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석수집가

2017, 여행에 대하여

by enby



조금 담백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아니 어쩌면 아주 담백하지는 않더라도, 느릿느릿 말로도 할 수 있을 되직한 것을 옮길 요량.


당신은 여행지에서 뭘 할 때 가장 즐거운가.

보편적인 것에서 기상천외한 것까지 제각각일 텐데, 나의 경우는 '보물찾기'이다. 낯선 여행지에서는 발품을 파는 만큼 주울 수 있는 보석이 많아진다. 보석의 종류도 다양하다. 예를 들면 구석진 골목 안에 관광객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식당일 수 있다. 시끄럽게 저마다의 말을 쏟아내는 아저씨들로 그득한 밥집, 그 비좁은 테이블에 뻘줌히 몸을 구겨 넣을 때 하나의 보석을 줍는다.


걷는 것을 좋아한다. 이건 내 여행 스타일이기도 하다. 일례로 두 번의 파리에서 루브르는커녕 미술관 콧 베기도 못 본 이유 또한 정처 없이 걸어 다니기만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내가 숨겨둔 아지트만 수백 곳인 프로 여행가인가 하면, 그런 이들은 절대 안 간다는 개선문 꼭대기가 가장 아끼는 장소이니 그 이상은 말하지 않겠다. 나는 내가 가고 싶은 방향으로만 걸어 다니고 거기서 오는 우연의 조합을 즐거움으로 여기는 평범한 도보여행자 중 한 명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내가 여행을 보물찾기로 여기게 된 데는 파리에서의 하루가 자리하고 있다.

대부분 사람들은 샹젤리제에서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와 광활한 개선문 광장에서 사진을 찍고 에펠탑으로 넘어가거나 그 반대로 여행하곤 한다. 내가 거기 올라간 것 역시 온전히 충동적이었다. 에펠탑 근처 민박집에 짐을 풀고 나와 돌아다니다가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무렵이었다. 비교적 혹독한 추위가 없는 유럽의 겨울이지만, 파리의 1월 공기는 냉랭했다. 시내 곳곳에서 열두 개 도로가 승리의 함성을 품은 자리로 모여들고 있었다. 하루에도 수천, 수만의 차들이 빙글빙글 개선문 곁으로 들고 났다. 반면에 보행자가 이곳을 오가려면 드문드문 켜지는 신호를 받아 무서울 정도로 넓은 도로를 건너게 되는데, 원하면 중앙에 머물 수 있다. 그날 가장자리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나를 이끈 것은 알 수 없는 행렬이었다. 불을 든 채 개선문 머리 아래 머무는 그들을 그냥 넘기지 못하고 횡단보도를 건넌 것이다. 가까이 가보니 전쟁에서 싸운 용사들을 기념하는 행렬이었다. 이밖에도 멀리서 보는 것과 달리 시선을 잡아끄는 게 많았다. 문득 거기까지 왔으니 전망대에 올라가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쌀쌀하고 비수기라 사람이 많지도 않았다. 지하에서 시작되는 통로로 들어섰다. 당연히 승강기가 있을 리 없다. 모르는 이들과 엎치락뒤치락 계단을 오르다 보니 라푼젤이 사는 탑에 올라가는 것 같았다. 헐떡이며 몇 번의 위기를 지나고 난 후 마침내 꼭대기에 도착한다. 라푼젤은 살지 않지만 온갖 파리의 불빛이 별처럼 반짝이는 하늘 아래다. 해가 지는 무렵 오르기 시작하여 당시에는 사방 보랏물이 스며들어가는 노을 위로 셀 수 없는 반짝임이 쏟아져 있었다.


나는 거기서 처음으로 파리에서 울었다. 온천지에 널려있는 보석들 사이에서 추위도 잊고. 아마 지나치게 아름다운 광경을 마주했을 때 몰려오는 감정의 소용돌이 때문이었겠지. 그중에는 평생을 헤매도 이 도시 속에 빛나는 것의 절반도 채 못 찾을 거라는 절망도 섞여있었다. 그러나 일단 무방비 상태에서 심신을 압도하는 시각적 자극을 받은 내 눈은 일단 눈물을 흘리는 것 외에 별 수가 없었을 것이다. 붉은 눈과 코를 훌쩍이며 노을이 새카맣게 덮일 때까지 머물렀다. 어두울수록 반짝임은 더 심해졌다. 나는 울렁이는 가슴을 어쩌지 못한 채 여전히 거기 있었다. 점차 이성이 돌아와 뇌 스스로 춥다는 신호를 보내며 떠날 때가 됐다고 했다. 아쉬웠지만 이 또한 어쩔 수 없었다. 그날 세상의 중심 아닌 중심에서 아쉬움을 접으며 나는 결심했다. 살면서 갈 수 있는, 엿볼 수 있는 끝까지 이 모든 반짝임을 찾아 걸어보겠노라고. 세상이 작정하고 숨겨놓은 보물을 찾아 늘 길을 떠나듯 살아보겠다고.


오늘도 두리번거리며 돌아다닌다. 마주치는 낯선 눈빛, 100년 전 만들어진 10센트 동전이 발에 차이는 우연, 셔터에 잡히는 행인의 표정,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는 순간까지도 소중히하며. 길 위에서 이 모든 것은 반짝인다. 세상이 끝나지만 않는다면 언제까지나 태어나고 사라지고 또 존재하고 있겠지. 그리고 마음속 차곡차곡 쌓이는 그것을 닮아 우리 역시 모두 반짝임일 것을 믿는다.


내 생애 파리와 처음 만난 그 밤, 나는 그가 주는 대로 가지고 싶은 만큼 파리를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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