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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샤인 연주리 Sep 16. 2019

나를 응급실로 데려간 생리도 쓸모가 있네

나는 오래 간직해온 꿈을 이룬 여자다. 허나 그 꿈이 뭔지는 묻지 마시게

생리를 한다는 건 정말 이 세상에서 가장 짜증 나는 일임이 분명하다.
머리에 벌레가 기어가는 것처럼 머리가 슬슬 아픈 것은 진통제 한 알 먹으면 그만인데
이 놈의 생리라는 것은 아픈 것에 더해서 두세 시간마다 화장실을 방문해서 패드를 갈아주어야 하는 불편함에 더해, 내 몸에서 피비린내가 날 것 같은 두려움에 진한 향수를 막 뿌려대야 마음이 놓이는데 나는 또 향수 냄새를 맡으면 배가 아픈데 더해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이런 걸 하루도 아니고 사오일 길게는 일주일을 해야 하니 생리는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다.


중2 때 생리가 시작된 후로 생리가 언제 터질지 모르는 불안함에 늘 패드와 진통제를 작은 파우치 안에 가지고 다녔는데, 그 파우치를 깜빡하고 안 가지고 온 날 꼭 생리가 터졌다. 급하게 친구한테 생리대를 구해보지만 다들 파우치 안에는 자신이 쓰려고 가져온 2~3개의 생리대 밖에 없으므로 빌리는 일도 쉽지 않았다. 진짜 친한 친구것을 구걸하거나 빼앗다시피 해야 급하게 한개를 구할 수 있었다. 양호실에 가서 이름을 쓰고 증상을 적는 곳에 부끄러운 마음에 내가 생리중이라는 것을 외부에 알리고 싶지 않은 마음에 아주 작은 글씨로 생리라고 적고 진통제를 타 와서 먹는 경우도 매우 매우 많았다. 으 이놈의 생리란 내 인생에서 확 떼어내고 싶은 혹부리 영감의 혹이다.


 더 끔찍한 건 이건 내가 죽지 않는 한 생리는 50세까지 쭈욱 지속된다는 것. 그러려니 하고 내 인생에 데리고 살기에는 30년이 넘는 시간을 감내해야 하는 것이니 이거 너무 심각하게 긴 시간이 아니더냐. 누가 왜 이런 시스템을 만들어서 나를 이렇게 골탕 먹이는 건지. 생리는 어른이 되어서도 절대 익숙해지지 않았고, 생리통도 절대 더 약해지지 않았고, 생리에 대한 나의 반발심은 해가 갈수록 더욱 커졌다. 그러나 어디 가서 나는 생리가 너무 싫다고 힘들다고 하소연을 할 수도 화를 낼 수도 없는 일이니 나 혼자서 미치고 팔딱 뛸 노릇이었다. 아 신이시여 왜 내게 이런 고통을 주셨나이까
 


내가 내 입으로 한 번도 올린 적 없는 스물 한 살 때의 생리 에피소드. 단어가 참 버라이어티하다 생리 에피소드라니. 그런데 이건 정말 에피소드다 그것도 너무 슬프고 비싼 에피소드. 내가 좋아하는 남자 선배랑 학교 앞에서 점심을 먹고 있는데 생리통이 갑자기 확 올라왔다. 배가 너무 아파서 참을 수 없을 것 같아서 약국좀 다녀오겠다고 양해를 구하고 식당 밖으로 나왔는데 배가 끔찍하게 아파서 발을 뗄 수가 없었다. 약국은 길 건너편에 매우 가까운 거리에 있었는데 그곳까지도 갈 기운이 없을정도로 고통이 너무 심했다. 정신력으로 어떻게든 버텨보려고 하는 데 나도 모르게 거의 의식을 내려놓고 길바닥에 웅크리고 앉았다가 급기야는 엎드러버렸다. 배는 아프지만 정신은 희미하게나마 남아있었기에 한 손으로는 배를 움켜쥐고 한 손으로는 얼굴을 가리고서는 내가 좋아하는 선배가 나를 못보게 해달라고 속으로 계속 빌었다. 아... 그런데 그때 친한 친구들 무리가 지나가면서 나를 발견했다.

"야, 저거 연주 가방 아니야? 연주가 쓰러져 있는 것 같은데? 야! 이연주!"

그리고 친구는 정신없이 땅에 엎드려 식은땀을 흘리는 나를 보면서 119에 전화를 걸었고, 진짜 119는 2분도 안돼서 나타났다. 119 소리가 큰게 이렇게 민망할 줄이야. 진통제 한알 먹으면 되는 데 왜... 친구들은 요란을 떨어서 날 119로 싣고 가냐고.. 그렇지만 언제까지 바닥에 엎어져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기에 나는 119에 올라탔다. 119 문이 닫히자 부끄러움이 좀 가라앉으면서 배도 같이 가라앉는 것 같을 때 119대원이 질문을 했다.

"학생, 괜찮아요? 학생 어디가 아픈거예요?"

"네? 아 그게 생리통이예요. 진통제 사러 가는 길이었는데..."

그래도 이미 119를 탔으니 나는 근처 병원으로 향했고, 응급실로 가서 진통제를 아주 아픈 사람처럼 수액병으로 맞았다. 응급치료기 5만 9천원... 와 진짜 내 전재산을 탈탈 털고, 병원에서 매우 멀쩡한 모습으로 나와서 버스를 타고 다시 학교로 돌아갔다. 이러니 내가 어떻게 생리를 안미워할 수가 있냐고!

나를 이렇게 민망하게 만들었는디! 그때 그 선배는 잘 살고 있나 모르겠다. 내가 밥먹다가 사라진 이유를 그 후로도 설명하지 못했는데, 그 후로 다시 일대일 만남을 갖지 못했는데,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기억하지 말아주길. 제발.


 매달 생리에 화를 내면서 살아온 지 이십여 년, 우연히 결혼한 친구들만 네 명이 모였는데 주제가 누군가 계획한 것처럼 만난 지 십 분도 안되어서 2세 계획으로 이어졌다. 맹세컨대 내가 주도적으로 2세 이야기를 꺼낸 것은 절대 아니다. 이 피하고 싶었던 대화에서 기억나는 딱 한 가지 "임신하면 생리 안 한대. 완전 매력적이지 않냐"라는 친구의 말. 와 이거 정말 복권 명당자리 정보 듣는 것보다 더 솔깃한 이야기였다. 왜 이 당연한 사실은 나는 생각한 적이 없없단 말인가. 하지만 그것 때문에 임신을 선택할 수는 없는 법이라고 단정 짓고 있는데 이어서 친구가 말한다. "게다가, 아기 젖먹일 때도 생리 안 한대." 꺄 진짜냔 말이냐. 당장 2세 계획을 짜야지 그 성가신 놈을 피할 수만 있다면 내가 까짓것 임신을 못하겠냐

그렇게 계획보다 아주 조금 서둘러 아기를 계획했고 나는 진짜로 임신하고 생리 없는 인생이라는 그러니까 내 책이 아마존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처럼 절대 이룰 수 없을 것 같았던 인생의 꿈을 달성하였다. 아이 둘을 연달아 낳았으니 무려 일 년 반 곱하기 2, 무려 3년을 생리 없이 살 수 있었단 이야기. 진짜 다시는 하고싶지않은 신생아 육아의 고통만큼 생리안하는 기쁨도 크더라. 마트에서 생리대 세일하는 거 없나 1+1하는 거 없나 기웃거리는 거 안하는 게 얼마나 홀가분하던지. 놀러갈 때 파우치 따로 안챙기는 편안함이란! 이 기쁨의 크기는 내 책이 무려 3년간 아마존 베스트셀러에 올라있을 때의 느낌과 감히 비슷하리라. 아이를 낳고 젖먹이던 시간은 매우 힘든 인생의 암흑기와도 같은 시기이지만 몸만 놓고보면 이렇게 진통제를 안먹고 오랫동안 평온했던 적이 있었나 싶다.               


오늘도 내 인생이 이렇게 행복해지고 평온해진 데에 대한 공을 너희에게 돌려야지. 너희가 없었으면 이 엄마가 죽기 전에 어마어마한 꿈을 이룰 수 있었겠니. 내 책 아마존 베스트셀러 만들기는 간직한 지 오 년 정도밖에 안 된 꿈인 데다가, 무덤에 가기 전까지 꿈만 꾸다가 죽을 수도 있는 것인데 생리 없이 사는 10년 넘게 가져왔던 꿈 하나는 네 덕에 이른 나이에 이룰 수 있었다.


나 어디 가서 당당하게 말할 거다. 나는 오래 간직해온 꿈을 이룬 여자라고.

그런데 그 꿈이 뭔지는 묻지 마시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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