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서 새벽까지

2017, 가치에 대하여 1

by enby




노인의 하루는 길었다. 태양이 세상 반대편으로부터 부지런히 돌아와도 그는 이미 깨어있었다. 대부분 아침을 일찍 시작하는 이들은 이부자리에서 몸을 일으키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정신이 눈을 뜬 후에도 계속 누워있는 것 역시 만만찮은 고역이었다.


노인에게 새벽은 고되었다. 밤과 낮의 경계가 모호하고 지금이 어젯밤인지 오늘 아침인지 몰라 잠시 멍한 시간. 함께 눈을 떠 알아챌 이가 없는 모든 시간. 미처 다 깨지 못한 세상은 흐려진 귀까지 닿기 전이었다. 우두커니 밝아오기를 기다리다 보면 현관에 신문 부딪히는 소리가 끈덕지게 붙잡고 있던 정신을 탁 하고 풀어놓는다. 어떻게든 시작돼야 했을 하루가 비로소 마지노선에 닿는다.


벌써부터 공기는 후덥지근한 채 해보다 앞서 땅을 달구고 있었다. 잘 접힌 요즘 신문은 막 찍어낸 것이어도 옛날 것처럼 뜨듯하지는 않지만 그 안에 펄펄 끓는 용광로를 담고 있는 것만은 여전했다. 걷는 듯 기는 듯 신문을 주워와 가지런히 앞에 두고 가부좌를 틀었다. 그리고는 숨을 가다듬었다. 이어지는 돋보기 착용. 매일 수십 번 쓰고 벗는 돋보기인데도 신문을 읽기 전만큼은 세상을 맞아들이는 겸허함으로 코 위 정확한 자리에 가벼이 얹어 신성한 의식 치르듯 하는 것이었다. 가장 좋아하는 순간을 맞은 그는 손바닥을 비비고 1면을 한눈에 보이도록 했다.


금일 헤드라인에는 그저께 미국을 방문한 대통령이 회담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는 소식이 여러 장의 사진과 함께 실렸다. 악수하는 사진, 모두 일렬로 서서 정면을 바라보는 사진, 길게 마주 앉아 이야기를 하는 사진을 노인은 대충 훑어 내렸다. 그러다 말미에 활짝 웃고 있는 양국 영부인의 사진은 꽤나 유심히 보았다. 한쪽은 흰색의 편안해 보이는 옷을, 한쪽은 아주 딱 맞고 화려한 옷을 입고 있었다. 그는 다음 장으로 넘기다 말고 다시 한번 돌아가 살펴보기까지 했다.


정치면을 지나자 사이언스 특집이 이어졌다. 최근 일각에는 4차 산업혁명을 두고 지대한 관심이 쏠리고 있었다. 연일 지면의 상당 부분을 채우고 있는 관련 기사와 굵직한 사설들이 그것을 증명했다. 이미 상당 부분 인간의 노동력과 부분적인 지능까지도 능가하는 인공지능, 로봇이 대체할 직무와 인력, 가상 화폐와 같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의 부가가치 등을 화두로 찬반의 의견과 온갖 기대, 우려가 쏟아져 나왔다. 헤아릴 수 없는 입으로부터 나온 모든 말들은 기본적으로 기술 발전이 이룩해낸 지평에 대한 경이와 인류 스스로를 향한 감탄을 담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눈은 이 모든 말들을 무심히 지나쳐 내려 아파트 분양광고 옆 귀퉁이를 겨우 차지하고 있는 짤막한 글에 멈췄다. 필시 젊은 평론가가 썼을 그것은 대강 이러한 내용이었다. 이미 세계의 변화는 시작되었음이 분명하지만 그 실체와 지향점이 불분명한, 한 마디로 굉장한 불확실성을 띤 이것은 아직 4차 산업혁명이라고 불리기에는 시기상조라는 것이다. 더불어 급박하게 포장된 이 이슈는 설렘과 호기심이라는 가면을 쓴 누군가의 불안 표출이라는 주장이다.



... 이 지극히 개인적인 불안은 모든 변화가 그렇듯 예측가능성이 매우 낮은 시대가 도래함으로써 기득권 이동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에 생긴다. 하여, 그들은 모를수록 크게 떠들고 마치 모든 것이 자신의 손바닥 위에 있기라도 한 양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도록 만들고 싶어 하는 것이다. 실제로는 티끌만큼도 기여하지 않았을 이들이 호황 속에선 밥 숟가락을 얹어 배를 채우며 혹시나 망조라도 들면 즉시 발을 뺄 수 있도록 호시탐탐 밥상을 노린다. 이 같은 기회주의자들과 이러한 생존 방식은 자본주의가 낳은 폐해 중 하나로 몰가치의 주범이다. (중략) 그러나 틀림없이 다가오고 있는 시대의 변화는 우리 대부분의 삶을 바꿀 것이다. 그것은 어느샌가 삶 구석구석에 공기처럼 스며들게 될 것이며 그때쯤이면 누구나 나서서 실체가 없는 가치, 가치가 없는 실체에 대해 더욱 스마트하게 이해하고 말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것이 지금 누군가가 불안 또는 두려워하고 있는 흐름의 바람직한 진면목이며 이때쯤이면 누군가의 리더십, 특정 제도 따위를 발판 삼지 않아도 세계는 점차 몰가치를 탈피하고 개체와 공동체를 동시에 존중하는 삶을 지향하게 될 것이다. ...


그는 짧은 글을 오랫동안 곱씹어 읽었다. 도입부의 비판적 어조에 비해 결론은 역시 지나치게 이상적인 감이 있었다. 하지만 무려 산업혁명이라는 문제를 논하면서도 우물 안 개구리 신세를 면치 못하는 무리들과는 달리 가공하지 않은 날 것의 통찰력은 박하사탕처럼 가슴을 식혔다. 귀퉁이에라도 실린 게 놀라울 만큼 공격적인 시선이었다. 그러나 데스크에서도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것이다. 누가 자신의 이름을 걸고 쓴 글을 돈 냄새가 풀풀 나는 아파트 분양광고 옆에 끼워서, 그것도 대문짝만한 중견배우의 미소 옆 쪼가리로 싣고 싶어 하겠는가. 끝내 자리는 비었고 호기로운 풋내기 기자는 가릴 것 없이 만사 오케이였을 테니 말이다.


전에 없이 별 상관도 없는 일에 짐작이자 상상까지 동원하다 보니 노인은 아까부터 속이 비었음을 느꼈다. 바깥도 제법 소란스러워졌고. 그러고 보니 시간마다 울어대는 참새도 알아채지 못할 만큼 집중했다. 신문을 대충 접어 밀어 두고 일어났다. 더욱 급격하게 느껴지는 허기를 부여안고 그는 걸어서 부엌으로 향했다. 더운 바람이 들어와 겹쳐진 신문 귀퉁이를 들었다 놓았다 한다. 여름께 그날은 그제야 깨어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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