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덕분에 내 다리가 예뻐 보인다
날 닮 짧고 통통한 네 다리가 예뻐서 내 다리도 예쁠 수 있겠다 생각한다
by
선샤인 연주리
Aug 27.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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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부처럼 몰랑몰랑하고 움직일 때마다 컵 안의 물처럼 찰랑거리는 통통한 다리.
그런데 갑작스레 고백하건대 나는 하비다. 나는 다리가 두꺼워서 안 예쁘다.
내 기억으로는 초등학교 6학년부터 나는 내 두꺼운 다리에 부끄러움을 가지고 있었다.
다리란 나에게 있어 버릴 수도 바꿀 수도 없는 그저 미운털이었다.
친구들은 예쁜 치마를 입을 때, 나는 특별한 날을 제외하고는 바지를 입었다.
더운 여름에는 어쩔 수 없이 반바지를 입었는데, 입으면서도 다리가 보이는 게 싫었다.
그러니까 예쁜 다리의 상징인 가늘가늘한 다리가 아니어서... 발목이 두꺼워서...
나에게 참 미안한 생각이지만 나는 이 생각을 가지고 지금껏 살아왔다.
그런데 올해 여름 그런 나의 케케묵은 아주 오래된 생각이 네 살 딸 채윤이 덕분에 바뀌게 되었다.
완벽히는 아니지만 긍정적인 방향으로 조금씩 조금씩 바뀌고 있다.
긴치마 그러니까 공주님 드레스 같이 바닥에 끌릴 정도로 긴 원피스를 즐겨 입던 네 살 채윤이.
그러나 그녀도 더운 여름이 되자, 몸속으로 흐르는 땀을 이겨내지 못하고
안 그래도 짧은 다리인데 그 보다 더 짧아서 귀엽고 앙증맞은 반바지와 원피스를 입었다.
끼악~~~~~~ 그런데 이를 어쩌란 말이냐!
그 짧은 바지와 치마 속으로 드러난 너의 세상에서 제일 사랑스럽고 귀엽고 앙증맞은 다리!
지금 글을 쓰면서 네 다리를 떠올리기만 해도 침이 질질 흐른다.
너의 다리는 내가 평생 보아온 그 누구의 다리보다 아름답고 보고 또 보고 싶고 보드랍고,
무엇보다 보기만 하면 본능적으로 만지고 싶은 매혹적인 다리다.
할머니는 매일 오빠보다 여동생 다리가 더 두껍다고 놀리지만
나에게 있어서 너의 통통하고 짧고 두꺼운 다리는 침을 질질 흘리게 할 정도록 치명적이다.
그런데 네 다리가 누구를 닮았는지 아니? 바로 나다.
절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정도로 나의 다리를 빼다 박아놓은 형태다.
비율만 30%로 조절을 하면 내 다리는 네 다리가 될 정도로 닮았다.
다행히 길이는 아주 약간 긴 편이지만, 전체적으로 통통하고 발목이 두꺼운 다리.
그건 바로 나의 다리다. 그러니까 네가 크면 나와 같은 다리를 갖게 되겠지.
참 유전이란 게 무섭고 우습다.
그러니까 나는 평생 내가 기억하는 시간 나의 다리를 미워하고
마음속으로 이런 다리를 준 우리 엄마를 원망하면서 살아왔는데,
너를 보면서 처음으로 내 다리도 매력적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네 다리가 이렇게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건 나의 다리를 닮아서이니까!
너의 다리는 통통해도 사랑스러우니까
너의 다리는 발목이 두꺼워도 이보다 더 예쁘고 네 몸에 어울리수는 없다.
그러니 내 다리 또한 통통해도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나의 몸뚱이에 잘 어울리는 형태의 다리일 수도 있겠다는 긍정적인 생각이 들었다.
오랜만에 거울 앞으로 가서 내 다리를 보았다.
거울로 다리를 보는 게 싫어서 지난 수십 년간 제대로 바라본 적도 없는 어색한 거울 속 내 다리.
그런데 제법 괜찮아 보인다. 네 다리를 하도 쳐다보며 살아와서 그런가 내 다리가 어색하지만은 않다.
최근 살이 찌기만 했을 뿐, 빠지지도 않았는데... 이상하게도 내 다리가 생각보다 괜찮아 보인다.
이게 다 네 다리를 보고 예쁘다고 느낀 나의 생각 덕분이다.
아주 짧은 반바지를 입어도, 엉덩이가 거의 다 보이는 한여름 잠옷을 입어도
심지어는 똥 싼다고 바지를 벗고 달려가는 팬티만 입은 네 다리도
세상 심각하게 매력적이다.
그 보드랍고 귀엽고 만지고 싶은 느낌의 두 다리란.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매력적이다.
똥을 싸러 가는 것인지, 장난감을 집으러 가는 것인지 몰라도
네가 두 다리를 움직여 어딘가를 향하면 마냥 너를 쫓아가고 싶다.
채윤아 내가 평생토록 미워하고 원망하던 나의 다리를
네 덕분에 조금 사랑하게 되었다.
이런 나의 다리가 있으니 지금의 어여쁜 네 다리가 있다고 생각하면
내 다리에 감사한 마음이 들기까지 하는구나.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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