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그를 추모하며
한 작가가 죽었다.
천재라 불렸고 시대를 잘못 태어난 문인이었으며, 한 평생 문단과 담쌓은 왕따로 산 이였다. 그의 문제작은 여전히 판매금지인 채 이젠 그의 몸과 함께 묻혀있다. 그는 필화 이후 아무 가진 것 없는, 잃을 것도 없는 이처럼 살았다.
우리는 평생을 욕구에 둘러싸여 산다. 끊임없이 무언가 가지고 싶어 하고 가지기 위해 애를 쓴다. 또 잃을까 전전긍긍한다. 그의 작품 속에는 그 모든 욕구가 들어있다. 동시에 두려움도 있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희생에, 그리고 희생하지 않은 채 가지려는 욕심에 대한.
그에 대해 말하는 것은 어렵고 또 조심스럽다. 그 이름은 목구멍에 통째로 걸려 잘 풀려 나오지 않는다. 한 인간이 삶의 대가로 짊어져야 하는 무게는 솜뭉치처럼 제각각이다. 어쩌면 내내 비가 내렸을 그의 삶이 얼마나 버거웠는지는 가늠할 수 없다. 그러니 나는 그에 대해 더 말할 수도 없다.
다만, 그의 작품을 단지 외설적이라 평가하는 것에 대해서 더할 나위 없이 경박하다 말할 수는 있다. 그가 올해 1월 출간한, 지금은 유작이 된 책은 당시 해설을 써줄 문학평론가도 찾지 못했다 했다. 책 끝머리에는 작가 연보가 실렸다. 다행인지 마치 신출내기 작가의 그것처럼 단출한 책날개는 오히려 가벼워 보인다. 어쩌면 그는 웃었을까. 이 사회에서 위선 없이 사는 일이란 그의 마지막 선택보다 더 어렵지 않았을까. 그렇게 살아보지 않은 이 누가 그 시를 평할 수 있을까. 미친 말로 기억될까 두렵다던 생전의 말과 자살자를 비웃지 말라는 시구가 번갈아 맴돈다. 그는 끝까지 자신의 길을 갔고 세상에 무릎 꿇지 않은 자로서 언제까지나 독보적일 것이다.
앞으로 최소한 나의 삶이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라도 내 안에 사는 그를 기억하려 한다. 이념 따위 버리고 고작 나와 내 앞의 당신을 위하여. 결코 마른 솜과 같을 리 없는 우리 초라한 삶을 위하여. 굳이 더 말할 것 없이 우리 안에 살아있는 마광수를 숨기지 말아야 할 이유다.