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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샤인 연주리 Sep 30. 2019

너에게 잘 보이고 싶어. 집안 정치하는 사람

사내 정치하는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다.

여섯 살 지성이가 가장 즐겨하는 말은 “보여주세요”이다.

"왜요"라는 질문 하나도 충분히 어려운데... 지성이는 늘 “왜요”라는 말 뒤에 “보여주세요”를 잊지 않고 갖다 붙인다. 음식을 하고 있으면 다 됐어요?라고 늘 물어보는데 “아니! 아직!”이라고 해도 “왜요? 보여주세요” 라며 두 단어를 한 단어처럼 붙여 사용한다.


올해 4월 강원도 고성의 야산에서 불이 났는데 그 불이 강한 바람을 타고 속초시내까지 번져서 대형 화재로 이어졌다.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면 늘 재미있게 들어서 그날은 강원도 화재에 대해서 지성이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지성이가 또 어김없이 물어보았다.

“왜요? 야산에 불이 왜 났어요? 불이 나면 왜 질식해서 죽어요? 보여주세요!”

우와 정말 감당하기 어려운 질문의 연속이다. 질식이 무엇인지 설명하기도 어려운데, 내 눈에도 보이지 않는 공기를 보여달라니 내가 마술사도 아니고.


그런데 이상하게 지성이가 무엇인가를 진심으로 혹은 무엇인가를 순수한 마음으로 궁금해하면 나는 어떻게 해서라도 그 궁금증을 풀어주고 싶다. 그렇게 하면 지성이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고 세상을 더 호기심을 가지고 깊게 바라볼 수 있을 거라 믿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그날 아이들을 재우고 서점으로 달려가서 어떻게 하면 공기를 보이게 할 수 있을지를 과학책을 탐독하였다. 서점 문 닫기 30분 전에 도착해서 눈에서 불을 뿜어대며 집중해서 책을 봤었지. 그래 실험 하나 건졌다.

 

[실험] 초를 3개 정도 켠 후, 비커 바닥에 휴지를 한 칸 잘라 넣고 불에 태운다.

          비커를 한 손으로 들어서 초 위에 비스듬히 기울여서 초가 꺼지는 것을 보여준다.


산소가 있어야 우리는 숨을 쉴 수 있고, 산소가 있어야 물건은 불에 탈 수가 있다. 그런데 그런 산소가 화재로 인해 물건이 타는 데 다 쓰이고 우리가 호흡할 산소가 없어지게 되면 우리는 숨을 쉴 수가 없게 되어 질식하여 사망에 이르는 것이다. 고성의 화재사건이 어떻게 지성이의 과학실험으로 이어졌는지는 지금도 신기할 따름이지만 나는 지성이를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뭐든지 보여주려 노력한다. 지성이 앞에서만큼은 정말 멋진 사람이고 싶으니까. 지성이 너를 위해서라면 보이지 않는 것도 보이게 할 수 있어! 엄마 좀 멋지지?


나는 회사에서 정치하는 사람 보면 질색하는 사람이다. 예전 회사에 높은 사람만 보면 양손에 불이 나도록 비벼대던 남자 과장이 하나 있었는데, 그가 손바닥을 비벼댈 때마다, 해외출장 다녀와서 헤헤 웃으며 양주를 상사에게 사다 바칠 때마다 마음 같아서는 뒤통수를 확 한대 갈기고 싶은걸 참느라 속에서 매일 병이날 지경이었다. 집도 나랑 가까웠는데 집에 가는 길에 들려서 그사람 차에 똥을 한바가지 확 부어버릴까 심각하게 고민한적도 있다. 위에 비벼대는 것만큼 아랫사람에게는 하대와 욕설이 난무한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괜히 윗사람에게 굽신거리는 사람을 볼때면 속이 메스꺼웠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이치인지, 네가 태어나고 정치하는 사람의 마음을 조금 아니 조금많이라고 해야할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은 정말 윗사람에게 잘 보이고 신뢰를 얻고 싶었던 것이다. 그 일을 정말 잘 해내고 싶으니까. 일을 정말 사랑한 거지. 왜 갑자기 내 시선이 변했냐고?


나를 봐라 너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피곤해 죽겠다면서 네가 잠든 밤에 서점으로 달려가서 책을 찾아보지 않니. 나는 에세이나 경제서적을 좋아하는 데 네가 좋아하는 이야기 들려주려고, 초등학생 중학생 과학 실험 책을 사다가 탐독하잖니. 지금 내 책장에는 에세이, 경제서적은 겨우 두 칸을 채우고 있고, 너에게 들려주려고 혹은 너를 잘 키우려고 산 책은 여섯 칸을 차지하고 있는 것만 보아도 내 마음이 얼마나 너에게 기울었는지, 얼마나 너에게 잘 보이고 싶어 하는지 알 수 있다. 과학실험 안 하면 그만인데 너의 그 호기심을 채워주려고, 이렇게 노력하잖아. 너한테 잘 보이고 싶어 가지고..  네가 쿠키 만들어요! 하면 "그래" 대답하고 너네 재우고 밤에 마트 가서 버터 사고, 당근 사서 채 썰어놓고, 쿠키 틀은 사기 아까워서 친구한테 가서 빌려오고 막 난리잖아. 안 한다고 하면 그만인걸. 너를 정말 사랑하는 마음에, 너에게 잘 보여서 믿음과 사랑을 얻고 싶은 거다.


네가 이야기 재밌다고 해서 시리즈로 사버린 책, 네가 좋아하는 요리, 네가 키우자고 한 토마토, 양파 등등


그러니까 내가 정치를 하지 않았고, 사내정치하는 사람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본 것은 내가 그 일에 그런 애정이 없었다는 이야기지. 회사에서 정치를 하는 사람들만큼 나는 회사에서 맡았던 일을 잘 해내고 싶었던 마음이 없었던 것이다.  나는 회사형 인간이 아닌 것일까. 그러니까 정치를 하는 사람이 잘못된 게 아니다. 예전에 그들을 욕했던 내가 부끄럽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물론 아랫직원에거 폭언을 하던 그에게는 여전히 문제가 있딘고 본다만,  그 외에 사내정치를 하는 이들은 대체적으로 그들은 내가 욕했던 것만큼, 욕하는 만큼 내가 후드려 패주고 싶었던 만큼 이상하거나 나쁘거나 밉상이 아니다. 내가 지성이 너를 너무 사랑해서 너에게 믿음과 사랑을 얻고 싶은 것처럼 그들도 보스에게 신뢰와 인정을 받고 싶었던 것이다.


네 덕분에 나의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내 마음이 1센티 정도 자란 것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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