일을 겪는다. 평범한 사람들처럼 자신에게 시련을 주는 현실을 미워한다. 하지만 케니는 결국 꿈을 이룬다. 모든 시련을 극복하지는 못할 것이다. 아픔을 품고 살아갈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케니가 꿈을 이뤘다고 생각할 것이다. 케니의 꿈을 모르는 사람들이 케니의 꿈을 이뤄줄 것이다. 케니의 꿈에 대해 말하는 가식적인 사람들. 자기 자신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세상의 모든 것을 자신의 뜻대로 보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케니를 보고 꿈을 이뤘다고 말한다. 그쪽 세상이나 여기나 다를 게 없다. 당신들이 함부로 누군가를 평가해선 안된다. 특히 그 사람의 꿈과 미래에 대해서는 언제나 조심해야 한다. 하지만 나도 그렇고 당신들도 뚫린 입을 너무 쉽게 놀린다. 그 사람은 듣지 않을 것이라 생각해서 인가? 입조심을 마음속에 품어도 감정이 조금만 올라오면 다른 사람은 불만 섞인 말의 대상이 된다. 심지어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내가 쓰는 글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길 바라고 있다. 그리고 모순 속에서 계속 글을 쓴다. 해소하지 못한 감정을 남긴 채, 이 글을 보는 사람들이 나를 맘대로 생각하게 내버려 둔다. 당신들이 내 꿈에 대해 어떤 평가를 하든 상관없다. 아직 나 조차도 내 꿈을 정의하지 못한다.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불평하고 헛된 희망을 품은 채 살아간다. 하나 다른 게 있다면, 멈추지 않을 것이다.


“저 녀석들 자기가 게토 출신이라고 말하면서 돈을 버는데 그 돈은 누구 돈이야? 우리 돈이야? 우리는 저 녀석 앨범 살 돈을 모으려고 약을 파는 게 아니라고. 저 녀석은 백인들 주머니를 뜯어내려고 게토 얘기를 하면서 백인을 위해 노래하잖아.”
우리는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채드의 말을 듣고 있었고 채드는 다시 한번 마리화나를 한 모금 빨아들이며 흥분을 가라 안친 뒤 말을 계속했다.
“저 녀석들 게토 생활을 영웅담처럼 그려내서 번 돈으로 가장 먼저 한 게 뭔지 알아? 백인들이 사는 동네로 이사를 간 거야!”
채드의 말이 끝나자 톰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아직까지 게토 얘기를 짓거리고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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