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2017, 잘난 체에 대하여

by enby


너는 왜 그래 대체 왜 그럴까, 너의 해맑은 표정과 눈빛을 보면 단번에 힘이 빠져버려.

붉고 광이 나는 너는 새큼한 액체를 씨앗과 살 사이에 머금고 누가 건드리면 금방 울어버릴 듯 말랑말랑하고 한없이 물러 터져서는 자신을 지킬 것이라곤 얇디얇은 한 겹의 껍질뿐이라니.

그렇게 생겨먹도록 네 나무는 널 키워냈지 하지만 나무도 죄가 없어 나무는 또 나무대로 그렇게 생겨먹었지.

지구는 이 모든 것이 그러면 그런대로 돌아가는 하늘 아래에서 새겨지고 뒹굴어지며 나아가도록 만들어졌으니까.


누가 널 토마토라고 불렀을까? 다르게 불려도 혹은 불리지 않아도 달리 상관은 없을 테지만, 누가 어떤 이유로 너를 단정했는가는 중요한 문제지. 네가 채소인지 과일 인지도 잘 모른 채로 사람들은 싱그러운 너를 끓는 물에 던져 넣고, 사정없이 절단해 비벼 섞고, 시퍼렇게 날 선 칼날 사이로 갈아내 버렸어. 그것도 너는 크게 상관하지 않지만, 최소한 네가 뭘 위해 거기 왔는지는 알 필요가 있지. 그 뱃속으로 들어가 세상의 거름이 되기 위해서라는 허울 좋은 짐작은 치워버려.

티끌조차 고작 그런 이유로 세상에 오지 않아.


다시. 사실 넌 영영 어른이 되긴 글렀어. 종종 알이 굵어지긴 해도 절대 질겨지거나 충해에 익숙해지진 못해. 오히려 그전에 옆구리에 구멍을 내고 생을 마감하는 게 더 익숙해. 그러니 다들 네가 붉어지기도 전부터 따내려고 벼르는 게 당연하지. 그러면서도 네가 더 커지길 기다리는 멍청이들도 많아. 조금 더, 조금만 더 하면서.

푸른 몸체의 네가 벌써부터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눈 깜짝할 새 쭈글쭈글 내장이 터져버린 너를 까마귀에게 양보하게 될 것도 당연히 모르겠지.


사실 넌 내가 봐도 좀 영악하다 싶을 만큼 속내를 잘 안 드러내긴 해. 하지만 그래, 그렇게 생겨먹은 탓이지. 연약한 심신의 표면과 생글거리는 표정 속에 농밀한 무기를 품었다는 걸 굳이 드러낼 필요가 있었을까. 물론 아니지.


비 맞는 걸 좋아하는 너는 커다란 빗방울을 피부로 동글동글 흘려보내면서 여름을 즐겼어. 예전 아주 예전에 사람들이 너를 보는 것만으로 좋아하던 시절이 있었어. 보고만 있어도 톡 터질 듯 신묘한 열매. 더위가 물러갈 즈음이면 정말 저절로 터져 버리곤 하는 너를 바라보면서 반나절, 또 한나절 그렇게 풍류를 보냈다던가.


언제부터일까, 그런 너를 뚝 뚝 따내기 시작한 건. 누군가 맘에 드는 이가 궁금해했을 테고 너는 바보같이 그걸 순순히 구경시켜준 거야. 종잇장보다 미미한 막을 뚫고 빼앗는 것만큼 쉬운 일은 없었지. 그리곤 먹기 위해 이름도 붙이고 이리로, 저리로 분류하고 일 년 내내 자랄 수 있는 땅도 마련해주고. 이제 모두 전보다 너를 칭찬하네.


하지만 나는 알 수 없어. 그렇게 붉게 웃고만 앉아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비도 떨어지지 않는 비닐막 속에 들어앉아 예쁘게 익어가는 채로 그게 행복한 건지, 불행한 건지. 여전히 넌 말하지 않으므로. 말하지 않아도 나는 좋지만, 딱 한 가지는 묻고 싶어. 왜 너를 내어 준건지, 넌 그들을 사랑한 거냐고.


왜 그냥 터져버리지 않았어. 옆구리를 터뜨려 죽어버리지 왜 예쁜 너를 이리저리 자르고 씹어먹게 만들었니. 왜 사람들이 너를 토마토라고 부르고 과일이라고 아니 채소라고 아는 체를 해대고 일 년 내내 먹도록 만든 거냐고.


넌 아무렴 괜찮은 듯 여전히 상관없이 너인 채로 있는 것 같다. 반면에 나는 알지도 못하면서 이름 붙여 이리 저리로 가지고 가려는 세상이 아무래도 밉고 미워져. 나는 이렇게 생겨먹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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