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뚝한 엄지손가락 이야기

말하고 싶지 않은 나의 신체비밀. 그건 바로 짜리 몽땅한 엄지손가락

by 선샤인 연주리

내 엄지는 일명 재주 손이라 불리는 짜리 몽땅한 마디가 하나 없는 듯한 몽뚝한 엄지이다.

정말 볼품이 없다 못해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하는 아주 못난이다.


그래서 나는 가위바위보 할 때에도 남들과는 사뭇 다른 가위바위보를 한다. 그런데 이게 엄지가 뭉뚝한 사람만 알 수 있는 묘한 차이다. 일단 보는 시원하게 모든 손가락을 펴서 낸다 아주 자신 있게 보란 듯이! 그런데 가위에서부터 달라진다. 절대 엄지와 검지로 가위를 내지 않고, 검지와 중지를 사용하여 가위를 낸다. 그래서 가끔 게임으로 누군가 가위바위보를 할 때 가위를 나처럼 검지 중지로 내면 나는 바로 그 사람의 엄지를 흘끗 본다 하하 그럼 둘에 하나 정도의 확률로 뭉뚝한 엄지 손가락 보유자란 말이지. 그리고 가위바위보의 보를 낼 때에는 제일 소심해진다. 엄지를 검지 밑으로 쑤욱 감추어서 주먹을 만들어 내밀기 때문이다. 아… 가위바위보 게임에 이렇게 온 신경을 쓰는 것은 아마 나 같은 짧은 엄지족 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도 이건 이렇게 신경을 기울이면 별 티 안 나고 넘어갈 수 있는데, 다 같이 한 방에 모여 두 주먹을 모아 엄지를 올렸다 내렸다 하는 ‘제로게임’을 하거나, 엄지 손가락으로 씨름을 하는 ‘엄지손가락 게임’을 하면 이건 정말이지 물러날 곳이 없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게임이다.


이렇게 손가락 하나에도 할 말이 많은 나. 그런데 우리 남편의 손가락도 나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 남편은 손가락 다섯 개의 손톱이 다 짧다. 나처럼 완연히 뭉뚝한 것은 아닌데 그렇게 볼품 있는 손가락은 틀림없이 아니다. 그러니 우리 아이들은 둘 중 누굴 닮아도 손은 예쁘지 않을 거란 슬픈 이야기이다.




그런데 말이다! 세상에는 말이다. 신기하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일이란 게 늘 있으니까 말이다! 네 손가락은 마디마디가 통통하고 폭신하고 보들보들한 게 세상 그 무엇보다 예쁘다니! 그리고 그 쪼그마한 손으로 해내는 것들을 보면 분명 손가락 생김새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너의 도토리 같은 손이 만들어 내는 작품들을 보면 손가락 끝에 달린 손톱 모양 따위 중하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엄마 아빠를 닮아서 유전적으로 몽땅한 너의 다섯 손가락 두 짝이 얼마나 예쁜지는 너의 손이 어찌 활용되는 지를 보면 된다. 내가 요즘 피곤해서 자꾸 드러누으니 채윤이는 속상한지 내가 누워있는 곳으로 와서 두 손으로 다리를 주물러 준다. 한 군데도 빠뜨리지 않으려고 길게 누운 내 몸을 한 바퀴 돌면서 조물조물하는 데 정말 하나도 시원하지 않지만 기분이 날아갈 듯 좋다. 기분 좋게 하는 게 진정한 마사지 아니겠느냐.


화장대에서 내가 화장을 하고 있으니 네가 아기 의자를 가지고 와서 옆에 앉는다. 내가 머리를 빗으니 갑자기 무엇인가 생각난 듯 의자에서 내려와 다다다다 뛰어가 손에 뭔가를 가지고 왔다. 궁금한 마음에 살펴보니 자신의 머리를 묶을 때 내가 사용하는 작은 빗이다. 그걸로 내 머리를 빗겨준다.

“엄마 머리 내가 빗겨줄게요.”

정말 조심스럽게 정성스럽게 사랑스럽게 나의 머리를 골고루 빗겨준다. 채윤이의 손길에 출근을 서두르느라 약간 찌푸리고 있던 내 얼굴이 근심을 잊은 채 활짝 펴진다.

com.daumkakao.android.brunchapp_20191018092136_0_crop.jpeg 손가락으로 빼기를 하는 딸의 손가락


너의 작은 손가락으로 요즘 자꾸 숫자를 센다. 1 더하기 1은 그냥 2인데 너는 꼭 그 작은 손가락을 하나하나 펴야지 2가 나온다. 5 더하기 5도 왼손 펼치고 오른손 펼쳐서 손가락을 하나씩 열심히 세어야 10이 나온다. 그럼 11은 어떻게 할지 궁금해서 10 더하기 1을 물어보니 뒤돌아서서 무엇인가를 열심히 계산하더니 1이라고 환하게 웃으며 답한다. 그리고 너의 손가락을 보니 정말로 손가락이 하나 펴져있었으니 그래 1이 맞다.
네 손가락이 부럽다. 숫자만 세도 귀엽고 사랑스러운 손가락이 될 수 있다니. 얼마나 복 받은 손가락인가. 너의 손은 숫자를 세느라 접었다 폈다 할 때가 가장 예쁘다.

딸의 작은 손가락 끝에 아주 쪼그맣게 달려있는 수박씨만 한 손톱은 검은 때가 매우 잘 낀다. 나랑 똑같이 찰흙놀이를 했는데 어쩜 네 손톱에만 까맣게 때가 끼어있는지 우스워서 딸의 손톱을 보면 자꾸 웃음이 나온다. 때가 낄 공간도 없는 작은 손톱에 무슨 먼지가 그렇게나 많이 달라붙을 수 있는지, 네 손톱 끝에 강력 본드라도 붙어있는 것 마냥. 그런데 나도 미쳤지 네 그 작은 손톱에 낀 때가 귀엽다고 예쁘다고 미친 사람처럼 바라보며 웃는다. 우스워서 웃고 예뻐서 웃고, 너의 손톱의 때가 나를 이렇게 계속 웃게 만든다.


그러나 너의 뭉뚝한 손가락이 그저 예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한 번은 너의 그 작은 손가락으로 음순 침이라면서 나의 급소를 찌르는데...
세상에나 나는 꽤 오랫동안 살았고, 많은 것을 경험했다고 늘 생각해왔는데
태어나서 처음으로 그곳이 아픈 것을 느꼈다. 아.. 그 작고 부드러운 손가락으로 찌르는 건데 어떻게 이렇게 아플 수 있는 것이니. 축구경기 때 페널티 킥을 하면 축구 선수들이 손으로 아래 급소를 가리는 모습을 보면서 늘 웃고 싶은 데 참느라 힘들었는데, 아 그 느낌은 다르겠으나 왜 그들이 가리는지 그들의 마음을 갑자기 십분 이해하게 되었다. 쪽팔린 게 대순가 극도의 고통보다야 잠시 쪽팔린 게 낫지.라고 생각하면서도 며칠 전에 본 축구 경기에서 또 페널티 킥 기회가 생겨서 모든 선수들이 급소를 손으로 열심히 막고 있는 장면이 보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안된다. 네 작은 손가락으로 나를 질렀을 때 아팠던 그 순간을 기억하면서 나는 웃음을 참아야만 한다.


나중에 네가 커서 친구들과 ‘제로게임’을 하게 되면 못난 너 자신의 손가락을 보면서 날 원망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나는 그런 나의 손은 사랑하지 못해도 너의 뭉뚝한 손은 평생 사랑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니 네 손이 미워서 속상해지더라도 기억하렴. 너의 손을 어려서부터 엄청 사랑한 엄마가 있다는 사실을. 네 손은 사랑받은 지 정말 오래되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