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몸무게가 비슷한 남편

그게 무지 신경 쓰이는 나 - 네가 아빠가 엄마보다 크다고 해줘서 감동이

by 선샤인 연주리

남편과의 연애시절, 서울 집 계약기간이 만료되자마자 나는 남편 집 근처로 이사를 왔다. 이런 적극적인 여자가 어디 있냐 정말 지금 생각해도 남편이 나 부담스럽다고 도망가지 않아 감사한 일이다. 엄마 아빠한테는 서울보다 여기가 집세가 훨씬 저렴해요~라고 말했지만 회사에서 엄청 멀어지고, 집은 엄청 낡아서 자다 보면 바퀴벌레가 스윽스윽 지나가는 곳이었다. 그래도 내가 이사를 택한 이유는 죽일 놈의 사랑, 남편을 가까이서 매일매일 보고 싶어서였다. 그런 사실을 전혀 모른 채 엄마 아빠는 이사하는 나를 도와주러 일산으로 올라왔다. 당연히 당시 나의 남자 친구이던 남편도 왔다는 게 이사보다 중요한 사실이었던 이삿날. 나는 그때 남편에게 푹 빠져있어서 얼른 우리 엄마 아빠한테 남편을 보여주고 자랑하고 싶었다. 나의 전부인 딸 채윤이를 낳고 키우다 보니 딸이 어떤 남정네를 데려와도 마음에 안 들고 다 도둑놈처럼 보일 거라는 걸 그때는 진정 몰랐기에 반듯한 남편을 보여주면 우리 엄마 아빠가 너무나 예뻐할 거라 생각했다. 말도 안 되는 생각이었지. 나는 채윤이가 내가 사랑하는 강다니엘이나 헨리를 데려와도 흥치피흥 할 거다! 아무튼 그렇게 남편과 엄마 아빠의 만남이 이사하는 집에서 이루어졌다. 겉보기에는 화기애애 웃음이 넘쳐나는 시간이었지 하하하

이삿짐을 다 내리고 식사를 마치고 엄마 아빠 차를 타고 호수공원을 한 바퀴 돌았다. 그리고 다시 대전에 내려가신다며 우리를 내려주시는데 차에서 내려서 걷는 우리의 뒷모습을 보고 그날 밤 엄마가 전화해서 내게 하는 말


"야! 뒷모습이 네가 남자보다 더 크다. 살 좀 빼라.

아니면 몇 미터 좀 떨어져 걷던가. 어떻게 여자가 더 커보이냐."

그래 나도 알고 있다고. 나는 그 당시의 나는 지금의 나보다 날씬했고 55 사이즈의 옷을 입는 아가씨였지만

키가 작고 천성적으로 마른 남편 옆에 있으면 내가 더 커 보일 수도 있다는 거.... 게다가 발목이라도 드러나는 옷을 입으면 내가 더더욱 커 보인다는 것도... 알고 있다고...


지성이가 태어나고 대한민국에 태어난 아기라면 너무나 당연한 수순으로 곰 세 마리를 불렀다.
그런데 이 노래를 부르는 데 가사가 그렇게 거슬릴 수가 없다.
연애시절에도 아빠보다 커 보인다는 욕 아닌 욕을 듣던 나였는데, 내가 지성이와 이 노래를 부르던 시절에는
채윤이를 뱃속에 가지고 있어 진정 아주 화끈하게 아빠보다 내가 더 크고 무거웠던 시기인데 노래 가사가
아빠곰은 뚱뚱해 엄마곰은 날씬해 아기곰은 아이 귀여워 아니던가. 이 노래가 왠지 싫었다. 우리 집은 아빠가 날씬하고 엄마가 뚱뚱한데 에이씨 아기가 귀여운 것만 맞잖아. 나머진 다 사실과 거리가 멀잖아. 임신이라도 해서 다행이지. 임신 안 했을 때 불렀으면 더 기분 나쁠 뻔했어. 근데 웬걸 지성이가 이 노래를 너무 좋아해 이 노래를 하루에 스무 번도 더 불렀지. 그래도 자꾸 가사가 맘에 걸리길래 바꿔서 불렀어. 아빠곰은 날씬해 엄마 곰은 뚱뚱해라고. 근데 너 곽지성 너는 고집이 있더라 가사 안 바꾸고 계속 고대로 불러 이놈.


지성이가 6살이 되고 엄마를 도와 빨래를 널어주기도 하고 게어주기도 하는 요즘. 네가 엄마 아빠 옷에 붙어있는 S, M이라는 것을 보게 되었다. "엄마 이게 뭐예요?" 응 영어로 small medium large라고 사이즈를 나타내는 거야. 새로운 기호 등장에 흥분한 지성이가 S, M, L로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우리 집은 채윤이가 s 내가 m 엄마가 L이네요. 아빠가 있으면 L보다 큰 건 뭐예요?" "응 XL" "그럼 아빠까지 있으면 아빠는 XL"


어머나 세상에 지성아!!! 엄마 감격했다. 티는 절대 절대 안 냈지만 감격에 감격! 네가 엄마 L이고 아빠 XL라고 해줘서. 사실 엄마가 아빠가 한 달 전에 한 건강검진표에서 심박수니 콜레스테롤 수치니 이런 건 기억 하나도 안 나는데 몸무게는 똑똑히 기억하거든 아빠가 근래에 살이 좀 빠졌는지 엄마보다 조금 덜 나가는 것 같더라고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남편이 이 글을 안 읽어야 할 텐데 말이다 하하하하하하하


근데 네가 보기에는 엄마보다 아빠가 더 커 보이는 거지? 고민할 것도 없이 아빠가 XL라고 한 거 맞지? 아아아
어린이는 원래 엄청 솔직하다면서 안 예쁘면 안 예쁘다고 말하고 뚱뚱하면 뚱뚱하다고 말한다며? 아하하하
아빠가 엄마보다 커 보이지? 엄마가 그러니까 더 작아 보이는 거 맞지? 확인 안 하련다. 너에게 괜히 다시 한번 진짜 아빠가 더 커 보여?라고 물었다가 “아, 아니네요!” 하면 괜히 나만 두 번 상처 입잖아. 네가 처음에 그렇게 말했다면, 네가 그렇게 믿고 있다면, 네 눈에 그렇게 보인다면 그게 사실이니까. 너는 솔직한 어린이잖아! 꺅! 기분 좋다!


오늘 저녁은 네가 엄청 좋아하는 와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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